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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Mar 25. 2021

자연식 고수의 고수 밥상입니다만!

한살림 토종씨앗 나눔 덕에 자연식과 식약동원을 다시 생각한다


우편으로 토종씨앗을 받았다. 한살림 먹거리 위원회에서 하는 '토종씨앗 나눔' 행사를 통해서였다. 토종이란 어감에 이끌렸을까. 씨앗에 혹했을까. 농부의 딸로 자라서 일게다. 매년 봄이면 '농사 앓이' 비슷한 걸 하는 거 같다. 집 앞에 텃밭 한 뙤기 있으면 참 좋겠다. 도시농부 텃밭이 멀어서 몇 해 하고 포기한 게 미련이 남는다. 올해도 토종 모종 나눔과 토종씨앗 나눔 덕분에 어설픈 '도시농부' 흉내를 내게 됐다.



토종씨앗이란 범위를 어떻게 정할까? 옥수수나 고추도 알고 보면 원산지가 아메리카 대륙이라는데, 토종씨앗 기준이 궁금해진다. 사전적으로 토종이란 이렇게 나온다. 1. 본디부터 그곳에서 나는 종자. 2. 대대로 그 땅에서 나서 오래도록 살아 내려오는 사람. 비슷한 말로 토박이, 본토박이, 재래종, 토산종이 있다.



재래종이란 ‘전부터 있어서 내려오는 품종 또는 어떤 지방에서 여러 해 동안 재배돼 다른 지방의 가축이나 작물 따위와 교배되는 일 없이 그 지방의 풍토에 알맞게 된 종자’(안완식)를 말한다. 즉, 토종씨앗이란 한반도에서 '자생'한 씨앗만 뜻하는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해 전부터 이 땅에 자생한 작물로는 콩뿐이라고 한다. 토종씨앗은 옛날부터 이 땅에서 자라난 씨앗이면서, 어느 시점엔가 들어와서 이 땅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 자라난 씨앗이라 할 수 있다.




한살림에서 나눔 하는 토종씨앗이 스무 가지 정도 되던가? 그중에 내가 받고 싶은 걸 다섯 가지 이하로 선택할 수 있었다. 낯선 듯 귀엽고 사랑스러운 씨앗 이름에 나는 열광했다. 박이면 박이지 동아박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추는 상추인데 봉화긴상추는 어떻게 다르지? 뿔시금치는 잎이 뿔처럼 생겼던가? 검색해도 이미지가 잘 나오지 않았다. 무얼 고르고 무얼 포기해야 할지 정말 어려웠다. 동아박, 강화근대, 조선아욱, 대추밤콩, 뿔시금치, 가시홍화, 키작은 강남콩 ..... 이름이나마 불러 보았다. 나는 봉화긴상추, 맷돌호박, 조선파, 검은완두, 그리고 고수를 골랐다. 고수를.



고수가 토종씨앗에 포함된 게 놀랍지 않은가? 고수 토종씨앗을 들여다 보며 토종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종 한국인이란 말이 가능할까? 토종 입맛은 있을까? 싹이 나고 푸르게 자라는 고수를 그리게 됐다. 고수 밭에서 고수를 뜯어 먹는 나를 그려 봤다. 향기가 폴폴 나는 밭, 거기 있으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어느새 고수로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도 보였다. 고수 밥상 사진을 찾아 보노라니, 고수 밥상 구경시켜주고 싶어 진다. 에라이~~ 거창하게 제목 붙여 본다. 자연식 고수의 고수 밥상입니다만!




고수는 내가 거의 매일 먹을 정도로 우리 집에 안 떨어지는 채소다. 입 줄기 뿌리 씨앗까지 다 먹을 수 있다. 미나릿과답게 맛과 향이 미나리를 많이 닮았지만 다르다. 사람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점도 미나리 비슷하다. 조선시대부터 우리 땅에서 재배된 채소라는 걸 알면 놀랄걸? 함경도 고수김치, 파주 고수김치가 있으니 말이다. 절에서 달래 대신 고수장을 양념으로 밥 비벼 먹는 데도 있다. 고수 먹고 싶어 절에 들어갔다는 어떤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매일 고수 먹고 싶은 사람이 나 말고 있어서 무지 반가웠다.



고수가 왜 그렇게 좋냐고? 우선 맛있고 향기로우니까. 나는 특히 향기나는 식물에 끌리는 거 같다. 향기나는 허브는 뭐든 맛있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좀 거창한 소리로 하자면 식약동원이니까. 먹는 게 곧 약이고 음식과 약은 하나니까. 밥상이 내겐 최고의 의사니까. 나는 자연치유로 새 몸과 새 삶을 살고 있다. 암수술 후 7년간 나를 이끈 100명의 의사에는 자연식이 포함돼 있었다. 면역력 증강이니 항암, 항산화, 항염, 이걸 누가 싫어하랴. 다만 나는 병원이나 약이 아니라 먹는 삶을 바꾸면서 더 건강해졌다. 좀 거창한가?




고수의 맛은 뭐니 뭐니 해도 생채로 그냥 먹는 게 최고다. 고명 정도로 살짝 곁들여도 좋지만 쌈 채소처럼 먹어도 좋다. 자연식이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며 단순한 공정으로 먹는 맛 아니겠는가. 지지고 볶고 온갖 양념 칠갑된 음식은 갈수록 멀어진다. 생채식이 좋은 건 깨끗이 다듬고 씻기만 하면 되니까 싱크대 앞에 나를 오래 붙들어두지 않아서 더욱 좋다. 고수만 아삭아삭 씹어 먹기도 하지만 소스 하나 만들어 곁들여도 좋다. 쌈장 비슷하게 뭐든 있는 식재료로 만들면 된다. 들깨를 껍질째 갈아서 된장 조금 섞고 레몬즙 듬뿍 넣어 버무리면 고수와 환상 궁합이다.




생채식도 좋지만 김치로 담근 발효 고수 맛도 끝내준다. 고수가 들어간 물김치와 무채 김치 두 가지를 만들어 봤다. 물김치 주재료는 비트, 돌나물, 고수 세 가지다. 셋 비율도 거의 같이 넣었다. 마늘 생강 소금이 양념의 전부다. 비트가 단맛을 낼 것이고 고수 향과 어우러지며 발효할 것이다. 무채 김치는 내 맘대로 재료가 제법 섞였다. 주재료는 무, 씀바귀, 미역줄기다. 거기에 사과 한 개, 생밤 다섯 개 채 썰고, 부추 줄기, 고수와 딜을 썰어 넣고 마늘 생강 고춧가루로 버무렸다. 바로 먹어도 아삭거리고 풍미가 좋은 생채가 된다. 그러나 하루 상온에서 맛을 들이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면 때마다 고수와 딜의 향이 은은하게 풍길 것이다.




집에서 나 홀로 점심 먹을 땐 한 접시로 담아 먹고 있다. 가짓수도 양도 적정선을 지켜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고수가 빠지면 섭하다. 접시가 복잡할 정고로 푸른 고수가 접시 한쪽을 채우곤 한다. 채소된장죽 한 그릇에 검정콩조림, 거기다 고수와 생김. 고수를 어떻게 먹을지 그려지는가? 생김 조각에 고수를 싸고 초고추장을 살짝 찍어 먹는다. 고수의 향과 김의 풍미가 어우러져 입안을 가득 채운다. 아, 마늘은 흑마늘이다. 비싸서 자주는 못 먹고 가끔 먹는 '건강 영양식'인 셈이다.




밀가루 음식과 거리를 두는 편이지만 가끔은 우리밀 국수를 먹을 수 있다. 이름하여 '향기 나는 녹색 잔치국수'다. 다시마와 표고 그리고 멸치 쪼금 넣어 다시 국물을 우려낸다. 국물과 국수물이 끓는 동안 채소를 씻어 적당한 길이로 썰어 둔다.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군다. 조리 국자에 국수를 1인분 넣고 뜨거운 국물에 적신다. 그릇에 담고 채소를 위에 얹고 뜨거운 국물을 끼얹어 담는다. 뜨거운 국물로 숨이 살짝 죽은 채소들과 국수를 섞어 먹는다. 베트남 쌀국수만 고수 먹으란 법 있어? 심심하면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된다.




가족이 함께 먹는 저녁 밥상에도 고수가 빠질 수 없다. 채식단으로만 차려지는 밥상에서 고수가 가장 듬뿍 담겨있다. 고수는 자체 맛과 향이 있어서 그냥 먹어도 확실히 맛있다. 아삭거리고 질기지 않아서 씹기에 부담도 없다. 세 식구 먹다 보면 고수 접시가 다시 채워지기도 한다. 진정 고수 밥상? 내 짝꿍의 경우 20여 년 전 중국에 처음 갔을 땐 샹차이를 도저히 못 먹고 돌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너무 맛있다 까지는 아니지만 고수를 즐기는 사람이 됐다. 음식은 절대 취향일까? 이 땅에 사는 사람은 모두 토종재료를 좋아할까? 그렇진 않은 거 같다. 먹으면서 익숙해지고, 자주 먹는 게 익숙해지고, 그게 취향이 되기도 하지 싶다.



어떤 날은 고수 라면도 좋으리. 딸과 함께 한살림 라면에 고수를 듬뿍 넣어 먹는다. 라면 먹을 일이 자주 없지만 한살림 우리밀 라면을 식구들과 끓여 먹을 때도 있다. 아들들이 끓이면 감자며 파며 달걀 등이 들어가는 거 같다. 딸과 끓여 먹을 땐 고수만으로도 족하다. 나는 대체로 라면은 몇 젓가락 거들어 먹는 정도다. 그러나 고수 한 웅큼 넣은 라면이라면, 한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으리. 사진에 보이는 게 내가 먹은 라면의 전부였다. 입큰 사람이라면 한 젓가락 한 입에 후루룩할 라면인데 고수를 섞으니 제법 많아졌다. 이런 메뉴 이름은 고수 라면일까 라면 고수일까? 어쨌거나, 나는 고수가 좋다. 점점 고수가 좋아지는, 자연식 고수의 고수 밥상이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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