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영화, <당신의 사월>

타인이 죽음이나 상해의 위험에 놓이는 사건을 목격했을 때에도

by 꿀벌 김화숙

<당신의 사월> OST 가사


봄이 오고 벚꽃 흩날리면

우린 네가 떠나간 날을 기억해

우리가 서로를 기억할 때

웃는 얼굴로 기억했음 좋겠어


세뱃돈 들고 옷 사러 간 신나는 표정

점심시간 종 울리자마자 내달린 복도

친구들과 학교 앞 떡볶이 먹는 얼굴

그 웃는 얼굴로 기억됐음 좋겠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반갑게 인사 나누기로 약속해

우리 가방의 노란 리본들

우린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네 환한 웃음 절대 잊지 않을게




영화 <당신의 사월>을 5,000원 내고 공동체 상영으로 봤다.


'트라우마'란 과도한 위험과 공포,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일컫는다. 타인이 죽음이나 상해의 위험에 놓이는 사건을 목격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는다.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



영화 첫 화면을 채운 건 주디스 하먼의 '트라우마'였다. 까만 화면에 하얀 글자. 2014년 봄에 대한민국에 살던 사람 치고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게 이미 트라우마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돌아보게 됐다. 나의 사월은 어땠지? 새삼 트라우마를 직시하게 됐다. 트라우마는 회피로는 결코 치유할 수 없는 것. 아프지만 마주하고 돌아보며 치유하는 것이리라.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서로 부둥켜안는 이웃을 보았다. 눈물 흘리고 눈물 닦아주며 함께 트라우마를 치유해가는 위대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세월호 영화들이 계속 나왔지만 7주기를 함께 하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참 고맙다.


눈물을 강요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눈물 없이 볼 순 없었다. Vimeo링크를 미리 주니 편하게 훌쩍이며 봤다. 저녁 9시에 줌으로 만나 이웃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안산 페미니스트 책방 '펨'과 함께였다. 현재 안산에서도 상영 중이다. 주현숙 감독님 수고 많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극장에서 너무 빨리 내려지지 않길. 7주기 지날 때까지 계속 상영하면 좋겠다. 한 명이라도 더 보고 깊은 트라우마에서 한 걸음 나아지길 기원한다.


다섯 명이 줌으로 나눈 영화 토크를 정리해 본다.



상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커피 공장 사장님이 나오면 더 집중해서 봤다. 부인과 함께 갈 때 택시 기사가 "세월호 지겹다"라고 했다. 그때 부인이 뭐가 지겨워요? 왜 지겨워요? 사장님 자녀가 그리돼도 지겨운가요?.... 그렇게 바로 말했을 때 커피 사장님은 가만히 있었다고 회상했다. 부인은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왜 침묵했을까? 그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도 상당 시간 침묵하고 회피하려 했던 거 같다.


걔: 시간 흐름대로 전체 다 보여줘서 좋았다. 나는 저 때 뭐하고 있었더라? 흐름 따라가며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여당 특위 의원들 성질내면서 나가버리는 장면 기억난다. 유가족 아빠가 대통령 보호하려고 그만두냐며 목소리 높여 항의하더라. 내가 416합창단에서 아는 분이 나오니 관심 집중되더라. 그냥 보면 차분해 보이지만 저 때 저렇게 힘들게 싸우며 견뎌오셨구나, 마음에 확 다가오고 공감되더라.




혜: 많이 잊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며 다시 생각이 살아나서 힘들었다. 나도 고등학교 교사다. 영화 속 선생님 마음하고 똑같았다. 내가 저런 상황이면 어떻게 했을까, 진짜 힘들고 자꾸 눈물이 났다. 당시 '전원 구조' 뉴스 보고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 광화문 폭식 투쟁 같은 뉴스는 듣는 것도 힘들고 끔찍해서 안 보려 했다. 나치 같아 보였다. 촛불로 박근혜를 몰아냈는데 지금도 진상 규명이 안 됐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 그 감정이 되살아난다.


숙: 2014년 봄 나는 몸이 안 좋았고 직장에서 아주 힘든 시기였다. 그해 7월 초에 나는 간암 절제 수술했다. 세월호는 2016년 촛불 때까진 내가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뉴스였다. 우선 몸을 추슬러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으니까. 내가 암 환자니까. 그래서 영화 속에서 세월호 초기 이야기를 볼 때 눈물이 많이 났다. 내가 그때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했지만, 세월호를 회피하느라 심적으로 괴로운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하: 나도 전교조 선생님 마음 공감했다. 노란 리본을 눈에 보이는 데마다 두고, "이름을 불러 주세요" 단원고 아이들 이름을 벽에 붙여 놓는다고 했다. 그런 거 같다. 일상을 살아야 하니 매일 세월호만 생각하고 살 수는 없다. 그래도 잠깐씩이라도 기억하려는 노력이다. 아무리 회피하려 해도 결국 해마다 4월 16일은 오는 거다. 처음 몇 해는 노란 리본과 팔찌 늘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하는 것도 없이 달고만 다니면 뭐하나 하고 뗐다. 이제 다시 달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주현숙 감독도 너무 힘들어서 세월호 영화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그런데 함께 하던 김일란 감독이 몸이 안 좋아지고 박종필 감독이 돌아가시니 주현숙 감독이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지하: <당신의 사월>은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들려주는 거 같다. 누구나 2013년 4월 16일을 또렷이 기억해 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엔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 세월호 뉴스를 들었고, 그때 심정이 어떻고 다들 이야기할 수 있다. 그날 나는 어땠는지, 그때 이야기 나눠 주면 좋겠다.


나는 그때 미국에 있었다. 한국 뉴스를 꼼꼼히 찾아봤다. 멀리 있으니 더 답답하고 분노가 일었다. 동네 한인들이 신문 광고도 내고 진상 규명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그랬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한창일 때 한국에 돌아왔다.




걔: 나는 그날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더라. 내가 안산에 사니까 뉴스 보고 걱정된 거다. 우리 애는 수학여행 안 갔냐고. 그리곤 전원 구조인 줄 알고 있다가 퇴근 때에야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진짜 작은 가족도 아니고 국가라는 단위가 이렇게 무력해도 되나. 배를 계속 보여주는데, 무력감을 느꼈다. 그 뒤 뉴스 보기 싫고 힘들었다. 유가족들 싸우고 버텨내느라 그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하다. 촛불 때 주말마다 광화문 나간 거 말곤 나는 한 게 아무것도 없다.


숙: 나는 사무실에 일하며 컴퓨터에 뉴스 띄워놓고 일했던 기억난다. 무슨 정신인지 모르겠다. 우리 막내가 당시 다른 학교 고2였다. 나는 몸이 안 좋은 때라 정신적으로 약간 경계선에 가는 걸 느꼈다. 막내가 학교 갔다 오는데 불쑥 눈물이 났다. 교복 입은 아이들 지나가는 걸 봐도, 내 또래 엄마들을 봐도 눈물이 왈칵 났다. 출근길 검은 현수막 앞에서 다리가 주저앚힌 적도 있다. 우리 집 가까이 성안고에 야자 시간 불빛을 보는데도 눈물이 났다. 세월호 트라우마 때문에 내 몸이 급격히 나빠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혜: 당시 언론 분위기가 너무 나빴다. 학교에 가도 무기력하고 황망하고 집에 오면 한 달 동안 이불 뒤집어쓰고 많이 울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도 어처구니없었다. 국가가 잠수사들을 혹사시키고 버린 거였다. 광화문에 세월호 가족 단식 때 주말에 연대 단식 갔다. 옆에서 서울시에서 하는 페스티벌을 하고 있더라. 단식하는 사람끼리 산책하는데 세월호 때문에 장사 안 된다고 우리한테 그만하라 그러더라. 그때 나는 아무 말 못 했다. 세월호 때문이 아니었는데 말을 못 하겠더라. 저녁에 집회 때 나보고 발언해 달라 부탁받았는데 나는 못했다. 교사로서 배신감 많이 느꼈다. 다른 선생님들도 단원고 교감 선생님 자살했을 때, 모두 그게 낫다고 할 정도로, 어떻게 살지 모를 정도였다. 단원고 생존자 학생 한 명이 3학년 때 우리 학교에 전학을 왔다. 친구가 없고 단원고에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서였다. 우리 학교에서도 모두 조용히 했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지하: <당신의 사월>은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들려주는 거 같다. 누구나 2013년 4월 16일을 또렷이 기억해 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엔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 세월호 뉴스를 들었고, 그때 심정이 어떻고 다들 이야기할 수 있다. 그날 나는 어땠는지, 그때 이야기 나눠 주면 좋겠다.

나는 그때 미국에 있었다. 한국 뉴스를 꼼꼼히 찾아봤다. 멀리 있으니 더 답답하고 분노가 일었다. 동네 한인들이 신문 광고도 내고 진상 규명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그랬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한창일 때 한국에 돌아왔다.




상드: 서울에서 단체 활동할 때였다. 사무실 갔다가 '전원 구조' 뉴스 봤다. 생방송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모두 오보인 걸 알게 됐다. 점점 침몰해가는 배를 자꾸 봤는데, 그 안에 아이들이 있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다. 잠을 못 잤다. 노조 해고 투쟁하던 분이 자살하는 일 있었다. 노동조합에서조차 정치적 성향 다른 것 때문에 죽음에 대해 폄하하고 서로 싸우고 하니 힘들었다. 나는 그때 아이 엄마였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어린이집 부모들과 촛불 했다. 한 달 정도는 잠을 잘 잘 수 없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트라우마로 무력감이 컸다.


지하: 팽목항 가 봤나? 거기도 개발된다고 하더라. 해결된 건 없는데 흔적은 자꾸 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는데도 왜 이렇지? 진짜 뭐가 있지? 왜 진상 규명이 이렇게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하나?



걔: 비유가 될지 모르겠는데, 세상이 다 싫어하면서도 같이 꾸역꾸역 반복하는 일 있지 않나. 회사에서도 있고 집에서도 있다. 세월호도 그런 거 같다. 답답한데 이걸 건드리면 모두 다 건드려야 하니까 너무 무력한 거 같다. 어느 한 사람이 매조지할 수 없는 총체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못하고 시간만 가는 거 같다.


지하: 맞다. 하나 건드리면 다 걸리는 것. 하나 밝히면 고구마처럼 다 연결돼서 주르륵 꿰어 나오는 거라 이걸 못 건드리고 있다는 인상을 점점 더 받고 있다. 그래 보인다.



걔: 선생님 이야기가 그랬다. 7년 와 버렸는데 보다 보니 이게 한 사람이 다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무력감이 커지고 분노가 쌓이고 답답해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거 같다. 전체 과정을 크게 보고 결과를 내다보면 세월호를 통해 분명 좋은 유산이 남지 않을까 한다. 안산 생명안전공원도 그렇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어떻게 잘 버텨낼 것이냐. 힘든 시간을 통과해 나가면 최종적으로는 역사에 좋은 결과물로 남을 것이라 본다. 절망과 무력감을 견디고 계속 버텨내는 게 사실 가장 큰일이라고 본다. 오래 걸릴 거니까.




지하: 안산 생명안전공원은 잘 가고 있는 걸까?

숙: 가고 있다. 되돌릴 순 없다고 본다. 올해 국제 설계공모 들어갔다고 알고 있다.

혜: 그때도 지금도 황망하고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인데, 반대쪽으로 가는 일이 벌어지는 걸 본다. 잊고 있었던 게 많이 다시 생각난다. 본질적으로는 절망적이다. 기억하고 항상 다시 시작해야 한다. 책 읽고 생각을 나누고 기억하는 일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지하: 학교에서 선생님으로서 세월호 관련 프로그램 하면 그런 걸 왜 하냐? 그런 일은 없는지?

혜: 지금 학교로 최근 옮겼다. 여고다.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훨씬 깨어있고 진보적인 걸 본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긴 전교조가 있는 학교라 학생회 중심으로 활동도 살아 있다.

숙: 벼터내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내고, 조금이라도 주변과 연대하면서 살아내야 한다. 나는 글을 쓴다. 4월엔 세월호 관련 글을 계속 쓰고자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연대다. 혼자 쓰지 않고 주변에 뿌리고 한 사람이라도 생각을 나누고 함께 하고자 한다. 책 읽고 토론하고 영화 보고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지하: 맞다.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우리가 모임을 할 거다. 영화 함께 보는 것 계속할 거다.

상드: 노란 리본 다시 꺼내 달아야겠다. 친구가 손바느질로 만들어 준 건데 빨아서 다시 달아야겠다.

지하: 나도 생각을 바꿔 노란 리본 다시 달고자 한다.



<이름에게>

아이유 노래


꿈에서도 그리운 목소리는

이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글썽이는 그 메아리만 돌아와

그 소리를 나 혼자서 들어

깨어질 듯이 차가워도

이번에는 결코 놓지 않을게

아득히 멀어진 그날의 두 손을

끝없이 길었던

짙고 어두운 밤 사이로

조용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어김없이 내 앞에 선 그 아이는

고개 숙여도 기어이 울지 않아

안쓰러워 손을 뻗으면 달아나

텅 빈 허공을 나 혼자 껴안아

에어질 듯이 아파와도

이번에는 결코 잊지 않을게

참을 외로이 기다린 그 말을

끝없이 길었던

짙고 어두운 밤 사이로

영원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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