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오늘은 무슨 날일까요? 오늘처럼 의미 있는 날 여러분 뵙게 되어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맞다. 나는 설레는 목소리로 강의의 첫 운을 뗐다. 역사적인 여권통문의 날이었으니까. 양성평등의 날에, 양성평등 주간 첫날에 '다시 쓰는 성 평등 언어 사전'이라는 제목으로 두 시간 강의를 했다. OECD 최악의 젠더 격차 심한 나라에서 그래도 계속 성 평등을 고민하고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 즐거운 긴장이었다.
줌 화면에는 11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PPT 슬라이드 쇼를 화면공유하고 2분짜리 나이키 광고 하나 본 후였다. 여자가 운동선수로 살며 만나는 숱한 고정관념과 비난에 관한 영상이었다. "Crazy!"가 10번은 반복됐으리라. 내 강의가 무얼 말하려는지 살짝 힌트를 준 셈이었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성 평등 언어'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그런 각오를 하는 것. 어찌 보면 끊임없이 들려오는 '미친' 소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여권통문의 날'은 강의를 준비하며 나도 새롭게 확인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1898년 서울 북촌에서 이소사, 김소사의 이름으로 선언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를 기념해서 정부가 법정기념일로 제정했고, 2019년 10월 31일에 보도자료로 내보냈다. 그전까지 7월이던 양성평등 주간이 작년부터 9월 1일~7일이 됐다. 그리고 오늘 9월 1일은 그 주간의 첫 날인 '(양) 성 평등의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이 발표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9월 1일을 여권통문(女權通文)의 날로 한다." -양성평등기본법 38조 2항
첫째, 여성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둘째, 여성도 직업을 가질 권리가 있다.
셋째, 여성도 문명개화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나지만 여권통문에는 이런 표현도 있었다.
혹 이목구비와 사지 오관의 육체에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처럼 사나이가 벌어 주는 것만 앉아서 먹고 평생을 깊은 집에 있으면서 남의 제어만 받으리오. -여권통문
2. <다시 쓰는 성 평등 언어 사전> 강의를 찢었다!
여권통문으로 시작해서 "성 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로 끝나는 강의였다.
익숙한 문화 속에 있는 젠더 격차와 성차별적인 언어문화를 짚다 보니 결국 민주주의까지 갔다. 언어적 비언어적, 보이는 보이지 않는 차별 구조를 들여다봤다. 픽토그램과 구체적인 언어 사전 다시 쓰기를 시도해 보았다. 마무리로 다층적인 젠더 문제를 보고 일상에서 성 평등 언어를 어떻게 배우고 쓸 것인지 고민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가벼운 책 소개로 마쳤다!
낯선 분들을 줌으로 만나려니 시작 전엔 솔직히 긴장된 마음이었다. 나를 믿고 담대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남성이 둘이나 있어 긴장되면서도 내심 재미가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본격 들어볼 기회가 많진 않았을 것이다. 아주 실제적 강의였다는 소감을 두 남성 참여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평소엔 썩 좋아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맞다. 나도 상당히 오랜 세월 그랬으니까. 감사하다.
강의 시간관리도 완벽에 가까웠다.
4시 정시에 시작해서 첫 50분 강의 후 10분 휴식, 다시 30분 강의, 마지막 20분은 참여자 소개와 질문을 받고 5시 50분 좀 지나서 마쳤다. 내 앞서 두 시간 강의가 있었기 때문에 참여자들 편에 피곤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산시 여성 관련 기관 종사자들이니만큼 솔직한 피드백과 목소리를 나는 듣고 싶었다. 참여자들의 질문에 답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다 싶을 정도였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결론은? 나는 두 시간 줌 강의를 멋지게 찢었다! 내가 충분히 즐기고 행복하게 보낸 시간이었으니 더 무얼 바라겠는가. 내가 강의를 즐긴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기회였다. 토론 모임 진행하듯 끝에 참여자 목소리 듣는 시간이 즐거웠다. 쓰고 있는 책 퇴고를 올해 중 마쳐야겠다. 저자 강의로 북토크로 독자와 소통하고 싶다는 맘 새로워졌다.
3. 형식적 평등이냐 실질적 평등이냐
이 디지털 시대에 강의할 수 있음에 무한 감사한다. 나 홀로 하는 일이 결코 아님을 고백한다. 아무리 콘텐츠가 있어도 PPT 실력이 모자라는 나다. 물론 촌스러운 모양 대로 할 수도 있을 테지. 오늘도 다시 느꼈다. 이 두 시간 강의 준비를 위해 나는 도대체 몇 시간을 투자했던가. 여러 번 수정하고 좀 더 적절한 자료를 찾고 보충하는 과정에 대학원생 딸이 도왔다. 강의 시연하고 피드백도 딸이 짚어 줬다.
성 평등이란 개념을 들여다볼수록 내 현실과 닮아 있다. 글 쓰고 강의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나는 참으로 독립적인 여성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활동적인 삶을 이 나이에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독립이란 결코 나 홀로 선다는 뜻이 아니다. 주변의 도움과 연결망 없이는 결코 유지되기 어려운 독립성이다. 내가 강의에서 짚은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을 생각하는 이유다.
화장실의 예를 보자. 우리 집은 딸 하나 아들 둘 가진 5인 가족이다. 명절이나 휴가철 다섯 식구가 여행 중 휴게소를 들르면 놀라운 경험을 하곤 했다. 언제나 딸과 내가 화장실에서 늦게 나오는 거다. 세 남자는 늘 먼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여자들이 동작이 느려서 그런 줄 알던 때도 있었다. 사람이 많이 붐빌 땐 여자들이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틀림없이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 두 개 따로 있으니 형식적인 평등은 이루어져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 변기 수를 세어보면 불평등의 극치다. 몇 년 전 언론에 나온 공중화장실 전수조사 기사에 따르면 남자 변기는 36만여 개인데 여자 변기는 고작 22만 개였다. 심지어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7조'에 따르면 여자화장실 변기 수는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대변기를 합한 수보다 많게 하도록 정해져 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에서는 여자 변기가 1.5배 많아야 하건만 안 지켜진 거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남녀 구별 없이 같은 화장실을 쓰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장담할 수 없다. 여성이 겪을 불편과 성범죄 위험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실질적 평등권을 보장하자면, 여자화장실 남자화장실을 같은 면적은 물론 같은 변기수도 평등이 아니다. 여성이 왜 화장실에서 오래 걸리는지, 얼마나 더 자주 가는지, 그렇다면 얼마나 충분한 공간과 변기가 필요한지. 이런 실질적인 고려까지 해서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실질적 평등은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 두 공간 확보에 적정한 변기수 있다고 된건 아니다. 어느 쪽 화장실에서도 안전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예로 트랜스젠더는 남자화장실에서는 여자가 들어왔다는 오해를 사고 여자화장실에서는 비명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실질적 평등을 이루자면 배제되고 차별받는 이가 없어야 하는 것. 성중립화장실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고려는 결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평등권이다.
이런 식으로 들어가 보면 성 평등이란 결코 단순한 개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매우 다층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라 입장 차와 정황과 맥락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쓰는 성 평등 언어 사전'은 그렇게 고민거리를 던지고 아주 쉽고 가벼운 책 소개로 마무리 됐다. 누구나 차별주의자는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난 차별 안 해!"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라도 차별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아이들과 함께 감각과 언어를 다시 배우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