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일인 글벗에게
오늘 생일인 당신에게 축하글을 씁니다! 오늘이 생일이라고 말해 준 거 정말 고마워요. 얼굴도 나이도 아는 건 없지만 글벗으로 우리는 매일 보는 사이죠. 당신의 글을 읽다 보니 우리가 아직 얼굴로 못 본 사이란 걸 잊곤 해요. 오늘 태어난 당신에게 제 마음이 달려가고 있어요. 축하글로 인증하는 거 괜찮죠?
마침 제가 읽고 있는 책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생일 기념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들은 생일을 우리와는 좀 다르게 기억한다네요. 이름도 독특하게 짓잖아요. 바람 부는 언덕, 검은 나무, 붉은 노을.... 생일도 몇 월 며칠이 아니라 이런 식의 이야기로 기억한다네요.
너는 마당에 예쁜 장미꽃이 필 때 태어났지.
그는 첫눈이 오던 날 태어났어.
먼동이 환하게 열릴 때 태어난 사람.
앞산의 나뭇잎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였어.
넌 딸기가 익는 날 태어났단다....
아들의 생일을 기억하는 인디언 노인의 말 한 번 들어보실래요?
음, 그것이 정확히 몇 월 며칠인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그날을 기억할 수 있어.
그해 늦은 봄
달콤한 옥수수가 막 한 뼘쯤
땅 위로 올라왔을 때야.
그에는 그날 태어났어.
당신이 태어난 날은 어떤 날이었을까요?
왜 불쑥 이게 궁금할까요? 이건 순전히 읽고 있는 책 때문이겠죠. 책이 저 멀리 낯선 데로 저를 데려가고 있거든요. 당신이 태어난 그날로 어느새 저도 같이 가고 있나 봐요. 당신은 생일을 날짜 말고 다르게 기억하는 건 뭔가요? 뒷산에 알밤이 반짝반짝 여물어가던 날? 앞마당의 대추가 빨갛게 빨갛게 익어서 따다 널었지. 그날 네가 태어났단다. 혹시 어머니가 이렇게 들려주셨나요?
그날 밤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었대요? 태풍이 몰아치는 아침이었을까요? 동구 밖 들판 길에 코스모스가 하늘대는 해거름이었나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대요? 당신이 태어난 날은 양력인가요 음력인가요? 그때 추석 명절 전이었나요 후였나요? 당신이 첫울음을 울던 그날, 곁에는 누가 있었대요?
요즘 제가 좋아하는 홍로가 아삭아삭 맛있어요. 당신은 홍로가 가장 맛있게 익어갈 때 태어나셨군요. 홍로가 나오면 당신의 생일을 기억할게요. 이제 곧 새콤달콤 사과 홍옥도 나오겠죠. 제가 좋아하는 과일이 가을에 나는 게 많아요. 사과면 다 좋아요. 감도 좋고 대추도 밤도 너무 좋아요. 시골에서 줍고 먹고 자라서겠죠.
9월 18일 아침에 찍은 벽오동 나무. 잎은 푸르고 열매는 갈잎처럼 점점 마르고 있죠.
아! 당신의 생일은 벽오동 열매가 더 진하게 가을색으로 영글어 가는 날이로군요.
한 주 한 번 주말에 오는 서울 집이자 교회 뒤란에 벽오동이 한 그루 있어요. 부엌 창으로 내다보면 계절마다 변하는 벽오동을 볼 수 있어요. 3층 베란다에선 벽오동이 더 가까이 있죠. 나무 껍질이 벽색(푸른색)이라 벽오동이라죠. 잎은 여전히 푸른데 한 주만에 씨방은 더 가을색으로 짙어 졌네요. 이런 신기한 나무라니, 처음 본 날의 감동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오동나무 잎 모양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요.
김도향의 <벽오동>을 아시는지요? 당신의 생일 축하로 지금 듣고 있는데 어떤가요? 뜻도 모르면서도 어릴 적 이 노래를 그냥 좋아했더랬어요. 슬픈 것도 같고 즐거운 것도 같고, 어딘가 아득한 봉황의 나라를 그려보게 하는 노래였어요. 와뜨뜨뜨뜨..... 이 대목이 참 재미있어서 흉내내며 불렀더랬죠.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오시뇨
달맞이 가잔 뜻은 님을 모셔 가져인데
어이타 우리 님은 당도 아니 오시느뇨
하늘아 무너져라 와뜨뜨뜨뜨
잔별아 쏟아져라 와뜨뜨뜨뜨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자터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아~~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자고 심었더니 봉황은 안 오고 벽오동만 영글어가는 계절인가요? 재능과 품위가 있는 님을 뜻하는 전설의 새 봉황. 벽오동 잎이 오래오래 푸르른 이유도, 열매가 저리 영글어 가는 것도 다 봉황 때문이라고요? 벽오동에게, 당신이 봉황으로 오신 님 아닌지요?
아 참, 봉황과 벽오동을 그림으론 많이 봤더라고요. 화투 있잖아요. '똥광'이라고 하는 11월 패요. 그게 왜 똥이 됐는진 모르겠는데 그림이 참 신기하잖아요. 거기 나오는 새가 봉황이고 넓적한 잎과 열매 그게 벽오동이래요. 참 수수께끼 같은 화투 그림이었는데, 벽오동 나무를 보다 똥광의 비밀까지 알게 됐지 뭐예요.
벽오동 심은 뜻은 그리운 님을 보고자 함이었군요. 저 갈색으로 변하는 벽오동 열매를 보세요. 저 놀라운 모양과 색깔에 사람들이 봉황을 상상하지 않았나 싶어요. 봉황이 날아와 앉은 형상으로 딱이다 싶잖아요. 초가을의 햇볕을 받으며 벽오동이 오늘도 한 걸음 더 가을 속으로 여물어 가는군요.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자고? 봉황은 봉황대로 아름다운 새고. 봉황이 오면 봉황이 와서 반가운 거고 벽오동은 벽오동이라 멋진 나무라고! 벽오동 심은 뜻은.... 흥얼거리며 당신의 생일을 기억할게요!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