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과연 '나쁜 말'이기만 할까? <욕 좀 하는 이유나>
배우의 가장 큰 도구는 상상력인데 욕을 잘 쓰는 것도 큰 능력 중 하나예요. 욕을 쓰면 상처 주고, 달래고, 어르고, 겁주고, 모욕 주고, 유혹도 할 수 있죠. 영어에서 사용하는 모든 욕 중에 뻑 fuck이 가장 다양하게 쓰입니다.....
넷플릭스 교양프로 <욕의 품격 History of swear words>에서 진행자 니콜라스 케이지가 한 말이다. 욕이 유용하다는 걸 여러모로 보여주는 시리즈다. 예로, 얼음 물에 손 넣고 버티기에서 욕하는 쪽이 침묵하는 쪽보다 훨씬 오래 견딘다. 욕을 하면 악력이 5%나 좋아진다. 욕은 창의력, 저항의 방법, 카타르시스, 정신건강에 좋다, 등등.
그럼 아이들에게 욕을 가르치라는 소린가? 아이들의 '나쁜 말' 때문에 마음 쓰는 어른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아이의 입을 단속하고 야단쳐 보았을 테니까. 욕하는 아이에겐 왜 칭찬이 아니라 꾸중이 돌아갈까? 그런데 아이들은 왜 욕을 쉽게 배우지? 아이에게도 욕이 유용하고도 창의적인 도구가 되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
<욕 좀 하는 이유나>는 본격 욕을 탐구하는 동화다. 초등학교 4학년 유나는 소미에게 아주 특별한 의뢰를 받는다. 친구한테 복수할 때 쓸 ‘창의적인 욕’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유나는 하기로 결심한다. 사전을 샅샅이 뒤지며 욕을 연구하는 유나. 고자질 당하지 않을 작전계획까지 짜고, 마침내 친구를 도와준다.
"먹칠. 몰골. 씨방부터 씨뿌리까지. 씨부렁. 맹추. 맹탕. 똥통에 빠질 녀석. 치석 틈에 똬리 튼 충치 같은 녀석. 같잖은 머리통이 깡그리 깡통. 번개 맞은 꽹과리 깝죽거리고 있네. 넓은 잎 쥐오줌풀, 노박덩쿨에 엉켜, 벌통 치고 토끼다. 망할 녀석....."(47쪽)
이런 낯선 단어들이라니. 윤아가 사전에서 직접 찾아낸 '창의적인 욕'이다. 욕이 아니라 아름다운 우리말 공부 아닌가? 윤아는 조금 더 직설적이고 효과적인 표현들을 찾아 쓴다.
"너는 싸가지를 깍둑썰기로 썰어 먹었냐? 이 씨알머리 없는 무뢰한아. 너 무뢰한이 뭔지 알아? 너처럼 무례한 사람을 말하는 거야. 생긴 건 딱 넓적송장벌레처럼 생겨 갖고. 네 낯짝을 보고 있자니 구짝에 넣어 뚜껑에 못질하고 싶다. 꽝꽝!" (53쪽)
류재향 작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친구를 기억하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이슬비가 내리던 날 라볶기를 사 준 친구가 있었다. 다투더라도 금방 화해하고 소통하던 친구였다. 친구 때문에 작가는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노력했다며 질문을 던진다.
내겐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 하는 친구가 있는가?
작가는 소설과 드라마를 쓰다가 어린이 논픽션에 이어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다. 자신의 세계를 성장시켜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는 다채로운 이야기, <재난에서 살아남는 10가지 방법>, <비밀클럽 흩어진 지도를 모아라> 등을 썼다. <욕 좀 하는 이유나>는 맛깔나는 이야기에 이덕화 작가의 그림이 잘 어우러져 읽는 재미를 더해 주는 책이다.
아이들의 언어생활을 생각하는 어른들이 읽으면 좋겠다. 욕 좀 하는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어른이 함께 보자. 인간관계를 확장하며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판소리, 각설이, 탈춤처럼, 넘치는 해학과 재미를 맛 볼 것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 하는 좋은 친구다. 읽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놓치고 후회하기 없기!
“이상한 일이에요. 유나의 욕 좀 들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서 온종일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에요. <욕 좀 하는 이유나> 속 아이들은 실수도 하고, 복수도 하고, 돕기도 하며, 용서도 해요. 모두 정말 멋있지요. 누군가를 따라하지 않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거든요. 비록 그게 욕이지만 말이에요.”- 송미경(동화작가)의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