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Sep 10. 2021

영화같지 않아?

<비커밍 아스트리드>로 울림 씨네페미니즘 영화토론을 마치고

아스트리드는 용기있는 사람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 시대를 직관적으로 살아낸 사람이다.

자기답게 사는 모습. 약자에 대한 민감성을 키워주는 영화다. 내 목소리를 보여주는 영화다.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영화다. 영웅스토리다.....


울림 씨네 페미니즘 영화토론 진행을 마쳤다. 엊저녁 마지막 8강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제주 여행 중의 접속이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 대한 폭포같은 감상을 보라. 멋진 영화 좋은 사람 아름다운 토론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노멀, 울림 토론은 워낙 '전국구'였는데, 이제 제주도까지 들어오고 마친 셈이다. 제주 애월 고내리 조용한 곳에서 와이파이되는 독방까지 제공한 친구에게 고마운 밤이었다.


대장정의 울림 씨네 페미니즘이었다. 시작할 때 전문가 강의 세 번 때는 서른 명 넘는 사람들이 접속하는 열기가 있었다. 이어 격주로 한 영화토론엔 15~ 20 명이 함께 했다. 스물 몇 명 이럴 땐 줌 작은 화면의 아쉬움.... 영화 토론만으로 3개월 넘게 달려온 우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6월 3일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시작으로 9월 9일 <비커밍 아스트리드>까지. 아~~ 대단한 여자들. 영화도 대단했고 참여자도 진행자도 모두 '미친' 프로젝트였다.


윤가은 감독과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여성 영화감독과 이렇게 친구들의 수다처럼 대화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알차고도 재미있고 편한 씨네 토크였음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질문도 준비하고 사전 공부하고 진행했지만, 워낙 윤가은이라는 인물 자체가 그 시간을 채워주었음을 어찌 부인하랴. 탁월한 토크 진행 실력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끝났으니 이제 내 맘대로 자뻑으로 마무리하련다!)



그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영화와 감독들에게 감사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윤가은 감독과의 대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당갈> <파리의 딜릴리> <툴리> <69세> 그리고 <비커밍 아스트리드>. 열쇳말과 주제를 고려하며 선택지를 여럿 준비했던 덕을 봤다. 접근성 문제 등으로 후반 세 편이나 목록 수정했으니까. 탁월한 선택 용기 있는 결정, 더욱 빛나는 토론이었다.


나를 칭찬하고 감사하고 격려하고 싶다. 내 삶에 영화는 마치 내 인생역정의 메타포 같은 게 됐다. 흔히 멋진 걸 보면 '영화 같다'라고 하지 않나. 자신과 화해하며 자기 길을 찾아가자니 미친 듯 영화를 보았고 가지를 뻗어 확장되는 복을 누렸다. 즐기고 파다 보니 영화 전문가도 아닌 것이 이렇게 영화 토론하며 놀고 있다. 독서활동가로 영화 토론까지, 영화 같지 않아? 진심 즐거웠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몰입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게 인간이잖은가. 내게 씨네 페미니즘 8번의 진행은 그런 시간이었다. 관심 주제를 공부하는데 누가 말리랴. 시간이 늘 아쉬웠다. 논제 준비라는, 어떤 날은 맨땅의 헤딩 같은 시작을 하지만, 빠져들면 몰입의 세계. 그런 역작과 함께 토론하는 시간은 당연히 설레고 기대된다. 반응적이고 솔직하고 통찰 넘치는 벗들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이 맛이야, 화룡점정이 따로 없었다.


유쾌하고 쉽고 가볍고 그러나 의미 있고 진지하며 울고 웃는 배움이었다. 통찰 넘치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온몸에 전율이 오곤 했다. 울컥 눈물이 나는 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스트리드처럼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고 싶었다. 춤추고 싶은 때는 어깨가 들썩였다. 그런 즐거운 길에 함께 하며 통찰을 나눠준 씨네 페미 벗들에게 뜨겁게 감사하고 싶다. 새로운 친구로 합류한 벗들에게 고맙다.


내게 진행의 기회와 '실력 발휘' 기회를 주고 '강사료'도 준 울림에게 감사한다. 그동안 회원 활동하며 누려왔지만 울림은 딱 내게 맞는 배움과 활동의 공간이다. 알수록 '엄청난' 여자들이 우글거리니 서로 배운다. 단체 명 앞에 붙은 '함께 크는 여성'이 그냥 하는 수사가 아니다. 맘 놓고 나로 살 수 있는 공간. 함께 놀며 같이 나이 들어갈 사람들이 있는 곳. 강사료까지 받으며 놀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다.



씨네 페미니즘에 나와 다른 공간에서 토론하는 벗 영미가 함께해서 행복했다. 울림 씨네 페미니즘을 시작하며, 이 좋은 걸 나만 하긴 아까워 단독방들에 뿌렸더랬다. 그중 영미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했다. 날카로운 질문과 깊은 통찰과 솔직한 이야기로 영화 토론을 더 풍성하게 해줬다. 친구야 고맙다.


여기 더해서 내 딸이자 페미 친구인 민지가 후반에 함께한 걸 빠뜨릴 수 없겠다. 공무원 3년 하고 때려치우고 올해 로스쿨 학생이 되어 공부로 바쁜 사람이다. 내가 만든 논제를 감수해 주고, 예쁘게 PPT도 만들어준 숨은 조력자요 멘토요 선생이다. 우리 모녀는, 울림 씨네 페미니즘 토론의 메타포 같다. 노소 여성의 입장과 통찰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자리였으니까!


영화 토론에 내 짝꿍 덕이도 함께 했다. 그와 나는 결혼생활 31년째 함께하고 있다. 페미니즘을 같이 하면서 우리는 가부장적인 남편과 아내 관계를 이혼하고 페미 커플로 재혼했노라 말하곤 한다. 사랑하는 연인이요 예수의 친구, 페미 동지, 지성과 영성과 몸을 나누는 인생 동반자.... 5년여 여러 토론 모임을 하면서 그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찐' 복받은 남자로 살고 있다.


아~~ 씨네 페미니즘의 감동을 끝내긴 아깝다,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영화 토론 모임을 후속으로 어떻게 정례화해야 하지 않겠냐는 소리, 고무적이었다. 왜 아니겠나. 이런 영화 토론을 어디서 맛보랴! (다시 자뻑으로!) 마음을 나누고 글을 나누며 마무리해보자. 새 길은 언제나 용감한 사람의 몫. 아스트리드가 그랬듯이 말이다. 이후의 씨네 페미 친구들이 걸어갈 길 또한 기대된다.




제주 애월의 금요일 아침 지금 시각은 8시가 조금 넘었다. 밤부터 계속 비가 오고 있다. 지난 4박 5일 여행 동안 제주 날씨의 맛을 풍성하게 누렸다. 하루 중 비와 바람과 햇빛 찬란함과 구름과 포근함을 모두 맛보는 일상이었다. 어제 하루는 제대로 된 가을 낮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빗소리를 들으며 씨네 페미니즘 마무리 글 하나 남겼다. 이제 나는 제주의 남은 하루를 즐기련다.



씨네 페미니즘 포에버~~



어제 마지막 논제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전기 한 단락 인용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2002년 1월 28일 오전 10시 바사스탄의 자택 침대에서 영면했다. 그 곁에는 간호사 두 명과 의사, 그리고 카린이 있었다. 그날 스톡홀름의 남녀노소가 달라가탄 46번지로 몰려와 문 앞에 꽃을 내려놓고 촛불을 밝혔다. 그날 밤에는 텔레비전 특별 방송이 편성됐고, 이튿날 스칸디나비아와 독일 신문들은 린드그렌의 삶을 조명하는 부고를 실었다. 스웨덴의 주요 신문들은 린드그렌에 대한 특집 기사를 보도했다. 여왕이나 고위 정치인에게 어울릴 법한 장례식이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거행되었다. 페미니스트와 그 자손들, 스웨덴 총리,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국왕 가족, 그리고 십만 명이 넘는 스웨덴 시민들이 스톡홀름 구시가지의 오래된 교회 스토르쉬르칸으로 향하는 운구 행렬을 따라 거리를 메웠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날인가. 얼마나 경이로운 삶인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전기,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옌스 안데르센, 창비, 2020) 458쪽










매거진의 이전글 비커밍 아스트리드 앓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