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친구이자 애인이자 모든 것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3반 박채연에게

by 꿀벌 김화숙

아빠에게 언제나 세상 모든 것이었던 채연아!

네 약전의 제목으로, 너를 향한 아빠의 마음을 가장 잘 담은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들리지?


아빠에게 좋은 딸이자 아들이자 애인이자 친구이자, 언제나 세상 모든 것이던 채연아! 너와 함께 한 시간은 아빠 인생에 짧은 꿈이었을까? 17년 동안 너는 아빠를 서운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태어난 순간부터 말썽 없이 순리대로 잘 자라준 너에게 아빠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구나.


사춘기 소녀의 반항도 없었고 아빠 맘을 말없이도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였지. 너는 진정 아빠의 모든 것이고 기둥이고, 분신이자 버팀목이었다. 아빠에게서 그 모든 게 사라져 버렸어 채연아. 아, 그러고도 세월은 가고 아빠는 살아가는구나. 또 봄이 오고 4월이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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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너를 그리워하다 보면 네가 불러주던 이 노래가 생각나곤 하지. 이젠 아빠에게 가장 슬픈 노래가 돼 버렸건만, 여전히 네 목소리로 들리는구나. 그런 날이면 아빠는 소주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없단다. 어제도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꿈에 네가 와 줬어. 고맙구나 채연아. 요즘 아빠가 너무 자주 마시지? 그럴 때마다 네가 "아빠, 술 좀 그만 마셔" 걱정해 주었지. 꿈속에서 들은 네 목소리를 기억하며 아빠는 다시 힘을 내려 애쓰고 있단다.


채연아 아니?

오늘도 실은 소주 한 잔 마시고 있어.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데 네가 너무 보고 싶은 거야. 이럴 땐 속수무책이야. 아빠 혼자 울고 앉아 있는 것도 이젠 못 하겠어. 네 3주기 때 나온 시집 <꽃으로 돌아오라>를 또 읽었지. 박광배 시인이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21분'에다 딱 아빠 맘을 말해 주었구나. 좀 들어 볼래?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고

무얼 해도 재미가 없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어쩌다 떠오르면 소주 먹는다


별이네 새봄이네 꽃이네 노을이네

다 빛을 잃었다


소주 말고 뭘 먹겠냐. 아빠가 술 한잔하고 싶으면 너희들 치킨집에 데려가던 때가 생각나는구나. 너는 대학생 되면 아빠 술친구 해주겠다 말했지. 아빤 운전면허부터 따서 아빠 술 마신 날 대리 운전해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 아빤 그만큼 널 믿고 의지했으니까. 아! 세월호 8주기라는 게 말이 되니? 4월이 오는 것도 봄꽃을 보는 것도 아빠는 힘들기만 해. 박관서 시인이 이 아빠 맘으로 '사월의 물음'을 물어주는구나.


다시 사월입니까?

냇고랑의 미나리들은 푸르고

산골짝의 개나리 진달래들은 울긋불긋합니까?

제 스스로 부끄러워 제 살을 찢어

꽃망울을 터뜨립니까?


SE-76de5af8-7658-4d51-b107-b50bab79bfb2.png?type=w1 단원고 2학년 3반과 함께 한 3월 '생명안전공원예배'에서 채연이를 소개한 줌 화면 캡쳐.


그립고 보고 싶은 내 딸 채연아!


아빠가 지난날을 돌아보면 너는 늘 순한 아이였어. 그게 고마우면서도, 아빠가 주눅 들게 해서 그런 걸까 마음이 아프곤 했지. 우리 집은 좀 달랐잖아. 채연이 5학년 희연이 3학년 때 아빠가 엄마와 이혼하고 너희들 데리고 집에서 나와야 했지. 그날부터 아빠는 너희들을 더 강하고 예의 바르게 키우겠다고 다짐했어. 아는 사람의 원룸에 살면서, 반드시 더 좋은 데서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도 했지. 방 두 개 집으로 이사한 후에 네가 중학교에 갔잖아.


채연 이만의 방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구나. 못난 아빠를 용서하렴. 내 가슴속 너만의 방에 있어 주니 고맙구나. 아빠를 아빠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봐준 네가 고맙구나. 사랑한다 채연아.


아빠가 너희들을 철없는 애들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려 노력한 거 알지? 이혼 후 괜찮은 척 거짓말 안 하고 너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어. 친구 같은 아빠이자 엄마도 되려 했잖아. 아빤 너희를 연약한 딸 취급하고 싶지 않았단다. 아들인지 헷갈릴 정도로 몸 싸움하며 거칠게 놀곤 했지. 너희들과 같이 주말마다 나들이도 많이 했잖아. 고궁, 신사동 떡볶이, 야구장, 압구정동, 쇼핑..... 아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길 바랐어. 아침밥은 꼭 차려주고 친구들 데려오면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었구나. 정말 우린 행복했어, 그치?


사춘기 딸을 엄마 없이 키우자니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우린 잘 헤쳐 나왔구나. 채연이가 아빠에게 거리낌 없이 말해주니 우린 속옷 매장도 같이 갈 수 있었어. 엄마 없는 딸이라 혹시라도 남의 눈에 부족한 게 보일까 봐 아빠가 너희한테 공부를 더 강요한 건 사실이야. 늦은 시간까지 학원 보내는 건 싫으니까 과외를 오래 시켰구나. 고등학교 공부가 힘들다는 네게 아빠가 좀 쉬라고 말했을 때, 진심이었어. 하지만 착한 너는 야자까지는 안 쉬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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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이의 방. 채연이의 꿈은 디자이너.


아빠의 친구 채연아!


아빤 아쉬운 게 많아 슬프단다. 집안일 챙기고 동생에게 양보하는 큰딸의 짐을 네게 많이 지게 했어. 네가 일찍 철이 들고, "고마워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더 잘할게요"를 잘 쓴 것도 그런 이유 같아. 네가 우리 집의 중심축인 건 사실인 걸 어쩌겠니. 자매간에 다투기라도 할세라 아빤 이유불문 너를 먼저 혼내고 잔소리가 귀에 못이 박이게 했구나. "우리는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 언니만 한 사람 없고 동생만 한 사람 없다. 둘이 무조건 잘 지내야 한다."


또 하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네 꿈을 지켜주지 못한 게 원망스럽고 후회되는구나. 중2 때부터 옷 스케치 만화를 따라 그리면서 넌 디자이너를 꿈꾸었지. 디자인 전문 고등학교 보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넌 미술을 따로 안 배웠으니 갈 수 없었어. 비싼 학원비 신경 쓰느라 너는 자꾸 미루었어. 2학년 되면서부터 아빤 학원 보내주려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제 소용없는 일이구나. 디자이너 딸한테 비싼 벤츠 선물 예약해 뒀는데 말이다.


네가 결혼을 안 하게 되면 무조건 아빠하고 같이 살기로 했지? 한 건물에서 오순도순, 친정 엄마와 딸처럼 수다도 떨고 같이 음식도 만들어 나눠 먹으면서 함께 나이 먹어 가기로 했잖아. 상상만 해도 든든하고 행복한 그 꿈이 허무하게 물거품이 될 줄은 몰랐구나. 오늘 밤도 아빠는 소주 한 잔 마셔야 잠들 것 같아. 아빠 꿈에 와 줄 거지?


내 딸 채연아! 너는 영원히 아빠의 딸이자 아들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자, 나의 온전한 세상이야. 고백하고 또 고백한다. 보고 싶다. 채연아 사랑해!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3반 고 박채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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