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크게 소리질러, 밥은 먹었어요?

2,345일 동안 따뜻한 밥상으로 세월호 유가족들 곁을 지킨 사람들

by 꿀벌 김화숙

“밥은 제때 먹고 댕기나?”

“엄마. 귀찮다고 밥 대강 먹는 거 아니겠지?”


오늘도 구순 노모와 환갑 딸의 통화는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났다. 암 수술 후 9년이나 됐건만 나는 여전히 노모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나도 질세라 독거노인의 밥상을 묻고 확인하곤 한다. 가서 맛있는 거 해드릴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세상이 먹고살 만해졌다고들 하지만, 모녀는 아직 밥보다 더 나은 안부 인사를 못 찾은 셈이다.


<밥은 먹었어요?>(이영하, 걷는 사람, 2022)라며 밥으로 인사하는 책이 있다. 2,345일 동안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둘러앉아 늘 함께 먹은 사람들이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 곁을 지키며 함께 울고 웃은 자원활동가들 이야기이자 ‘치유공간 이웃’(이하 이웃)에 관한 기록이다.


치유공간 이웃은 2014년 9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안산에서 활동했다. 참사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안산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평범한 가정주부들과 직장인들이었다. 치유 밥상, 떠난 아이들의 생일잔치, 뜨개질과 상담 등으로 그들은 어려운 시간을 유가족들과 함께 헤쳐왔다.


안산에서 줄곧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저자 이영하도 참사 후 이웃에서 피해자들을 도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웃이 문을 닫은 현재는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마음이 힘든 이들을 돕고 있다. 그는 이웃을 한마디로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로 정의한다.


책은 평범한 자원활동가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최순옥, 김서원, 박혜자, 문지원, 곽정숙, 엄원주, 진선미, 김동현, 박철, 정설진… 최순옥 실장의 특기는 평범한 재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 7년간 몇만 개의 밥상을 차렸다. 진선미 씨는 가장 많은 일을 한 멀티플레이어. 연근조림, 밥상 나르기, 생일잔치 준비에 뜨개 전시 예술감독도 맡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영화 <생일>(이종언 감독, 2019)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종언 감독도 이웃에서 자원활동한 경험으로 영화를 만든 경우다. 나는 반면 이웃이란 공간도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잔치도 영화와 책으로 알게 된 사람이다. 영화 속 수호네 옆집 아줌마 모델이 내가 만난 시민 활동가인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이웃의 자원활동가 중 소설 쓰는 박혜지 작가가 있다. 막 등단한 후라 그는 참사 5일이 되도록 집에 틀어박혀 글만 쓰고 있었다. 한국작가회의 행사에서 참사의 실상을 듣고 충격을 받은 후 안산에 오게 된 경우였다.


"그때 그 소식을 듣고 “내가 가고 싶다.” 했죠. 좀 거창하게 들릴까 봐 그렇긴 한데, 그냥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내 왔던 5일간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작가 누구라도 가야 하는 거라면 내가 가면 좋겠다고 했죠." (64쪽)


5일간에 대한 죄책감. 이 짧은 구절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5개월도 5년도 아닌 단 5일인데, 틀어박혀 글 쓰는 건 작가의 본업 아닌가. 안산 가는 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느낀, 그걸

나는 알고 싶었다. 행동을 바꾸게 한 죄책감이었다.


작년 말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2022년 한해를 정리하면 ‘과이불개’(過而不改)라고 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고 꼬집은 이유는 “10.29 같은 후진국형 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지려는 정치가 안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10.29 참사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이 나라 정치의 사례로 언급됐다. 그런 참사가 일어난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고통이자 트라우마가 된다. 2014년의 4.16과 판에 박은 듯 같은 참사로 2022년에 10.29가 있었다. 잘못은 있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권력은 변명과 책임 전가만 했다. 피해자들에게 나라도 정부도 없다.


‘과이불개’(過而不改)에서, 내게 도드라져 보이는 글자가 하나 있다. ‘개’(改)다. 기독교회에서 많이 쓰는 단어 ‘회개’와 겹쳐 보여서다. ‘잘못을 뉘우치고(悔) 고친다(改)’는 뜻의 회개는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지 싶다. 기독교인은 회개를 많이 하는가? 교회는 행동을 고치고 다른 삶을 살라고 지지할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회개를 얼마나 많이 자주 하느냐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무엇을 왜 회개하느냐, 그 관점이 아닌지 모르겠다. 잘못으로 느껴야 할 것에는 떳떳하고, 잘못 아닌 걸 잘못이라고 회개하면? 그 뉘우침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뉘우치고 고칠 게 과연 있을까?




박혜지 작가가 뭘 잘못했기에 죄책감을 느꼈을까? 그가 세월호 가족을 향해 욕을 하길 했나, 단식 가족 옆에서 피자를 먹길 했나. 그가 느낀 감정은 아마도 사회적 무관심 또는 무책임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잘못을 고치고자 했을 것이다. 관점이 달라진 그의 눈에 사회적 책임이란 특별할 것 없는 당연한 자기 일이 됐을 것이다.


기독교회에서 사회적인 책임 또는 행동을 가르칠까? 나는 오랜 세월 잘못 배운 신자로 살았음을 고백한다. 사회 정의, 민주주의, 데모, 노조, 이런 단어는 ‘빨갱이’와 연결되는 경우를 많이 듣고 자랐다. 교회에서 배운 ‘영적인’ 삶은 그런 것과 거리를 두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여자는, 특히 사모의 미덕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순종과 희생’이라 배웠다.


세월호 참사 당시 나는 가정과 교회와 직장만 아는 지친 중년 아줌마였다. 물리적으론 안산 시민이었지만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나는 귀를 반쯤 막고 살았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단원구가 아닌 상록구에 살아서였고 그봄 내 몸이 아주 아파서였다. 아픈 봄이 가고 나는 7월 초 암 수술을 했다. 수술 후엔 자연치유에 집중하며 은둔자처럼 살았다.


“차라리 내가 암 환자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누가 날 탓할 수 있겠는가!”


검은 현수막이 펄럭이는 거리에 나가면 합리화하곤 했다. 마음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안산인데, 우리 막내도 고2였는데, 나는 아무 상관 없는 양 사는 게 늘 찔렸다. 해결책을 모르는 숙제였다. 어떻게 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없었다. 아주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안산 시민 촛불집회에 나는 한번도 나간 적 없었다. 단원고등학교도, 합동분향소도, 치유공간 이웃도 나는 전혀 몰랐다. 세월호 가족이 주변에는 한 명도 없었다.




내 몸과 맘이 회복될수록 내 안에 갈등도 커갔다.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서 세월호 부모들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같이 울고 소리지르며 나는 새롭게 일어났다. 촛불 이후 나는 이전보다 더 강하고 건강한 몸으로 새로운 삶 출발할 수 있었다.


나는 여성단체에서 ‘별을 품은 사람들’로 세월호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단원고 아이들 약전을 읽고 토론하며 참 많이 울고 웃었다. 세월호 행사에 참여하고 부모님들과 만나 포옹할 수 있었다. 416안산시민연대로 매달 ‘별에게 보내는 편지’로 416합창단으로, 곁에 서 있다.


마가복음 10장 48절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여리고에서 시각장애인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를 향해 소리질렀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은 시끄럽다며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크게 소리질렀다. 뭘 원하느냐는 예수에게 그는 “보기 원한다”라고 답한다. 어떻게 됐을까?


올해 내 삶의 기도 제목은 “더욱 크게 소리질러”다. 오랜 세월 성차별적인 사회와 교회에서 목소리와 개성을 죽이던 습관을 더 떨쳐내고 싶어서다. 내 생각과 감정을 더욱 크게 소리질러 말하고 글 쓰고자 한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치는 이들을, 더욱 크게 소리질러 응원하고 싶어서다. “밥은 먹었어요?” 따뜻하게 인사하고 포옹하는 이웃이길 기도한다.


쉽지 않을 새 한 해, 세월호 가족들과 곁에 있는 이웃들에게 크게 소리질러 인사해 본다.

“밥은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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