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9주기, 영화 <장기 자랑>을 보며 부활의 춤을 추자
꽃 피고 잎 자라는 4월이다. 겨울을 버텨낸 삼라만상이 노래하고 춤추는 계절이다. 봄까치꽃, 민들레, 꽃다지… 안산 천변에 피는 작은 꽃들이 나날이 활짝 웃는다. 이런 계절을 어찌 무심히 지나치랴. 봄볕 아래 나는 팔다리를 흔들고 춤을 추며 걷는다.
“춤 잘 추시네요. 참 보기 좋아요!”
신나게 몸을 흔들며 걷다 보면 종종 인사를 듣는다. 나는 더 큰 웃음과 몸동작으로 화답한다. 맞다. 나는 춤을 좋아한다. 내 기분대로 몸을 움직이는 게 즐겁다. 춤 잘 추고 싶다. 인간이 말하는 존재라지만, 알고 보면 말로 할 수 없는 말을 몸이 한다. 그래서 나는 춤추는 몸이 좋고 춤이 좋다.
춤에 입문한 건 여고 2학년 봄이었다. 딱 이 계절에 수학여행이 있었다. 장기자랑 준비 단계에서 우리 반 춤꾼 명희가 나를 불렀다. 장기자랑 춤팀에 들어오라는 제안이었다. 그때까지 춤이라곤 춰 본 적 없는 '범생이'인 나와 춤을?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같이 춤추라고.
명희는 다른 친구 3명과 함께 장기자랑 계획을 다 짜두고 나를 영입한 것이었다. 내게 춤을 가르쳐 주고 캐릭터를 살려 재미를 더하겠다는 뜻이 있었다. 촌뜨기와 춤과의 조우였다.
“우리는 거지 춤꾼들이고 화숙이가 거지 대장으로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다. 잘 추는 우리가 분위기 만들어 놓으면 각설이 한복 입고 니가 나와. 난장판으로 같이 춤추고 놀면 돼.”
의기투합한 다섯 가시나들은 명희네 자취방에 매일 모였다. 더 정확히 말해 다이아몬드 스탶도 모르는 나를 가르치는 게 시작이었다. 어라? 낯선 춤동작이건만 따라하는 게 재미있었다. 금방 한 팀이 되어 나는 춤을 즐기게 됐다. 수업 중에도 어서 춤추러 가길 기다릴 정도였다.
다섯 소녀의 춤판은 수학여행 가는 기차 안에서부터 폭발했다. 알고 보면 슬픈 가사인데 ‘원웨이 티켓’에 그렇게 신나게 춤을 추다니. 객차 통로를 우리가 접수했다. 담임 선생님의 외침이 기억난다. “와~~ 화숙이는 하와이 가야겠네. 춤을 언제 저래 배웠노!” 수학여행 마지막 밤 장기자랑은 어땠을까? 거지 각설이들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춤추던 10대는 춤추는 어른으로 살았을까?
인생도 영화도 반전의 맛 아니겠나. 나는 춤은 고사하고 목소리도 없는 ‘순종적인 청교도’처럼 살았다(청교도가 모범 신앙이라 배웠으니 더 말을 말자). 성차별에도 권위주의에도 침묵하는 여자가 무슨 춤을 추랴. ‘간이 배 밖에 나온’ 중년이 돼서야 다시 ‘춤바람’이 났다.
여고 수학여행을 불러낸 건 다큐 영화 <장기자랑>이었다. 지난 2월 말 안산 시사회로 본 영화는 4월 5일에 전국에 개봉한다. 연극하는 세월호 엄마들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잃고 무슨 노래며 춤이냐 하던 분들이 ‘노란 리본’ 극단에서 연극하고 있다. 그 기록이 영화가 됐다.
9년 전 단원고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며 준비한 장기자랑이 연극 제목이 되고 영화 제목도 됐다. 내 여고시절과 달리 그 아이들은 장기자랑을 못하고 별이 되었다. 유가족 엄마들이 단원고 교복을 입고 아이 이름표를 달고 무대에서 연기했다. 다투고 화해하며, 울고 웃으며 노래하고 춤추는 이야기다.
“별과 함께 춤을”
이 봄에 내 춤바람을 부추긴 또 하나의 초대장 제목을 보라. 416안산시민 연대로, 별과 함께 춤을 추잔다. 같이 춤추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세월호 9주기를 춤으로 살아내자고 했다. 세월호 이후 9년이 되도록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래, 슬픔도 눈물도 답답함도 춤추면서 넘어가자는 초대인 게다. 아이들이, 춤 좀 추는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한판 춤 퍼포먼스를 벌이겠다.
작은 움직임으로 춤추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춤. 416합창단에서 노래하는 춤. 울다 웃고 웃다 우는 춤. 유가족들과 연대하는 춤. 글쓰기 춤…
부활절이 든 4월이다.
겨울을 견뎌내고 다시 와준 봄이 고맙다. 이 계절을 즐거워하자. 죽음과 부활을 알고 경험하는 계절이면 좋겠다. 아프고 슬픈 이웃, 죽음의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면 좋겠다.
우는 이들 곁에 서는 4월이면 더 좋겠다. 세월호 9주기를 함께 기억하면 최고겠다. 영화 <장기자랑>과 <당신의 사월>을 보자. 별과 함께 울고 함께 웃자. 바쁜 일상 속에도 잠깐씩 별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춰 생각하자. 다시 별과 함께 힘찬 걸음을 걷자.
별과 함께 춤을, 부활의 춤을 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