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한 사람, 단원고 2학년 4반 홍순영에게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한 사람, 순영아!
아프고 힘든 달 4월을 또 한 번 살아냈구나, 안도하며, 너의 이름을 부른다. 네 생일이 든 5월은 무심하게도 나날이 더 푸르고 싱그러워 가겠지.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라면 삶은 얼마나 삭막하니 순영아. 더 상상하고 더 꿈꾸게 하는 계절이라 좋구나. 이곳 너머 저기 어디에선가 애니메이션 작가로 날고 있을 너를 그리 인사한다. 잘 있지?
순영이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네모네모 스폰지밥>, <짱구는 못 말려>, 그리고 <졸라맨>을 보았어. 제목만 들어도 반갑고 기분 좋지, 순영아? 네가 즐겨 보고 잘 그렸던 작품들이잖아. 내가 애니메이션에 푹 젖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엉뚱하고 기발한 캐릭터들과 놀며, 조사도 하고 직접 그려보기도 했어.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한 순영이와 함께라서 백배 즐거운 시간이었단!
"우리 밴드에 들어오지 않을래? 포스터 그려 줄 멤버가 필요한데"
너를 생각하면, 단원고 음악밴드 ADHD로 너를 영입하며 수현이가 한 이 말이 먼저 떠올라. 세상에! 보컬도 악기도 아닌 그림으로 밴드에 들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어. 인재는 인재를 알아본다니까. 넌 만화 그림을 베끼고 따라 그리는 수준을 넘어 자기 작품을 그렸잖아. 이야기도 지어서 만화책을 엮었을 정도였. 동혁이네 가서 동혁이 동생을 위해 그림을 그려 줄 때, 넌 이미 작가였어, 그치?
만화가를 꿈꾸며 너는 쉼 없이 그림을 그렸더구나. 만화 학원이 비싸다는 걸 확인하곤 스스로 <쉽게 배우는 만화 시리즈>를 따라 그리며 연습을 했지. 너는 틀림없이 ADHD 밴드 캐리커처 작품을 멋지게 그려냈을 텐데. 네가 그린 작품을 많이 많이 보고 싶어. 네가 남긴 습작노트를 보며 엄마와 네 이야기를 오래 나눠보고 싶구나.
애니메이션 작가 순영아!
나는 짱구나 졸라맨은 제법 봤는데 <네모네모 스폰지밥>은 이번에 처음 제대로 알게 됐어. 모두 바다 생물인 캐릭터들이 인상적이었어. 스폰지밥의 창시자인 스티브 힐렌버그(1961~2018)가 전직 해양생물학자였더구먼. 바다 생물이며 비키니 시티라는 가상의 수중 도시 모두 그의 전공과 직업에서 온 셈이지. 3번째 '스폰지밥' 영화 개봉을 준비하는 중에, 안타깝게도 작가는 세상을 떠났구나. 루게릭병으로 57세의 젊은 나이에 말이야.
네게 그림 연습장이 돼 준 <쉽게 배우는 만화 시리즈>도 참 좋은 책이구나. 데생부터 인물이며 색칠까지 차근차근 안내하는 책이네. 책장을 넘길 때 네 눈과 손이 되는 기분이었어. 인체 구조, 특히 뼈와 근육의 구조와 얼굴을 그리는 장이 내겐 최고였어. 미술해부학은 "결국 자기 몸을 사용해서 자기가 그리려고 하는 이미지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래. 캬~ 역시 내 몸이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빛으로 온 사랑스러운 아들 순영아!
너는 눈부신 빛으로 엄마 꿈에 들어온 아기더구나. 13살 위 누나가 있는 둘째로 태어났지. 잘 울지도 않고 투정도 없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최고의 아기였어. 엄마가 너를 낳았을 때 37세였구나. 어쩜! 나도 37세에 우리 집 셋째이자 막내를 띠동갑으로 낳았고, 2014년 봄엔 그 아들이 너처럼 고2였단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닌 거 알겠지? 416행사에서 순영이 엄마를 뵐 때마다 내가 남다른 연대감을 느끼는 건 나만의 비밀이야.
네가 중학교 때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오랜 투병생활을 하신 건 엄마와 가족들에게 큰 아픔이었지. 아빠는 직장을 못 나가시고 지팡이를 의지하게 되셨구나. 너는 그런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병마를 이긴 아빠를 고마워하더구나. 주말이면 아빠와 함께 공원에 산책을 가고 커피숍에도 가고 아빠 목욕도 도와드리는 아들이었어.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너와 엄마가 나눈 대화는 생각할수록 감동이었어.
"아빠가 졸업식에 가시는 거 괜찮겠어? 친구들이 아빠를 보고 놀리지도 모르잖아."
"엄마 참 어린애 같은 소리 하시네. 내 아빠잖아요. 뭐가 창피해요? 아빠가 내 졸업식에 오시는 거야 당연하지."
엄마에게 최고 아들 순영아!
너는 엄마 사랑이 참 특별하더구나. 하굣길에 엄마와 통화하며 하루를 미주알고주알 나누는 아들이었잖. 엄마의 마음을 살피며 엄마를 즐겁게 해 주려 노력했지. 엄마를 애칭으로 부르는 건 어디서 배웠니? 마미, 마마, 아가, 공주. 고등학생이 되어도 엄마를 애칭으로 부르며 수학여행 가기 전날 밤에도 엄마 곁에서 잤더라? 늦은 밤 엄마가 집 앞 가게에라도 가려 하면 네가 나서서 말리더구나.
"안 돼요. 누가 우리 공주 납치해 가면 어떡해요? 내가 갔다 올게요."
이렇게 자상한 아들이니 문단속이니 가스도 확인하겠지. 학교에서 엄마한테 문자로 물을 정도로 말이야. 화랑유원지를 걷고 미술관에 갈 때도 엄마에게 팔을 두르고 다정한 연인처럼 걸었어. 너는 엄마의 기쁨, 친구이고 애인이고 버팀목이었지. 엄마하고 오래오래, 텃밭 있는 집에서 함께 살자 했지. 엄마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응석받이가 아니라 너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도 늘 마음을 담아 표현할 줄 알더구나.
"엄마, 힘들 텐데 아침마다 이렇게 밥 차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집안 형편을 걱정하며 네가 수학여행을 안 가려 했을 때 엄마 맘이 어땠을까. 좋은 추억 만들 기회라며 설득해서 너를 보냈으니, 엄마의 한이 또 어땠을꼬. 그래, 순영아! 엄마는 이 세상에 홀로 버림받은 사람의 고통을 겪으셨지. 그걸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있겠니. 4월 9주기에 나온 책 <포기할 수 없는 약속>(새물결플러스, 2023)에서 엄마 글을 만날 수 있었어. 놀라운 은총으로, 엄마는 희망을 보는 새 삶을 살고 계시단다.
엄마의 글 제목 '세상에 버려진 내 인생에 찾아온 희망' 아래엔 엄마를 소개하는 몇 문장이 있어. 한번 옮겨볼게.
"정순덕. 순영이를 잃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2015년 진도 팽목항 고난기도회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 416생명공원 예배팀 맏언니로, 언제나 겸손하고 다정한 미소로 함께한다."
순영이는 엄마의 신앙과 고백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감사하며 기뻐할 거야. 나도 감사해 순영아. 너를 그리는 엄마의 시로 편지 마무리할게. 엄마처럼 나도 더 꿈꾸고 상상하며 살아낼게.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
수학여행 아침까지도
함께 잤던 아들
때로는 애인같이, 때로는 친구처럼
엄마밖에 몰랐던 아들
이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나의 인생을 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채워봅니다.
그 희망은 신기하게도
이 세상에서 오는 희망이 아닌
내가 알지 못하던 하늘에서 오는 희망입니다.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희망입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줄만 알았는데
내 인생을 향해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분이 계십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순영 엄마 정순덕 님의 글. <포기할 수 없는 약속> 427쪽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4반 홍순영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