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 곁에 남은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포기할 수 없는 약속》
음식점 예약 관련 자료를 찾다가 ‘예약 부도’란 단어를 알게 됐다. 예약을 했지만 취소 연락 없이 예약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노쇼, No Show) 손님을 뜻하는 말이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예약 부도가 무서워 예약을 안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예약은 약속입니다”라는 영상에서도 백종원 씨는 말했다.
“이건 창피한 거죠. 말이 됩니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꼴찌랍니다.”
약속을 부도내는 건 내게도 낯선 경험은 아니다. 잊어버린 약속부터, 거창한 약속을 하고도 종잇장처럼 버린 경우도 있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음을 나중에 깨닫는 경우도 있었다. 나폴레옹이 말했다던가. 약속을 가장 잘 지키는 길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약속 없이 살 수 있을까. 세상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이 있음도 나는 안다.
지난 4월에 나온 《포기할 수 없는 약속》는 ‘세월호, 그 곁에 남은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매월 첫 일요일 오후 5시에 안산 화랑공원 생명안전공원 부지에 모여 함께 예배하는 기독교인들의 이야기 묶음이다. 안산시민과 전국 각지, 그리고 해외에서 세월호 곁에 함께 해 온 기독교인들 중 50명이, 세월호 9주기를 글로 기억하고 추모했다.
50꼭지의 글이 크게 5장으로 나눠 배치된 목차를 보자. 고통과 교회, 연대의 기록, 세월호 이후의 나, 아픔이 아픔에게, 끝나지 않은 길: 가족 이야기. 참사 첫날부터 촛불을 들고 기도한 이들의 생생한 기록부터 나중에 연대하게 된 나 같은 사람까지. 약속을 지켜나가는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지막 장에 세월호 엄마아빠의 글이 나온다.
‘세월호, 그 곁에 남은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라니, 어떤 이들에게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제목일지도 모르겠다. 세월호도 부담스러운데 기독교인들 이야기라니 말이다. 우리 이웃에서, 사회에서, 역사에서, 그리고 지금 여기 정치판에서, 기독교회의 행태를 보았을 테니까. 그래, 이 책이 가진 아름다움이면서 동시에 ‘진입장벽’이 그 지점이겠다.
잠시,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를 ‘불자들’ 또는 ‘이슬람’이라고 바꿔 읽어보자. 종교로 쉽게 딱지를 붙이는 ‘정의의 사도’는 잠시 숨을 돌리며 생각해 보면 좋겠다. 성별도 민족도 절대 정의는 아니잖은가. 서슬 퍼런 일제 치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변호한 후세 다쓰지 같은 일본인 변호사가 있었음을 기억하자. 군사독재 시절 주류 목사들이 독재에 부역할 때, 반독재 평화 싸움에 목숨을 던진 목사들 역시 많았다.
종교 이야기는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주제 맞다. 그렇더라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비종교인만 있는 게 아니잖은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종교라는 딱지로 사람을 나누지 말자. 함께 손잡는 따뜻한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이웃의 이야기로 들어보자. 평범한, 그러나 다소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 분위기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임인 ‘별을 품은 사람들’에서 이 책을 함께 읽자 말하기 조심스러운 이유였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을 수 없다’라고 말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불자라서’, ‘이슬람이라서’, 또는 ‘난민이라서’ 아니면 ‘트랜스젠더라서’ 배제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었다. ‘함께’ 또는 ‘연대’를 관념이 아닌 몸으로 배운다면, 좀 거창한가?
혐오의 대상이 되어 보면 안다. 여성이라서, 기독인이라서, 외국인이라서… 배제와 차별에 정당한 이유란 따로 없다. 만들면 이유가 될 뿐이다. 통념과 편견을 깨며, 내 인식의 사각지대를 날마다 새로이 보려 애쓰는 이유다. 나도 부지불식중에 누군가를 라벨링하고 배제하기 때문이다. 나를 배제하지 않고 함께하는 이들이 나는 무조건 고맙다. 곁에 있는 누구라도 고마운 이유, 이 책이 들려주는 목소리가 고마운 이유다. 우리는 서로에게 용기니까.
이달 모임에서 별을 품은 사람들은 각자 세월호 관련 시집 한 권씩 가져왔다. 시를 한두 편씩 낭독하고 감상을 서로 나눴다. 나는 《포기할 수 없는 약속》 말미에 나오는 창현이 엄마 최순호 님의 시 “안부”를 울컥이며 낭독했다. 2020년에 생명안전공원 부지 ‘얠로 스캐치’에서 낭독한 글이라니 더욱 가슴이 아렸다. 아직 첫 삽도 떼지 못하고 있는 생명안전공원…
내 삶에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은 무엇이냐 묻는 거 같다. 모든 게 변하는 인생,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게 얼마나 많은가. 전엔 하찮아 보이던 게 지금은 소중해지고, 귀하게 끼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버려졌는가. 지금 세월호는 내게 무엇일까. 포기할 수 없는 약속, 맞지 싶다. 세월호 곁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그래서 소중하다. 서로 목소리를 들으며 같이 가자.
안부
최순화 (416합창단 단장, 416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부서장으로 활동 중이다.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교회를 떠났지만, 세상에서 함께 아파하며 연대하느ㅓㄴ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다. 세상이 그의 교회다.)
아이야!
2,278번의 별이 뜨고 지는 동안
날마다 너의 안부가 궁금했고
오늘도 2,279번째 너의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바람이 전해주는 너의 안부
햇살이 전해주는 너의 안부
구름이 전해주는 너의 안부
빗방울이 전해주는 너의 안부를
매일 전해 들으면서도
여전히 너의 안부가 궁금해
하늘을 쳐다보곤 해.
너의 어린 시절 뛰놀던 발자국도
너의 학창 시절 노닐던 발자국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여기 416생명안전공원이
이제 너희를 품에 안을 준비를 하고 있어.
어떻게 하면 좀 더 따뜻하게
품어 안을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준비하고 있단다.
아이야!
언제쯤이면 별과 별로서
너희를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아직 별이 되지 못한 건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
우리가 별이 되어 너희를 만나러 갈 때까지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계속 그렇게
반짝거려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