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군가가 "도와줘!"라고 소리를 지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도록 상황을 주변에 널리 알려야 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고통에 관한 글쓰기'가 할 수 있는 실천이 있다고 생각해. "-<상처 퍼즐 맞추기> 252쪽
6월 '별을 품은 사람들'이 함께 읽은 책 <상처 퍼즐 맞추기>(이현정 하미나, 동녘, 2023)는 여러모로 특별했다. 글쓰는 두 여자가 주고받는 편지글 형식인데 나는 내게 온 편지 24통으로 읽었으니 말이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얼마나 구했길래 이런 좋은 사람들을 얼굴로 만나기까지 했을까. 현실적으로 읽히니 내가 할 수 있는 실천도 더 잘 보였다. 별을 품은 사람들이 있음에, 같이 고민하며 갈 수 있음에 뭉클하는 시간이었다.
글쓰는 여자들의 통찰과 연대에다 페미니즘과 세월호가 녹아든 글이라 더 잘 읽힌 거 같다. 부제처럼 '타인의 슬픔을 들여다보는 여자들이 건넨 위로'가 컸다. 이 세상에서 고통 없는 삶이 있을까?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며, 고통 속에서도 삶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배운 적이 없지 않나?내 고통도 버거운데 남의 고통까지 어떻게 감당하냐 말이다. 이 어려운 질문엔 함께 고민하는 것 말고 무슨 답이 있겠는가.
나도 내 고통에 매몰되어 남의 고통은 바라보기도 두렵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세월호 곁에 나서는 게 어쭙잖다 여기기까지 했다. 두 여자는 아니었다. 역시 고통은 외면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마주하고 응시하는 게 길임을 보여주었다. 두 작가인들 왜 자기 몫의 고통이 없겠는가. 여성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에선 우울과 배제와 차별과 분노를 디폴트값으로 끼고 사는 것 아닌가. 페미니즘 랜즈를 단단히 끼고 세상을 마주하고 슬픔을 읽어내는 이들이 아름다웠다.
하미나 작가를 보라. 2030 여성우울증 환자로서 자기 고통을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고 여성 우울증에 관한 책을 써버렸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동아시아, 2021)은 딱 내 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와 같은 결의 책이었다(이러면 내책 자랑?). 이현정 교수 역시 잘나가는 대학 교수지만 이 가부장 문화 속의 여성이었다. 강의에 연구에 집필에, 엄마에 아내에, 세월호까지, 수고가 많다.
책 말미에 두 작가가 서로 평어로 소통하는 글이 새삼 좋았다. '언니'라는 통념의 호칭을 쓴 건 아쉽지만 말이다. 나는 어쩌다보니 자칭타칭 평어 전도사. 이 익숙한 권위주의 문화를 깨는 도구로 이보다 좋은 대안을 아직 모르겠다. 연대란, 결국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입장의 발견, 서 있는 위치가 평등한 자리임을 인정하는 행위 아닐까. 타인의 고통에 함께 한다는 건 이처럼 자신의 고통을 응시하며 위로와 치유를 받는 복이기도 했다.
세월호 곁에 있을수록 나도 점점 또렷이 보고 있다. 처음엔 함께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부끄러워 내 고통을 면하자고 시작한 것같다. 그대로는 다시 암환자가 될 거 같았다. 곁에 있을수록 내 밖의 정치 사회적 맥락 속에서 고통을 응시하게 되고 그럴수록 내가 치유받고 연대감이 커져갔다. 때로 슬픔에 매몰되는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 모습 이대로, 곁에 있는 게 가장 큰 복이자 중요한 일이었다.
결국 글쓰기를 이야기하니 좋다. 고통에 대해 말하고 드러내고 글쓰기, 이거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이 된다니 용기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고통에 관한 글쓰기'가 할 수 있는 실천이 있다고 생각해!" 이현정 교수가 하미나 작가에게 쓴 마지막 편지의 마무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글쓰는 사람을 작아지게 하는 숱한 소리를 뚫고 내게 닿은 격려와 연대의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글쓰기, 고통에 대해 쓰는 게 실천이요 행동이란다.
6월 별품사 소식과 함께 엊저녁 드디어 이현정 교수와 7월에 할 시민강좌 관련 톡을 마무리했다. "1부는 강의, 2부는 내가 진행하는 토크가 될 거다. 우리가 평어쓰는 모임이라 그날 평어로 진행될 거"라 안내했더니, 평어 아주 좋다고 화답했다. '<고잔동 일기>(이현정 김익한 김선, 문화제작소,2022)가 들려주는 세월호 이야기'가 기다려 진다.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고맙다. 뭐라도 반응하고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고맙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고맙다. 고통에 관해 글쓰는 사람들이 고맙다. 내 가까이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고맙다. 일일이 이름 부를 순 없지만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맙다.
내 상처, 너의 상처, 우리의 상처, 이 세상의 상처. 따로 또 같이 하는 상처 퍼즐 맞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