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단원고 2학년 4반 바체슬라프 니콜라예비치 세르코프에게
바체슬라프 니콜라예비치 세르코프!
슬라바!
네 이름을 러시아식 본명 그대로 길게, 그리고 짧게 한번씩 불러봤어. '뱌체슬라프'가 고대 슬라브어로 vyache(위대한)와 slava(영광)의 합성에서 유래했다지? 참 멋진 이름이구나 슬라바. 네가 났을 때 부모님이 어떤 희망을 보았을지 뭉클 느껴지는구나. 잘 생기고 훤칠하며 멋있는 네 모습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치? 슬라바! 슬라바!
너는 10살 때 러시아를 떠나 엄마와 함께 한국에 왔지. 네가 떠나온 고향 노보로시스크를 지도에서 찾느라 한참 찾아 헤맸단다. 어지간히 넓어야 말이지. 러시아의 서남쪽 끝, 흑해 연안이면서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이더구나. 그중에도 네가 나고 자란 우스-제구다, 거기가 외할머니가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 주던 고향이구나.
우주와 바다를 사랑한 슬라바!
너는 유리 가가린과 소유스에 관심 많은 소년이었구나. 우주에 관한 모든 책을 읽겠다는 기세로 우스-제구다의 도서관을 섭렵했다지? 너는 쇳덩이에 매료되었지. 넌 언젠가는 모스크바로 가서 우주인 가가린이 타고 지구 밖을 다녀온 인류 역사 최초의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직접 눈으로 보는 꿈을 꾸었지.
엄마가 큰 여객선의 주방에서 일하실 때 너를 데리고 흑해를 건너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다녀왔구나. 네가 엄마와 함께 탔던 배가 터키 말로 '지도'였다니, 네 가슴엔 세계 지도가 있을 거 같아. 선원이신 엄마는 기차로 일주일을 꼬박 달려 러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로 일하러 가셨지. 그후 너는 엄마를 따라 아빠의 나라 한국으로 왔구나.
"만약에, 아주 만약에 배가 가라앉는다면 엄마는 일단 이 배에 탄 모든 사람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널 포함한 어린아이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울 거야. 몸이 불편한 승객들을 태우고, 마지막으로 나머지 일반 승객들을 모두 구명보트에 태울 거야. 그게 엄마가 할 일이야."
엄마가 하신 이 말씀 기억나지? 이렇게 멋있는 선원인 엄마를 넌 존경했지. 선원 엄마의 아들이자 수영선수인 너를 세월호 안에 "가만히 있으라"라고 사기 친 사람들을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구나.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탈출해버린 선원들의 나라. 네게 하신 엄마의 말씀을 더 듣고 기억하자꾸나.
"세계는 러시아보다 훨씬 넓어. 언젠가 너도 엄마를 떠나 어디로든 가게 될 거야."
"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아. 앞으로 빨리 나가면 모든 것은 아주 쉽게 뜰 수 있단다."
"인간은 그렇게 쇳덩이를 물에 띄울 수도 있고 배가 가라앉아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어."
준성이의 멋진 형 슬라바!
너는 수영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한국으로 귀화했구나. 출발 신호 맞추기가 어렵다지? 신호보다 먼저 첨벙! 또는 놓쳐버리거나. 집중하려 할수록 다리 근육이 굳어지는구나. 신호에 집중하되 긴장하지 않을 비법이 필요했겠어. 넌 신호를 기다리는 긴장된 시간에 귀여운 동생 생각에 푹 빠지기로 했지. 앗! 이번엔 동생 생각에 출발 신호를 놓쳤다고라고라?
12살 어린 꼬마 동생 준성이는 조산아로 아주 조그맣고 빨갛고 쪼글쪼글한 아기로 태어났지. 엄마는 "슬라바가 날 때의 딱 절반 무게"라며 걱정이었지만 넌 아기가 너무 웃겨서 눈을 떼지 못했지? 준성이를 씻기고 밥 먹이고 안아 재우며 둘이 시간 보내길 즐기더구나. 형과 함께 물놀이하는 준성이는 얼마나 즐거웠을까. 수학여행 간 형이 돌아오길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글을 깨친 준성이가 쓴 첫 단어가 “단원고” “유가족” 그리고 “슬라바”였다니…
꿈꾸는 사람 슬라바!
너의 200미터 자유형 최고 기록은 2분 9초. 1970년 전국체전에서 조오련이 금메달을 딴 기록이 '2분 8초 4'였어.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 박태환 기록은 '1분 44초 80'. 황선우는 2022년에 '1분 44초 47'로 줄였고, 7월 25일 후쿠오카 세계 수영선수권대회에서 ‘1분 44초 42’로 개인기록 한국기록 다 경신하고 동메달을 땄어. 뉴 마린보이 황선우 대단하다 그치?
너는 진로 고민 끝에 '2분 9초'를 끝으로 수영을 그만두기로 했지. 수영에 투자한 7년이 아깝기도 했지만, 자기가 정말 수영을 사랑하는지 질문하더구나. 진짜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 게 네 맘이었지. 수영 대신 너는 모델을 꿈꾸더구나. 타고난 신체와 뿜뿜하는 매력이 있었거든. 넌 틀림없이 모델의 길을 한걸음 한걸음 또 걸어갔을 거야.
제주도 봄 바다에서 수영한 번 하고 싶다며 수학여행을 떠난 슬라바! 도착하면 슬쩍 빠져나가 모처럼 기록 신경 쓰지 않고 바다 수영이나 한번 하리라던 슬라바! 너의 그 소박한 꿈을 지켜주지 못해 말할 수 없이 미안하고 화가 나는구나. 슬라바, 제주 쪽빛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너를 그려 보는구나.
들어 보렴, 슬라바!
생존 수영 알지? 어려서부터 수영을 한 네게 생존 수영은 자연스럽게 수영 단계를 따라 익혔을 기술이지? 그런데 말이다 슬라바, 네가 돌아오지 못할 수학여행을 떠난 후 이 나라 학교엔 '생존 수영' 이란 과목이 생겼단다. 수영장 없는 학교가 대부분인 이 나라에서 환경과 시스템은 그대론데 생존 수영 수업이래. 졸속에 졸속, 탁상행정 중의 탁상행정 이야기야.
백번 양보해서, '생존 기능 중심 수영교육 매뉴얼'이란 45쪽짜리 자료를 살펴보았어. 교육부, 시도교육청, 학교 체육 진흥회, 그리고 해양경찰청 이름으로 만들어진 거야. 이게 세월호 이후의 교육일까? 슬라바가 수영을 못해서 세월호에서 생존하지 못했냐고! 세월호 참사 원인이 과연 생존 수영 과목이 없어서냐고. 어떻게 생각하니 슬라바?
"국가는 왜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세금을 냈던 건가요."
침수로 14명이 사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족 한 분의 절규야. 우리의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또 드러났어. 홍수경보에도 아무것도 안 한 충북도와 청주시. 홍수통제소로부터 매뉴얼대로 주민 대피시켜라 요청받고도, 교통통제는 생각도 안 한 구청. 제방이 넘쳤다 지하차도 막아달라, 신고에 무대응 정도가 아니라 엉뚱한 곳 갔다 거짓말한 경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아. 기관들은 자기들만 살겠다고 책임을 서로 전가해. 관할 탓 남 탓. 보고를 못 받았다. 권한이 없다. 인력이 없다. 앵무새 노래가 지겨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탄핵 재판도 '기각'으로 끝났어. 계속 ‘모두의 책임’이라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로 살란 소리지. 4.16로도 10.29로두 어쩜 이리도 안 변하니. 국가는 있는 거니 슬라바?
부를수록 미안한 이름 슬라바!
정신 차리고 살도록 우리를 좀 도와 주렴 슬라바!
너무너무 보고 싶구나 슬라바!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4반 슬라바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