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희야! 이 숫자 여덟 개 반갑지? 네 약전 제목이야. 몇 년 전 처음 읽을 때도 그랬는데 다시 봐도 수수깨끼 같은 거 있지. ‘416단원고 약전’ 10권 중 숫자 제목은 최수희뿐이더라? 네 이야기를 읽고 너를 더 알고 싶어서 난 기억교실 3층으로 갔어. 2학년 3반 네 자리에 가만히 앉아 보았어. 그리곤 1층 창가에 앉아 네게 편지를 썼지.
네 동생 수연이 기일에 네 생일과 권지용 생일을 조합해 네가 만든 번호였다지? 앞뒤에 놓인 88이 내게 자꾸 말을 걸더라? 겹쳐 쓴 숫자들은 천사의 숫자로 통하잖아. 88은 행운, 안정, 번영과 풍요를 뜻하고. 88100488을 "팔팔천사팔팔"로 읽어 봐. 천사 둘이 가운데 천사를 호위하는 모습이 보이지? 와~ 경빈 엄마는 나중에 팩트 확인 문자도 주셨지 뭐야.
"제목은 수희 핸드폰 번호. 010을 뺀 88100488. 자기 생일 8(월) 4(일)과 권지용 생일 88(년) 8(월)에 동생 기일 10(월) 04(일)를 연결해서 만든 거래요." 캬~~ 권지용 생년과 생월이 모두 8이었구나. 역시 권지용빠 수희!
수연이 언니 수희야!
그래, 너희 두 자매 이름을 나란히 부르고 싶었어. 너희를 생각할수록 글을 시작하기가 어렵더구나. 늦게 결혼하신 부모님이 어렵게 얻은 첫아이 수희, 두 살 아래 동생 수연. 수희는 2킬로 저체중아로 나서 인큐베이터에 두 달 있었지만, 볼이 터질 듯 포동포동한 아이로 잘 자랐지. 너희는 엄마아빠에게 삶의 기쁨이고 이유였지.
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하교 풍경이 내게도 참 인상적이었어. 동생 수연이 손을 잡고 아빠가 매일 교문 앞에서 너를 기다리셨지. 이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네겐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라고 해서 말이야. 이후 아빠 가게가 부도나면서 가족은 흩어지고 떨어져 지내야 했지. 3학년 때 전학 온 안산 석수초가 네 번째이자 마지막 초등학교더구나.
사업 실패로 아빠가 우울해하실 때, 너는 졸라서라도 공원으로 나가시게 하더구나. 그 시절 네 꿈은 “아빠를 기쁘게 하는 해 주는 것”이었지. 너희 둘을 가슴과 등에 각각 매달고 아빠가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넌 모든 게 잘 될 거라 안심이 되고 좋아했구나. 햇빛 드는 빌라 2층으로 이사한 후엔 부러울 것 없는 부자 기분이었다지?
아!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낸 부모님과 너희 자매인데, 너무도 짧은 행복 후 긴 이별이 오고 말았구나. 4학년 때부터 가슴이 자꾸 아프다던 수연이는 5학년 때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지. 많은 도움 속에 수술 잘 받고 회복하나 했건만 6개월이 다였어. 네가 중학교 1학년이던 해 10월 4일(1004), 수연이는 하늘나라 천사가 되었구나.
엄마아빠와 네가 어떻게 지냈을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구나. 사춘기의 넌 학교도 공부도 사는 것도 다 싫고 무의미해졌겠지. 성적은 꼴찌, 자주 아팠고 지각과 조퇴를 반복했어. 엄마는 이불 뒤집어쓰고 우셨고 아빠는 제대로 울지 못하는 분위기. 네게 공부 안 해도 된다고 하셨지. 수연이 보고 싶다는 말은 누구도 입 밖에 못 꺼냈고 말이야. 누가 이런 사정을 아는 것도 넌 싫었고, 수군대는 아이를 보면 화내고 싸우곤 했지.
그 어두운 터널의 시기에 너는 아현이를 만났더구나. 친구도 없고 결석도 잦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현이에게 네가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갔지. 아침에 전화해서 학교 같이 가고 끝나면 집에 데려와서 떡볶이도 해 먹고 고기도 구워 먹고 컴퓨터 게임도 했지. 너는 고백했지. 아현이를 통해 구원받은 쪽은 너였다고. 삶의 의욕을 찾고 일어나더구나. 다이어트로 체중을 20킬로나 줄이며 너는 새 모습으로 단원고등학교에 입학했지.
수학여행을 갈 무렵엔 이제 화내지 않고 동생 수연이 이야기도 하더구나.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신 친구 주희한테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하고 싶은 말을 지금 하라고 했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미안한 일이 많은지, 네 마음도 털어놓으며 서로 돌보는 친구가 되더구나.
맞아 수희야! 아픔을 겪은 마음이 또 다른 아픈 마음과 이어지는 모습이었어. 이유 없이 아프고 우울한 마음이 어디 있겠니. 앞이 안 보이면 사람은 스스로도 남도 돌보기 힘들잖아. 요즘 우리 사회에 횡횡하는 묻지 마 범죄를 보렴. 아픔과 절망으로 출구를 못 찾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디? 그런데 돌봄 정책은 너무 허술하고 더 강력하게 범죄자 때려잡겠다는 대책만 난무하니, 이래도 되는 걸까, 수희야?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싶었던 수희야!
너는 아이들을 좋아했지. 유치원을 지어 부모님과 함께 일하는 꿈도 꾸었지. 아버지는 차량 운전, 엄마는 아이들 식사 준비, 그리고 너는 원장님. 네 계획을 듣고 부모님이 폭소를 터뜨렸다지? 알뜰히도 부려 먹을 생각이라며 말이야. 네 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수희야. 언제나 네 편이던 엄마아빠, 두 분이 어떻게 사시는지, 묻기도 죄송하구나.
고백할게 수희야. 실은 네 번호 팔팔천사팔팔로 전화를 걸어 봤어. 숨죽이고 기다리니 남자 목소리가 받았어. "전화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전이긴 한데, 이거 수희 번호였거든요. 혹시 수희 아세요?" "아뇨, 몰라요. 여긴 보일러 가게입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어. 네가 엄마에게 보낸 메시지를 읽고 또 읽으며 멍하니 좀 있었단다.
“엄마 사랑하고 미안해. 고맙고. 아빠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사랑해.”-2014. 2. 16. 오전 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