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침묵 속 그림자 인생

<한국여성신학> 여름호에 쓴 '여성신학과 나'-1

by 꿀벌 김화숙

한국여성신학> 여름 호에 '여성신학과 나'로 내 삶을 쓸 기회가 있었다. 여성신학 학술지에 게재된 신학적 자기 고백이자 미니 회고록인 셈이다. 제목은 '거룩한 분노, 또는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였고 네 개의 소제목이 있는 좀 긴 글이었다. 내게 영향을 미친 영화로 시작하고 영화로 마친 글이었다. 기록용으로 세번 나눠 올리고자 한다.




사랑하는 친구 희야에게!





“‘닥터 차정숙’ 봐 엄마? 완전 우리 엄마 이야기던데?


오랜만에 집에 온 우리 큰아들이 ‘닥터 차정숙’ 얘기를 하는 거야. 친구도 봤겠지? 서른한 살 직장 청년이 봤다니 시청률이 높긴 했나 봐. 아들은 개요만 봐도 자기 엄마란 걸 알겠더라나. 나는 ‘의사 부족한 나라니까 중년 여성 새 출발 이야기가 쉽게 풀린 점도 있겠지?’라 묻고 싶은 걸 참았어. 어디가 가장 엄마 얘기였나 우선 듣고 싶었거든.


“중년에 간 수술했잖아. 그 담에 빡쳐서 완전 딴 사람이 된 것까지 너무 같던데?”

“그래? 너는 엄마 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잖아. 차정숙이 이해는 되디?”

“에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 남의 엄마잖아. 재미도 있고 완전히 공감되던걸?”


엄마 때문에 괴로웠다는 소리도 들리지? 좋은 아내·엄마·며느리가 뭐길래, 거기 올인 아니면 ‘나쁜’ 소리를 들어야 할까. 창조주의 ‘거룩한 질서’였을까? 아니, 솔직하자. 나도 너도 천상 ‘착한 차정숙’이었지만 ‘현모양처’로 퉁치지는 않을게. 꾸역꾸역 여기까지 온 나를 보며 넌 꿈틀꿈틀 힘을 낸다고 했지. 그래, 다 설명하기 힘든 은총이고 기적이었다 고백할게.


30년 만에 우리가 다시 만난 게 작년 이맘때였구나. 너를 만나러 뜨거운 태양 아래 청계천을 걸었던 기억이 생생해. 우리가 서로 이런 모습일 줄 상상이나 했겠니. 너의 새길을 응원하는 맘으로, 며칠을 함께 지내며 나눠도 다 못할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 보려 해.






선택적 침묵 속 그림자 인생


영화 <피아노>(제인 캠피온 감독, 호주, 1993년, 2021년 재개봉)로 시작할게. 내 인생 영화기도 하지만 너를 생각하면 항상 피아노가 떠오르기 때문이겠지. 피아노는 너의 분신이자 너의 전부 아니었니. 너와 피아노 이야기를 하자니 가슴이 묵직해진다, 희야. 아~~ 제인 캠피온 감독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금방 좋아져.


개봉 당시엔 내가 한국에 없기도 했거니와, 있었더라도 몰랐을 영화라고 고백할게. 알았다 한들 찾아다니며 영화를 챙겨보던 때도 아니었고 말이야. 내 30대란 게 삶의 반경도 시선도 자기 안으로만 향한 시절이었거든. 우리가 속했던 선교단체엔 대중문화 ‘알러지’도 있지 않디? 읽으면 욕먹게 되는 ‘금서’도 있었는데, 기억해? 그 시절 본 대표적인 책은 《천로역정》 류고 영화는 <벤허> 같은 거라면 끝난 얘기 아냐?


<피아노> 이야기 계속할게. 에이다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러 낯설고 물선 뉴질랜드로 오는 걸로 영화가 시작돼. 여섯 살부터 에이다는 말을 안 하는 사람. 가진 건 딸 하나 피아노 하나. 마중 나온 남편이란 작자는 에이다에게 묻지도 않고 피아노를 해변에 버리고 가게 해. 연인을 어루만지듯 에이다는 피아노를 치지. 미치도록 아름다운 해변에 피아노 음악이 퍼지고 딸 플로라가 춤을 추는데, 짐꾼으로 온 남자 베인스는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지. 아~ 낯설고도 너무 익숙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 장면에 너도 빨려들게 될 거야.


에이다의 선택적 침묵이 날 사로잡았어. 날 때부터가 아닌, 언제부턴가 말을 안 하게 된 여자. 난 바로 이해해 버렸어. 19세기 말,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 여자. 과거도 미래도 그려지지 않니? 어린 딸을 데리고 낯선 남자와 결혼하는 게 에이다의 자유의지였을까? 에이다 시대보다 100년 더 지난 우리의 20대를 돌아봐. 거기 에이다 많지 않디? 연애는 회개할 ‘죄’였고 결혼은 거룩한 사명을 위해 ‘믿음과 순종’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오직 믿음으로’ 결혼하는 경우는 결코 우리 할머니들 이야기만 아님을 우린 알지.


내 동기 E의 결혼 이야긴 너도 알 거야. 담임 목사(대표를 이렇게 부르자)가 중매했는데 E가 거절했지. 석사 논문을 쓰는 중인데 결혼 생각도 없었고 사람도 호감이 안 갔대. 갑자기 우리 동기 네 여자들이 매일 새벽에 QT를 적어서 모여야 했어. ‘연애감정과 정욕’을 회개하는 ‘훈련’이었지. 마음에 좋아하는 남자를 품는다거나 이상형을 고집하면, ‘주의 종’의 방향에 불순종한다는 거야. 순결하지 않은 마음을 낱낱이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팀 4명은 아무도 결혼할 수 없을 거랬어. 한 달 훈련이 끝나고, 얼마 지나 그 친구는 그 남자와 결혼했어.


에이다의 선택적 침묵에서 나를 보았어. 들어 봐. ‘순종’ 외의 선택지가 없는데, 활달하고 열정적인 우리가 어떻게 말을 다 하며 살겠어. 우리의 언어며 선택과 결정이란 과연 우리 자신의 것이었을까? 어려서부터 가시나라서, 여자라서, 자라며 ‘믿음의 자매’로 무수히 침묵했던 우리잖아.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체, 억울하고 불편한데, ‘조용히’ 따르도록 길러졌지. 너의 결혼도 아마 그렇게 이루어졌을 걸?


좀 웃긴 표현이지만 나는 ‘애매한’ 경우였어. 내 짝꿍이 학생 시절부터 나를 좋아해서 몰래 기도한다는 걸 어느날 내가 알아버렸어. 연애가 금지된 그곳에서 나는 큰 죄인이 된 양 불편했어. 동기 한 명에게 비밀을 털어놨는데 어느날 나는 그를 ‘유혹한’ 죄인으로 정죄를 받았지. 온 센터가 들썩일 정도로 ‘회개해야’ 했어. 정죄와 수치의 시간, 떠날까도 했지만 내가 돕는 ‘양들’ 때문에 못 했어.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훈련’이라 받아들였어. 이듬해, 담임 목사는 우리를 ‘중매’했어. ‘주의 일’을 할 그를 위해 내가 최고의 배필이라며 말이지. 혼란스러운 순간 난 또 침묵을 택했지. ‘예’도 ‘아니오’도 나는 말할 준비가 안 돼 있었거든.


그 시절 희야는 3수 끝에 원하는 대학 피아노과에 들어가느라 정신없었지? 바쁜 중에도 모든 예배와 행사에서 너는 피아노를 쳤고 음악 프로그램을 책임졌지. 1990년 가을, 내 결혼식에서 너와 네 친구들이 축가를 불렀지. 내가 너의 귀한 음악 선물에 고마움을 표현한 기억이 없구나. 전혀 무보수로 항상 음악을 ‘섬기는 종’이라서 그랬겠지. 너와 나는 전공만 달랐지 시간과 재능을 거저 내주는 삶을 당연하게 여겼으니까. 늦게라도 고마운 내 맘을 꼭 표현하고 싶어. 친구야 정말 고마웠어.


“000 군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는 신자로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남편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순종하여 아내 된 자의 도리를 다하기로 하나님 앞과 여러 사람 앞에서 서약합니까?” “아멘!”


너도 이렇게 신부만 하는 순종서약을 했지? 쩌렁쩌렁 외친 신랑과 대조되는 작은 목소리로 내가 ‘아멘’한 순간이 떠올라 웃음이 터지려 해. 최대한 얌전하고 조신한 신부로 보이려고 억지를 썼거든. 하도 긴장해서 온몸이 아플 정도였으니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긴 했지. 그 후엔 ‘사모 서약’도 더해졌어. 목사 남편을 중심으로, 나를 낮추고 그를 세우고, 사랑과 순종으로 ‘동역하겠다’ 서약했어. 선교지에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6년 만에 한국에 와서 셋째를 낳고, 국내지부 담임의 ‘동역자’로 살았지. 집 안팎에서 어떤 전문가보다 쉼없이 양육하고 돌보고 먹이고 가르치고 상담하고 조정하는 일을 했어. 그러나 나는 그림자, 그림자 노동자였어. 화가 나도 자신을 검열하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그림자였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프타임 끝 후반전 시작,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