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겨울 여행을 떠나자 초예야

세월호로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9반 김초예에게

by 꿀벌 김화숙


어느날 하루는 여행을


용혜원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가야겠습니다.


그날은 누구를 꼭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지 않아서 좋을 것입니다.


하늘도 땅도 달라 보이고

날아갈 듯한 마음에

가슴 벅찬 노래를 부르며

살아 있는 표정을 만나고 싶습니다.


....



SE-d9fbd620-791b-4688-b296-bf6bc7d8ad51.png?type=w1



훌쩍 여행을 떠나자꾸나 초예야!


너를 생각하며 여행시를 읽는다. 어느날 '눕는 차'를 타고 훌쩍 '묻지마 관광'을 떠나던 가족이 떠오르는구나. "유치원 차처럼 눕는 차 타고 싶어!" 초예가 졸랐고 아빠가 9인승 승합차 카니발을 샀지. 아빠는 운전하고 엄마는 그 옆자리에, 그리고 초예, 초은, 예은 세 자매는 눕는 차 뒷자리에 타고 왁자지껄 여행을 떠나곤 했지. 목적지도 없고 숙소도 정하지 않고 어디든 맘에 드는 곳에 차 세워 그늘막 텐트 치고 밥해 먹고 잠도 자는 자유여행이었지.


수학여행 앞두고 너는 밤늦도록 네 방과 물건들을 정리했더구나.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이 아니어서 특별한 감상에 젖은 거였어? 하긴 넌 어릴 때부터 물건 정리하길 좋아했지. 버릴 것 둘 것, 동생들에게 남겨둘 것, 옷가지며 학용품까지 싹 정리한 걸 보면, 넌 타고난 여행자였나 봐. 필요 없는 걸 가지고 있으면 거추장스러운 느낌, 그 느낌을 아는 여행자 말이야.



SE-bba20713-2e4b-498d-8525-c146196ca620.jpg?type=w1


긴 여행 중인 초예야!


어려서 넌 바람만 불어도 기침을 하고 입원할 정도로 자주 아팠구나. 네가 두툼한 코트를 입고 빨간 줄무늬 비니 모자를 쓴 사진 좀 봐. 병원에서 퇴원하며 찍은 거라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라 퇴원 날 아침에 아빠가 급히 코트를 사 오셨다며? 항상 당신의 코트 안에 너를 안고 다니신 아빠 맘이 느껴져 더욱 이쁜 사진이로구나.

세 자매 중 맏이 너는 늘 동생들한테 엄마 같은 큰언니였더구나. 엄마 아빠가 일하시는 동안 두 동생 간식과 밥을 챙기는 건 물론 조카까지 돌보곤 했지. 일하시는 엄마 아빠가 힘들어 보이면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안아드리며 위로하는 딸이었지. 엄마를 덜 힘들게 하려고 너는 장도 같이 보고 집안일을 하더구나. 대학 가도 넌 엄마 아빠랑 살겠다 말하곤 했지.



SE-27e97456-5400-4875-8e34-f9aeafc2dc27.jpg?type=w1


참 좋은 딸 좋은 언니 초예야!


동생들을 돌보는 게 피곤할 때면 넌 언니 오빠가 없어 아쉬웠다지? 그럴수록 동생들에게 좋은 언니가 되고자 했구나. 중학교부터 공부에 욕심이 생기더니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최혜정 선생님을 만나면서 너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지. 선생님은 성적으로 비교하지도 않고 늘 할 수 있다 격려하셨지. 너는 약한 사람 돌보는 간호사를 꿈꾸며 새벽 4, 5시에 공부를 하더구나.


최혜정 선생님을 너는 2학년에도 담임으로 만났구나. 영어 선생님이 이과반 담임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너, 선생님과 헤어질 게 너무나 아쉬웠던 너였잖아. 그런데 다시 선생님 반이 되었으니 날개를 단듯 너는 날아다니더구나. 더욱 학교생활이 좋아지고 더 노력하고 싶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하루하루였다지?



KakaoTalk_20231128_150833174.jpg?type=w1
KakaoTalk_20231128_150833174_01.jpg?type=w1
KakaoTalk_20231128_150833174_02.jpg?type=w1


초예야!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 맛 참 좋지? 나도 그래. 올핸 일요일 이른 아침에 서울 시내 대학 캠퍼스를 발길 닿는대로 여행하고 있어. 지난주엔 동국대학교였어. 산기슭에 있는 불교 재단의 대학 정도로만 알고 갔지. 유서 깊은 석조 건물 명진관을 보고 만해 시비를 지나 사범대 로 내려갔는데, 사범대 동문이 세운 최혜정 선생님(1999-2014) 추모비를 만났지 뭐니.


"잊지 않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제자들을 구한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여기까지 읽는데 눈물이 왈칵했어. 단원고에 신규 부임해 이듬해 세상을 떠난 선생님의 생몰연대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 검은 비석에 하얀 글씨가 마음을 울리더구나.


차디찬 칠흑의 바다에 부서진 그대

제자 살리고 우리 곁을 떠난 그대

그대 잃은 사무치는 슬픔과 고통

우리 가슴에 오래 담아두리니

그대 못다 핀 꿈과 희망

이제 우리가 이루어드리겠습니다.



SE-eb8e87a7-b8f7-459a-8083-7b60cb8f45d0.png?type=w1
SE-838622c3-1669-474d-905a-d69ff163c23d.jpg?type=w1


따뜻하고 환한 빛 초예야!


네 사진과 최혜정 담임 선생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고 또 보는구나. 선생님과 너는 짧은 봄날을 함께 하곤 별이 되었구나. 이모는 어떻게 너와 비행기로 제주도 가자 제안하셨을까? 수학여행 하루 전에 비행기로 가서 이모랑 놀다 단원고 수학여행팀이 도착하는 항구로 너를 데려다주시겠다는 계획이었지. 너는 물론 선생님과 친구들과 세월호를 택했고 말이야.


아~ 너를 그리며 최혜정 선생님 이름을 함께 부르지 않을 수 없구나. 선생님도 너도 참 따뜻한 어른으로 살고 있을 텐데. 사라지지 않는 환한 빛으로 주변 사람들을 비추는 삶을 살고 있을 게 틀림없어. 도움이 필요한 약한 사람들을 돕고 주변을 행복하게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네가 가장 좋아하는 최혜정 선생님과 함께 행복하길 바라 초예야. 너무너무 보고 싶구나.


초예야! 눕는 차 타고 훌쩍 겨울 여행 떠나자꾸나~~


SE-2466504f-8ed0-448b-9f49-cce5dc5acbb7.png?type=w1


(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9반 김초예에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