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로 별이 된 12월의 아이 단원고 2학년 7반 박현섭에게
후회/ 손상근
꽃은
내 앞에
환히 웃고 있는데
가시 찔릴까
가슴 대지 못 하고
서성이다가
꽃은
저만치 가고
가슴은
찔린 아픔 보다
더 큽니다
12월의 아이 현섭아!
네가 태어난 12월, 감사와 성찰의 마지막 달이 저무는구나. 올겨울은 눈이 아주 풍년이라 가는 곳마다 눈 속을 걸을 수 있었어. 오늘도 작은 산을 오르내리며 2시간 넘게 눈을 밟았구나. 응달진 기슭엔 흙이 전혀 안 보이도록 하얀 눈길이 이어지다가도 볕 잘 드는 기슭엔 낙엽길이 다 드러난 게 보였어. 마치 희노애락의 인생길처럼 말이야.
12월이 그런 달인 거 같아. 한해를 돌아보게 되고 감사가 충만해지는가 하면 구비구비 후회만 쌓인 눈길도 보이지. 네 이름을 부르며 네 약전을 읽으면서도 그랬단다. 네가 이 지구별에 다녀간 것만으로 너무너무 감사하면서도 엄마가 너를 보내고 후회하신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고 말았어. 그래서 '후회'라는 시를 함께 읽으며 너를 기억하고 엄마를 기억하고 있구나. 가시 찔릴 걱정으로 꽃을 흘려보내 버리곤 후회하는 내가 보였어.
후회로 아픈 가슴, 아~~ 현섭아! 후회하시는 엄마 맘이 내게도 전해. 무슨 말이냐고? 너를 보내고 엄마가 날마다 후회 속에 사셨다는 거야. 후회 때문에 두 주먹을 하도 꽉 쥐어서 손바닥이 안 아픈 날이 없을 정도였어. '얼마나 잘 살자고 그렇게 바쁘게, 아득바득 살았을꼬' 그게 엄마의 후회였어. 너희들과 함께 할 시간도 없이, 너희를 위해서 산다고 그랬다는 게, 도무지 용납이 안 되더라고 말이야.
엄마의 좋은 친구 현섭아!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 드리자꾸나. 그 가슴아픈 후회를 무엇으로 위로드릴 수 있겠니. 엄마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신 게 그런 삶이었잖아. 스무 살에 네 누나를 낳고 다섯 살 터울로 너를 낳으셨구나. 나는 30대에 애를 낳아도 서툴고 힘들어서 울기 일쑤였는데 엄마는 오죽했겠니. 하지만 너희 남매를 잘 키우고 싶은 맘은 누구 못지않았지. 눈코 뜰 새 없이 사셨구나. 아빠는 지방으로 한 달씩 집을 비우며 일하시고, 엄마는 홀로 어린 남매를 두고 일을 나갔다 밤늦게 돌아왔지.
네가 고1 때에사 가족여행을 처음 갔다지? 무주구천동에서 아빠와 함께 네가 텐트를 쳤구나. 아빠보다 키가 더 큰 네가 척척 텐트를 치는데, 아빠가 오히려 널 의지하는 모양이었어. 그 텐트 아래서 네 식구가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들던 밤을 엄마는 영원히 잊지 못하시는구나.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너희가 잘 자라고 있어 지겹지도 두렵지도 않았대. 설사 폭풍이 몰아치더라도 든든한 너와 아빠가 안전을 지켜줄 거라 믿었다는구나.
가족사진도 네가 아주 어릴 적 말곤 찍은 적이 없었구나. 네가 수학여행 떠나기 이틀 전 일요일, 평소 너만 교회 다녔기 때문에 세 식구만 그날도 점심 외식하기로 돼 있었지. 갑자기 네가 마음을 바꿔 가족 외식에 함께 하겠다며 교회를 안 가기로 했더라? 그렇게 완전체로 가족이 점심을 먹고 중앙역 앞 봄꽃 튤립 축제에서 셀카 가족사진을 찍었지. 그게 유일한 가족사진이자 네가 식구들에게 남기고 간 선물이 되었구나.
참 좋은 아들이자 누나 현섭아!
수지 누나랑 너는 5살 터울의 남매라는 말만으론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특별했구나. 초등학교 들어갔을 법한 누나가 어린 너를 업고 만면의 미소로 찍은 사진 좀 봐. 요즘은 아이가 아기 업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누나는 너를 업어줬구나. 얼마나 아끼는 동생인지 한 눈에 보여. 너희 남매는 어릴 적부터 늘 꼭 붙어 지내며 서로의 곁을 꽉 채워주는 사이였으니까. 열일곱 살 너는 누나의 믿음직한 보디가드이자 힘센 애인이 되었고 말이야.
누나는 아르바이트 해 돈이 모이면 네 용돈부터 주고 네게 사주고 싶은 것부터 생각했지. 네 열여덟 번째 생일 선물 이야기를 하자니 또 눈물이 고이는구나. 누나 친구 동생에게 얻은 헌 자전거를 타던 너를 위해 누나는 새 자전거를 이번 생일 선물로 사 주기로 약속했지.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는데, 아~~ 누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고 말았구나. 네 생일 12월 29일이 10번이나 지나도록 너는 아직도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구나.
엄마가 여자친구라 말하던 현섭아!
장도 같이 보고 배드민턴도 같이 치고 할아버지 병문안도 같이 다니고 엄마 길 잃을까 봐 데리러 와 주기도 하던 아들. 엄마가 허리를 다쳤을 땐 밥도 챙기고 약도 챙기고 머리도 감겨 드리던 사람. 1미터 80에, 70킬로. 너는 친구들에게 여자친구는 엄마라고 말했다지. 눈물 많고 맘 약하고 아픈 데도 많은 엄마라 그랬을까, 너를 보내고 엄마는 그것도 후회하셨대.
엄마는 너를 챙겨준 기억보단 네가 엄마를 챙긴 기억이 더 많대. 직장 일에서 밤늦게 돌아오신 엄마는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셨지. 너는 아침에 혼자 일어나 밥 찾아 먹고 치우고 학교 갔지. 주무시는 엄마를 결코 깨우는 법 없이 말이야. 운동 좋아하고 축구 잘하는 고등학생 너는 육군사관학교를 목표로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장에 나가고 스스로 다이어트까지 했구나. 참 어울리는 군인의 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현석아.
삶을 후회없이 살 수 있을까 현섭아? 하지만 알아. 뼈저리게 후회하며 우리는 결국 나를 바꾸고 삶을 새롭게 살게 되더구나. 후회하는 나를 인정하게 됐어. 새해엔 못다해서 후회되는 그 점을 더 용감하게 선택하게 될 거야. 그래서 또 감사하며 한 해를 보내는구나.
현섭아 정말 고마워. 송구영신과 함께 12월 29일 네 생일을 크게 축하한다. 이 지구별에 잠시 다녀가며 네 이야기 들려줘서 고마워. 지지 않는 별로 우리에게 반짝이는 현섭아! 네가 너무너무 보고 싶구나 현섭아.
(세월호로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7반 박현섭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