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Mar 08. 2024

'영적훈련'이라 쓰고 '가스라이팅'이라 읽는다

3.8 세계여성의 날 아침, 30년 전의 나에게 '돌덩이'를 불러 준다

     

2024년 3.8 세계 여성의 날 아침이다. 여성의 날을 축하합니다!

전 세계 여성들에게, 나에게, 내 딸에게, 역사 속의 언니들에게, 그리고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는 벗들에게!

이 날을 기뻐하는 동지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보내며, 역사적인 날 역사적인 글을 쓴다.

      

청계광장 ‘제39회 한국 여성대회,-성평등을 향해 전지하라!’ 기념행사에서 오늘 나는 416 합창단으로 ‘돌덩이’를 부른다. ‘이태원 클라쓰’ 드라마 주제곡을 편곡한 합창인데, 좀 어렵지만 알토로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곡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길 오직 하나뿐인 나의 길 내 전부를 내걸고서~~” 강렬한 인트로를 다 함께 부른 후 남성이 주 멜로디를 끌어가며 시작한다.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그게 현명하게 사는 거라고 쥐 죽은 듯이 살라는 말 같잖은 말 누굴 위한 삶인가…” 나를 아무리 때려봐라, 네 손만 다칠 거다. 나는 깎일수록 깨질수록 더 세지고 강해지는 돌덩이라고 화음이 어우러진다. 그다음 주 멜로디를 내가 속한 알토가 끌어가는데 이거야말로 죽여준다.   

   

“감당할 수 없게 벅찬 이 세상 유독 내게만 더 모진 이 세상 모두가 나를 돌아섰고 비웃었고 아픔이 곧 나였지.” 아, 정말 모진 세상 맞다. 시들고 저무는 세상 이치에 나를 가두려 하지 말라. 틀려도 괜찮아 이 삶은 내가 사니까. 끄떡없다. 더욱 세지는 돌덩이니까. 유독 내게만 더 모진 이 세상, 모두가 나를 돌아섰고 비웃었고 아픔이 곧 나였지. 이 노랫말을 부를 때면 나는 1987년 가을로 돌아간다. 모두가 나를 돌아섰고 비웃을 때, 그래봤자 네 손만 아플 거야, 그렇게 당당한 돌덩이가 되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30년 전 어리고 약하던 나에게 오늘 ‘돌덩이’를 불러줄 수 있어 기쁘다. 모진 세상에 갇히지 않고 돌덩이로 단단히 굴러다니는 내 노래니까. 세월호 가족, 이태원 가족, 차별받는 여성들을 위한 노래다. 이땅의 약하고 깨지기 쉬운 영혼을 세게 응원하는 예수 복음 정신을 담은 노래다. 그 시절엔 꿈도 못 꾸던 돌덩이 삶을 지금 내가 살고 있으니, 어찌 노래하지 않으랴.       


    

“모두가 나를 돌아섰고 비웃었고”     


형제자매요 동역자라 믿은 사람들이 어느 날 나를 아골골짜기로 끌어가 돌무덤을 만들고 있었다. 상처에 몸을 떨며 나는 며칠간 자취집에서 두문불출 잠수를 타야 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탄식이 나왔다. 말없이 당하기만 한 자신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지는데 딱히 저항할 언어도 없고 입도 떨어지지 않던 때였다.     


한 주 만에 나온 센터는 더 험한 분위기로 가고 있었다. 기쁘게 인사하는 내게 사람들이 모두 차가운 눈빛을 쏘고 있었다. 어떤 학사 사모는 고개를 휙 소리 나게 돌렸다. 그럴 수 있다고 나는 받아들였다. 나는 소감 쓸 때마다 울었다. “제가 마음을 지키지 못한 죄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지 않아서 한 형제의 마음을 빼앗고 시험에 들게 했습니다. 삼손을 올무에 빠지게 한 들릴라입니다. 저를 불쌍히 불쌍히 여기시고 새롭게 하소서…”      


독재 시대 빨갱이 만들기처럼 거기는 죄인 만들기가 있었다. 나는 언어는 없었지만 이제 떠날 때가 되었나 고민하게 됐다. 이걸 계속 견딜 가치가 없어 보였다. 마음을 정리할수록 그러나 걸리는 게 있었다. 양들이었다. 지난 3년간 내가 돌본 어린 영혼들에게 무어라 말할 것인가. 나를 신뢰하고 나를 통해 예수를 믿고 따라가는 그들을 실망시킬 순 없었다. 아이들 때문에 폭력 남편을 못 떠나는 어미, 딱 그 꼴이었다.     


     

‘영적훈련’이라 쓰고 ‘가스라이팅’이라 읽는다     


나는 모든 모욕을 ‘영적훈련’으로 감수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죄 없이 십자가를 지지 않았나. 조롱당하고 모욕당한 예수가 나의 영혼을 위로했다. 이후 C는 내게 ‘특별관리’ 훈련 과제를 두 가지 제시했다. 매일 일용할 양식 2쪽 써서 그에게 발표할 것, C의 식탁에서 당분간 점심을 먹을 것. 일거수일투족이 ‘훈련’이었다.

 

나는 내 아픔을 C가 알아주는 거라 여겼다. N과 친한 동기 R이 후배들과 함께 뒤에서 나를 판단하고 ‘회개하라’ 기도한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곳에 우정이 없음에 또 상처받았지만 견뎌냈다. 모두가 나를 돌아섰고 비웃었지만 C만이 나를 영적훈련으로 돕는 목자라 믿고 싶었다. C에게 매일 소감을 읽는 것도 그의 밥상에서 먹는 것도 감사하며 받았다. N과 P, Q로부터 받은 상처도 조금씩 잊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내 손을 잡아준 벗이 딱 한 명 있긴 했다. 같은 학번 남자 동기이자 덕과 친한 S였다. 그는 내게 맥주를 한 잔 사주며 교회가 ‘광기’로 나를 희생양 삼는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을 너무 괴롭게 안 하면 좋겠어. 이건 정상이 아냐. 지금 단체가 전국적으로 다 실적이 안 좋아. C는 드보라를 본보기로 조직을 쇄신하네 하며 자기 입지를 키우려는 거야…” 그 엄혹한 분위기에서 나를 사람이요 친구로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이었다. 납작해진 자아로 '본질상 죄인' 타령하느라 시야가 좁아진 나였다. 조직의 이면이며 목자의 허상을 알기까진 더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렇게 외친 C가 내 눈을 자기에게 향하도록 길들인 건 아이러니다. “똑똑해서 더 나쁜 죄인”이라는 C의 말은 더도 덜도 아닌 가스라이팅일 뿐이었는데, 그때 나는 분별하지 못했다. 그후 '광기'의 주인공들이 하나씩 떠난 그곳에 S는 지금까지 목자로 남아있다.



숙덕 얼렁뚱땅 약혼하다     


예고도 없이 C가 점심 먹으러 나오라기에 갔더니 군복 입은 덕이 같이 있었다. 삼계탕을 받고도 나는 한 술도 먹을 수 없었다. 국물도 목에 걸려 안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내 온몸과 맘은 굳어 있고 입은 바싹바싹 말라 갔다. C와 덕 두 사람은 맛있게 먹었다.   

   

C와 한 상에 밥 먹는 일이야, 가끔은 밖에서 밥을 사주기도 했으니 낯설 게 없었다. 문제는 덕이 왜 있냐였다. 그가 누구인가. 나를 아골골짜기로 끌려가게 하고 ‘영적훈련’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장본인 아닌가. 나는 진심으로 불편했다. 내게 유혹자란 주홍글씨를 달아주고 군대로 사라졌던 사람이었다.  

    

“다니엘이 휴가 나온 김에 내가 자리를 만들었지. 이제 너무 불편해하지 말고 잘 지내보도록 해”  

   

C가 알아들을 수 없는 운을 뗐다. 그토록 주리를 틀 땐 언제고 갑자기 불편해하지 말고 지내라?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결코 되묻지 않았다. 또 시험에 들까 오해 살까 두려워서였다. 두 남자가 닭을 뜯으며 뚝배기를 비워갈 동안 나는 물도 마시지 못했다. 작년 가을은 내 인생 트라우마가 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니엘을 동역할 사람은 드보라가 적임자야. 국내 지부장이나 해외 한 나라 지부장 선교사가 될 사람이잖아. 위대한 주의 종으로 쓰실 거야. 그러니 드보라가 잘 동역해.”


나는 귀를 의심하며 들었다. 이건 두 사람을 중매한다는 소리였다. 아, 나는 이런 상황이면 왜 말이 안 나올까. 나는 두 남자를 번갈아 바라볼 뿐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는지 말하고 싶지 않았는진 나도 모르겠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나올 뻔했다. 갑자기 남편감으로 받아들이라니.     


덕은 이미 기정사실로 아는 눈치였다. 미소띤 그의 준수한 얼굴이 아이처럼 해맑아 보였기 때문이다. 군복 입은 그가 왔다갔다 하는 건 알았지만 이런 ‘거래’가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무엇인가, C는 나와 자주 밥상에도 앉고 기도도 했으면서 왜 이런 식으로 통보할까… 오만가지 생각은 속에 있을 뿐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C는 우리 두 사람이 잘 동역하여 쓰임 받도록 축복했다. 그리고 나더러 선교사로 먼저 나가란 말도 덧붙였다.     


내 생각은 두 갈래였다. 이건 하나님의 상급일까 시험일까? 나는 덕이 잘 되기만 바라며 고통을 감내했더랬다. 낯선 남자를 소개받는 것보다야 낫다고 내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고통 속에 덕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관계를 바라볼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연애질 해서 결혼하게 된 양, ‘믿음의 결혼’이 아니란 낙인이었다. 어쩌면 다른 커플들도 남자 원하는 쪽으로 ‘중매’했을 것이다. 중매권은 C의 절대 권력이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침묵하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음식을 고스란히 남긴 채 나는 일어섰다. C와 덕이 캠퍼스 상황과 세계 선교 이야기를 했고 나는 말없이 들었다. 덕과 내가 따로 대화하는 시간은 없었다. 덕은 내게 저녁에 나를 바래주겠다고 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나는 다음 양들을 돌봤다. 나는 그를 결혼 상대로 받아들인 걸까. 내 마음 나도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지 가르쳐주는 이는 없었다. 나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랄까, 어떤 역습을 당할까, 행동거지를 조심했다. 내 신변의 결정을 C에게 위탁한 체로. 나는 예스도 노도 말한 적 없지만 이듬해 우리는 단체에서 얼렁뚱땅 약혼식을 했다. 1989년 가을이었다. 덕은 여전히 군복차림이었다.

이전 20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나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