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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Mar 09. 2024

알고 싶어요, 베를린에서

꽃이 아름답지만 온도가 맞지 않으면 금방 지듯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 주세요.


이선희의 노래 '알고 싶어요'는 연인을 향해 모든 게 궁금한 마음을 노래한다. 숙도 덕이 궁금했다. 그런데 모르겠더라. 덕도 그랬는지. 얼렁뚱땅 약혼하고 얼떨결에 연애라는 걸 시작한 우리는, 시작과 동시에 베를린과 서울에 한 학기 떨어져 지내야 했다. 나는 길고 긴 장문의 편지를 썼다. ‘연애편지’로라도 덕을 알고 싶고 깊이 대화하고 싶어서. 그러나 덕의 편지는 내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분량과 내용이었다.

 

참 좋아했던 노래인데 중년의 숙덕 귀에 어느날 다르게 들렸다.

    

숙: 아니, 왜 이리 짜증 나게 들리지? 사랑하는 사람끼리 직접 물어보고 대화해야 하는 거 아냐?

덕: 물어보려면 창피하고 눈치 보게 되고 그렇잖아.

숙: 사랑하는 사람이 왜 눈치 보게 해? 우쒸! 아직도 얘기를 해주세요냐 싶어서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져.

덕: 그런 사랑도 있으니까. 사랑하면 가슴앓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있었잖아.

숙: 생각해 봐. 정황상 짝사랑인 거 같진 않잖아. 전제가 위계적인 관계 같지 않아? 여자가 묻는 건 창피한 거고, 남자가 묻는다면 체면이 안 서고 뭐 그런. 질문 마음대로 못하는 관계, 거기 권력이 있고 불평등이 있다고!

덕: 그런 거 같아. 묻는 사람한테 도리어 내 맘 왜 몰라 줘? 이러지. 권력 맞네.

숙: 거절당하거나 판단 평가받을 두려움 없어야 질문할 수 있지. 그런 관계라야 진짜 사랑이 자랄 수 있다고.

덕: 맞아. ‘묻지마’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물으면 힘들어하는 사랑. 내가 그랬지.

    

긴 편지들 중 맛보기 발췌 몇 개만 올린다. 아, 이젠 읽기에 너무 갑갑하고 짜증스럽고 부끄러운 편지들, 이제 마지막이다.



   

1) 1990년 2월 4일 다니엘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한 분 드보라 목자님께  


내무반의 주일 아침은 TV소리 등으로 소란스럽습니다. 제대자 교육은 어제 다녀왔습니다. 식사, 잠자리, 휴식공간 등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실감 났습니다. 양가를 다녀온 뒤 2주일 동안,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하며 푹 빠져 버렸습니다. 어제 목자님의 소감을 읽은 뒤 좀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탓인지, 하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봐주시겠지 하는 심정으로 틈만 나면 푹 빠지곤 하였습니다. 한 가지 위안은 주안에서 드보라 목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 전역을 열흘 앞두고 기대와 염려가 뒤섞여 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은혜 안에서 충성하고 강해지도록. 본성은 참 강해서 자기 열심과 의지가 앞설까 걱정입니다. Factual Study는 사무엘서 진행 중입니다. 내무반이나 사무실이나 소란스럽지만 구약 끝까지 감당키를 기도합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부족한 저의 편지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십시오. … 이른 아침을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  당신의 다니엘     



2) 1990년 3월 31일 다니엘

 

심히 사랑하는 목자님, 일대일을 하는 뒷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르망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만남을 생각합니다. 목자님과 저, 곧 우리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부족하고 허물많은 우리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기대와 설렘이 가득합니다. 제가 예수님 안에 제 인생을 기대하듯 우리의 인생도 기대합니다.


조금 전 목자님이 얘기했듯이 저는 저의 진실과 솔직함을 드리고 싶고 목자님의 진실과 솔직함을 받고 싶습니다. 목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당신의 발걸음에 마음으로만 동행합니다. 내일은 주일이라 일찍 깨우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8시 이전에는 일어났으면 합니다. 그 이후까지 자는 모습을 상상하니 은혜가 안 될 것 같습니다.

      

 

3) 1990년 4월 8일 다니엘

     

심히 사랑하는 목자님, 목자님이 저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 직전까지도 참으로 담담하였습니다. 그러나 자동문이 닫히면서 참으로 아득하고 막막한 기분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통로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 우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다잡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공항 밖까지 가족들과 함께 나와 주차장에서 헤어졌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같은 값이면 좋은 자식, 좋은 사위가 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한데….    

 

동역자들과 함께였기에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차에서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공항에서 돌아온 뒤 1부 트레이너 미팅에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 끝날 때까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끝나고 5층으로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울다 잠이 들었는데 양이 와서 저를 깨웠습니다. 몹시 바쁘고 몹시 운 날, 일대일을 2팀 해서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목자님, ‘85년 베를린을 통한 공산권 개척의 방향을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압니다. 당신께서 목자님을 이날까지 인도하셨으며 베를린 개척을 시작하심을 감사합니다. … 저는 목자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직후 제 시계를 일곱 시간 늦추어 베를린에 맞추었습니다. 저의 기도와 마음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동역자 한 분을 얻어 감사합니다. 어머니와 가끔 통화하고 편지도 하며 기도 지원받고자 합니다. 밤 11시 5분 (베를린 PM 4:05)



4) 1990년 4월 15일 다니엘     


사랑하는 목자님, 저는 C의 방향대로 공대생 15팀 일대일을 이루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막연한데 한 주 동안 얼마라도 양들과 관계성을 맺고 일대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독일어 공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지난주 월요일 양심방 핑계로 학원을 결석한 뒤 이틀 동안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도전하는 믿음과 사명감으로 독일어를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캠프는 지난 한 주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다니엘 드림       


        

5) 1990. 4. 25. 다니엘이 쓴 소감


누가복음 12장 20절.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저는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공부의 실패로 수치심, 절망, 그리고 부전패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자존심으로 가끔 정신 차리기도 했지만 대학에서는 풀리지 않는 인생 문제 앞에서 공부는 완전히 포기 상태였습니다. 강의 시간이 괴롭고 두려워 빠지기 예사였고 공부한 게 없어 시험을 안 친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제적 일보 직전 은혜로 대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 만난 이후로도 이 문제엔 변화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몹시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베를린 자유대학 유학생 선교사 방향이 나온 뒤로는 마음이 막막하고 힘들었습니다.           


이 시간 문둥병자의 육신의 병과 마음의 병을 치료하시고 새 생활하도록 도우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저의 인간적 조건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님의 권능으로 베를린에 보내시고 선교사로 승리케 하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저는 공대생 일대일 15팀 기도제목을 붙들었지만 한 달 동안 3명만 섬기며 더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안일과 두려움으로 주저하였습니다. 창조적인 믿음으로 도전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사는 죄악을 회개합니다. 이번 주 어떻게든 공대생 15팀 도전하기를 기도합니다.    


      

5) 1990. 7. 26. 다니엘    

 

심히 사랑하고 보고 싶은 드보라 목자님, 다른 사람들은 꿈에 더러 목자님을 보았다는데 저는 매일 목자님 생각하며 잠이 들건만 꿈속에서 만난 적이 없습니다. C는 지난 월요일부터 2주 예정으로 일본 및 중국 선교여행 중에 있습니다. 센터에서는 7.20~8.4까지 창세기 기초공부가 있고 8.6~8.11까지 성경학교가 있습니다. 저는 주일 메시지 두 번에다 창세기 성경학교 메시지까지 섬겨야 해서 벅찬 여름입니다. 기말시험은 잘 감당하셨는지요?




5) 1990. 4. 13. 베를린에서 드보라


비행기 왼쪽 날개 옆자리였습니다. 가만히 있었습니다. 바깥은 잠시 후 어두운 밤하늘뿐이었고요. 저는 계속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많이 많이 눈물 흘리며 울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쓸모없는 죄인을 구원하시고 세계선교에 쓰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비행기는 계속 어둠 속을 날아가는데, 저는 진짜 혼자였습니다. 다니엘 목자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았습니다.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게 너무 다행이었습니다. …


R선교사님은 제가 환경이 바뀌어도 잘 먹고 잘 잔다고 기특해하였습니다. 시어머니처럼 잔소리해 주는 덕에 며칠간 저는 공부만 하고 시험 보았습니다. 그 결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어학과정 기초반에 배정되었어요. 이곳 어학과정이 짜임새 있고 수준 높기로 유명해 많은 학생들이 도전하지만 기회 못 얻는 경우가 많다네요. 제가 은혜를 입었죠. 수업은 4월 17일부터, 월화목금 9:30-13:00 수 11:00-14:00 아주 강트레이닝이겠죠.


어제는 은행통장을 만들었습니다. 다음 주중 의료보험 들고 학생등록하면 이제 학생입니다. 비자 해결하고 연장하면 되고요. R선교사님은 제 비자 해결되는 것 보고 24일쯤 한국 간다고 합니다. 비행기 예약한 대로 가시고 쉼을 얻길 기도합니다.             



6) 1990. 5. 1. 베를린에서 드보라


저는 베를린에 피는 꽃들을 보며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낀답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꽃은 피면 금방 지는 줄 알았는데, 등하굣길에 보면 핀 꽃이 오래 피어 있는 거예요. 아름다운 꽃을 지켜주는 날씨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벚꽃이며 개나리가 한국에선 얼마나 성급히 지던가요?


꽃이 아름답지만 온도가 맞지 않으면 금방 지듯, 우리 사랑도 온도가 안 맞으면 그렇겠지요. 우리가 서로를 잘 모르기에 우리 사이에 있는 먼 거리와 기다림의 긴 시간은 맑고 순수한(?) 우리 영혼을 더 길고 아름답게 피워줄, 알맞게 싸늘한 날씨라 생각되었습니다. 목자님을 조심조심 알아가며 더 깊고 넓게 소유하고 싶습니다. 제가 만약 꽃이라면, 목자님의 가슴에 아름다운 자태로 오래 피어 기쁨과 자유와 풍요와 평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 우리 사이에 계신 예수님의 영이 우리를 더 깊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7)1990. 5. 20. 베를린에서          


… 수많은 개척의 종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홀로 외국 땅에서 성령의 역사를 섬긴 분들이 얼마나 피나는 투쟁을 했으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 분들인지요. 목자님도 군대에서 이런 심정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자다 깨도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은 분명하다지만 현실은 깡으로 악으로 사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주님 아시죠? 였습니다. 본국에서 날마다 기도하며 새 소식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기조차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당신께 힘과 위로가 못 되는 거 같아 펜을 들었다 놓곤 했습니다.


언제나 열쇠는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나와 주님이 형식과 의무와 보여주기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듯 나와 당신은 역동적이며 자유로우나, 무서우리만치 강하고, 또 지극히 박약한 고리로 이어진 그런 관계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었던 시인의 말처럼, 그런 관계는 외줄을 타는 듯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규정된 역할은 없지만 헌신과 자유와 성장은 있다고 했던가요?


며칠 전 받은 아버님의 편지를 읽고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자상하게 쓰신 사랑과 배려가 감사한 반면, 앞으로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보였습니다. 어머님은, 어서 빨리 3년이 흘러 오순도순 살 날을 기다린다고 늘 말씀하신다는군요. 아버님도 그날이 오면 열일 제쳐놓고 며느리 마중 가시겠다고요. 끝에는 “아버지가”라고 쓰셨습니다. 한참을 보았습니다. “하덕이 아버지가”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이더군요.


목자님을 생각하면 대학 4학년 시절이 오버랩되곤 합니다. 너무 친하면 안 될 분과 자꾸 가까워지는 거 아닌지 두려워하다가도 심란해질까 봐 깊이 생각 안 하려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더랬죠. 지금도 종종 그런 기분이랍니다. 그런데 아버님의 편지를 보고 우리가 꽤 멀리까지 왔구나, 이미 돌아가기 어려운 코스로 접어들었구나, 싶었습니다. 이 마음 아실까요?       


   

8) 1990. 8. 4. 베를린에서    


우리의 결혼이라는 게 성큼 제 앞에 호랑이처럼 버티고 있군요. 결혼을 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한국에 가야 하는군요. 보훔에서 보니 M도 올가을 음악회하고 결혼하는 것 같습디다. 좀 들떠 보여 인상에 남았습니다. 저는 8월 21일 15시 10분 서울 도착 10월 12일 서울 떠나는 것으로 예약했습니다. 언제는 주님이 원하시면 일생이라도 떨어져 살 수 있다 큰소리친 것 같은데, 막상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른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한 2주간은 정말 먹고 자고 수업하고 복습과 시험 준비로 모처럼 고등학생같이 보냈습니다. 거의 학교에서, 도서실, 어학실습실 혹은 카페테리아, 잔디밭 등에서 두서너 사람과 같이 공부했습니다. 시험 결과 보러 간 날 선생님이 그랬습니다. 처음에 비해 너무나 진보가 빠르고 성적이 "ganz toll!"이라고요. … 저는 모두 90점대를 받아 통과했습니다.


결혼 얘기 나온 김에 더 쓰겠습니다. 이곳은 일일이 예로 들기 피곤할 정도로 결혼 문화는 다른 것 같습니다. 친구끼리 사는 게 젊은이들에게 일반적이고요. 제가 만난 Isabel은 불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유명한 Luther 교회 음악회에 초대받아 갔더니 자기 집에 저녁식사까지 초대했어요. 불신자인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둘은 각각 직장과 생활이 있지만 공동주거로 생활하는 관계입니다. 대화할수록 참 지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교회라는 게 이곳에선 문화의 한 모퉁이밖에 아닌 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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