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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Jun 05. 2024

새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고쳐쓰며

글을 고쳐쓰고 목소리를 살리는 건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었다

이대로 가도 좋은가?

지워버려도 될 문장은 없는가?

삭제해도 될 단락은 없는가?

글맛을 위해 끼워넣어야 할 건 없는가?

.....


글쓰기에서 수정과 퇴고가 가장 어려운 과정이지 싶다. 책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 초고가 편집자의 손을 거친 원고로 내 손에 들어왔고 나는 빨간펜을 들었다. 분량이 넘치게 많다더니 과연 내가 못한 일을 한 편집자의 힘이 보였다. 어떤 꼭지는 빠지고 어떤 꼭지는 살아남아서 돌아왔다. 읽어보니 한 꼭지에서도 사라지고 없는 단락도 있었다. 편집자는 옳다,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받아들였다. 


읽을수록 손 보고 싶은 지점이 많이 보였다. 편집자는 편집했을 뿐 내가 쓴 문장을 고쳐쓰는 법은 없었다. 글을 고쳐쓰고 목소리를 살리는 건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읽고 고쳐썼다. 셀 수 없이 많은 문장을 내 손으로 고치고 지웠다. 군더더기다 싶은 건 자르고 필요한 곳엔 끼워넣기도 했다. PDF 파일로 정리된 본문을  딸의 패드로, 그리고 아들의 패드로 또 한 번 수정했다. 지겹지 않냐고? 아니! 재미있었다. 들여다볼수록 다시 손댈수록 좋아지는 게 글쓰기니까. 


마지막으로 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쓰기가 즐겁기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초고 때 다 써버릴 걸, 영 새삼스럽고 쓰기가 힘들었다. 머릿말이 중요한 걸 잘 아는 사람으로서 잘 쓰고 싶어서 그랬다. 책 고를 때 나처럼 머릿말을 찬찬히 읽는 독자들을 생각할수록 더 그랬다. 책을 어떻게 짧은 머릿말에 잘 정리해 소개할 수 있을지, 독자가 책을 사 읽고 싶게 말할 수 있을지, 잘 하려 할수록 술술 써지지 않았다.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가 싶고, 재미없어 보이고, 고치고 또 엎고 다시 써야 했다.


아~~ 어쩔 것이여. 잘 쓰려는 맘을 버리고, 그냥 막 쓰자, 그런다고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 되는대로 쓰고 다시 뒤집어 쓰며 고치자, 지우고 다시쓰기를 하고 또 했다. 에필로그 수정한 PDF파일이 하도 빨간펜으로 지저분해져서 프롤로그 에필로그만 한글로 다시 적어 보내야 했다. 여기까지,라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인쇄 들어가기 전 마지막 파일 확인을 기다린다!





 프롤로그/ 나는 왜 쓰고 싶지?



 나는 20대에 좀 끔찍한 일을 겪었다. 당시엔 그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길지 알지 못했다. 견뎌 내기 급급했고 시간 속에 기억이 희미해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기억은 불쑥 떠올라 나를 따라다녔다. 가슴에 할 말이 와글거리는데 나는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나 자신과 불화한 나날이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그 일을 쓰지 않으면 죽을 때 편히 눈감지 못할 거라고 가슴이 말했다. 무얼 써야 할지 고민이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이다. 그런데 굳이 왜 쓰고 싶은 걸까? 가슴에 질문이 차오른 어느 날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았다. 


나는 왜 쓰고 싶지?

내게 말할 기회를 주고 나와 화해하고 싶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되고 싶어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서.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란 제목은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기Exodus에서 따왔다. 영화 <쇼생크 탈출>도 좋다. 노예의 삶도 감옥살이도 현실인 동시에 인간 실존의 은유다. 그래서 탈출기는 구원과 해방의 문학이다. 이 책은 한 여자가 침묵과 복종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브런치에 <숙덕숙덕 사모가 미쳤대>로 연재한 덕분에 꼬박꼬박 원고를 쓸 수 있었다. 간암 수술과 갱년기를 통과하며 자기주도적 자연치유를 택한 게 어느새 10년 전 일이다. 가족력 B형 간염 보유자가 항체를 얻고 삶을 바꾼 이야기는 전작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 자세히 나온다. 그러니까 이 탈출기는 그 책의 프리퀄인 셈이다.


내 인생 변곡점인 2002년을 1장에 배치했다. 여자 나이 마흔에 인생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린다. 후반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전반전 경기 분석이 필요하지. 자비량 선교사, 세 아이 엄마, 그리고 사랑과 헌신의 아이콘 30대 목사 사모 이야기를 2장에 담았다. 3장은 1980년대 한국 사회와 선교 단체에서 20대 여자가 어떻게 가스라이팅과 여성혐오에 자아를 잃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4장에서 시간은 새천년으로 돌아온다. 후반전을 위한 하프타임이다. 여자는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며 다시 묻고 공부한다. 예술가, 사회복지사, 미자립교회 사모 10년간 세상으로 눈이 열리고 자기 목소리를 되찾아간다. 5장은 50대 이후 본격 후반전 이야기로, 2014년 암 수술 이후 판이 뒤집힌 새 삶의 면면을 보여준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 다 싣지 못한 새 몸 새 길 이야기, 매체에 쓴 글, 그리고 지금 여기서 맛보는 자유와 해방과 사랑의 이야기다.


내가 살고 싶은 좋은 나라를 상상하며, 이 땅에 이루어지는 그 나라를 그리며 쓴다. 다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종의 멍에를 씌우는 일은 보고 싶지 않다. 젊음은 실패할 자유이고 시행착오를 겪을 특권이다. 나의 20대처럼 언어가 없어 납작한 자아로 눌려 사는 사람은 없기를 기도한다. 30대의 나처럼 사랑과 헌신이란 이름에 매몰되어 목소리 없는 그림자로 사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흔들리며 의심하며 다시 살기를 배우려는 40대를 뜨겁게 응원한다. 50대의 내가 그랬듯 낯선 걸음을 내딛는 중년에게 박수를 보낸다. 60대의 나처럼 지금 여기서 새로운 꿈을 함께 꾸는 길동무들이 고맙다.


2024년 6월 안산에서 꿀벌 김화숙

 



에필로그/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는 글쓰기였다. 지나온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똑바로 응시하는 게 힘들었다. 구토할 정도로 괴로운 날도 있었고 멍하니 시간을 죽일 때도 있었다.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를 쓰며 가장 부끄러울 땐 편지를 공개할 때였다. 34여 년 전에 쓴 건데 조선 시대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초고를 읽은 가족들도 “도저히 못 읽겠다”는 반응이었다. 짝꿍 덕은 자기가 쓴 편지는 건너뛰고 읽었다. 그런 부분은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도 쓰기 힘들었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이 훨씬 더 커서 끝까지 쓸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천사처럼 나타나 나를 돕고 살리고 함께해 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일일이 다 언급하지 못할 정도다. 숙덕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만들어 가는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감사한다. 목사와 사모를 향한 숙덕숙덕 소리를 견디며 길동무가 되어주니 고맙다. 어느새 6년 차, 교회 안팎의 벗들이 함께 한 달 한 번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을 토론하는 ‘백합과 장미’가 고맙다. 연대할수록 힘이 되는 벗들 여신협에 감사한다. 


책에 쓰지 못했지만, 어리고 부족한 나와 함께 배우고 거쳐간 이들께 감사한다. 덕분에 질문하고 상상하며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공부할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 돌아와 함께 했던 공동체에 감사한다. 내가 받은 상처를 그들에게도 주었음을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안하고 고맙다. 숙덕의 가정교회에서 함께한 벗들께 감사한다. 물심양면 받은 은혜가 점점 크게 느껴진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숙덕을 후원해 준 벗들께 머리숙여 감사한다. 


안산여성노동자회, 함께크는여성 울림, YWCA, 책살림, 수글수글 등 함께 행동하고 토론하고 글쓰는 벗들이 고맙다. 별을 품은 사람들, 4.16안산시민연대, 4.16합창단, 세월호로 별이 된 이들을 함께 기억하며 노래하는 벗들이 고맙다. 지난 8년간 함께 성장해 온 안산여성노동자회 페미니즘 토론 모임 ‘이프’ 벗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용기다.


가장 가까운 내 우군, 가족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쇠약한 몸으로 딸을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친정엄마가 고맙다. 큰아들의 돌봄에 만족하며 내게 며느라기를 요구하지 않는 시엄마가 고맙다. 나와 함께 낯선 길을 가며 깨지는 걸 개의치 않는 짝꿍 덕이 고맙다. 바쁜 수험생활 중에 이 책의 제1 독자로 꼼꼼히 읽어주고 퇴고를 도와준 딸에게 감사한다. 엄마의 돌봄에서 일찌감치 독립한 멋진 두 아들이 고맙다.


 이 어려운 시절에 무명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책을 또 한 권 내는 출판사 생각비행에 감사한다. 엄청난 분량의 초고를 편집해 준 수고에 감사의 말이 모자란다. 마지막으로 내 글을 읽어주는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한다. 독자와의 공명이 너무 즐거워서, 나는 다시 새책을 쓰고 싶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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