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에 좀 끔찍한 일을 겪었다. 당시엔 그게 상처로 남을지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지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시간 속에 기억이 희미해지길 기대하며 견뎌내기 급급했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불쑥 떠오른 기억은 나를 따라다녔다. 가슴에 할 말이 와글거리는데 나는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나 자신과 불화한 나날이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그 일을 쓰지 않으면 죽을 때 편히 눈감지 못할 거라고 가슴이 말했다. 무얼 써야 할지 고민이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이었다. 그렇다고 꼭 써야 하나? 가슴에 질문이 차오른 어느 날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았다.
나는 왜 쓰고 싶지?
내게 말할 기회를 주고 나와 화해하고 싶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되고 싶어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서.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란 제목은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기Exodus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도 좋다. 노예 생활도 감옥 생활도 인간 실존을 잘 보여주는 상황이다. 탈출기는 그래서 구원과 해방의 문학이다. 이 책은 한 여자의 자유를 향한 질주요, 침묵과 복종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브런치북 <숙덕숙덕 사모가 미쳤대>로 연재한 덕분에 꼬박꼬박 쓸 수 있었다. 간암 수술과 갱년기를 통과하며 자기주도적 자연치유를 택한 게 어느새 10년 전 일이었다. 가족력 B형 간염 보유자가 항체를 얻고 삶을 바꾼 이야기는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 자세히 썼다. 그러니까 이 탈출기는 그 책의 프리퀄인 셈이다.
내 인생 변곡점인 2002년을 1장에 배치했다. 여자 나이 마흔, 인생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린다. 후반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전반전 경기 분석이 필요하지. 자비량 선교사, 세 아이 엄마, 그리고 사랑과 헌신의 아이콘 30대 목사 사모 이야기를 2장에 담았다. 3장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20대 여자가 어떻게 여성혐오에 자아를 잃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4장에서 시간은 새천년으로 돌아온다.
후반전을 위한 하프타임이다. 여자는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며 다시 묻고 공부한다. 예술가, 사회복지사, 미자립교회 사모 10년간 세상으로 눈이 열리고 목소리를 되찾아간다. 5장은 50대 이후 본격 후반전을 보여준다. 2014년 암 수술 이후 판이 뒤집힌 새 삶,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 다 싣지 못한 새 몸 새 길 이야기, 그리고 지금 여기서 맛보는 자유와 해방과 사랑의 파노라마다.
이제 다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종의 멍에를 씌우는 일은 보고 싶지 않다. 젊음은 실패할 자유이고 시행착오할 특권이다. 나의 20대처럼 언어가 없어 납작한 자아로 눌려 사는 사람은 없기를 기도한다. 30대의 나처럼 사랑과 헌신이란 이름에 매몰되어 목소리 없는 그림자로 사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흔들리며 의심하며 다시 살기를 배우려는 40대를 뜨겁게 응원한다. 50대의 내가 그랬듯 낯선 걸음을 내딛는 중년에게 박수를 보낸다. 60대의 나처럼 지금 여기서 새로운 꿈을 함께 꾸는 길동무들이 고맙다.
2024년 6월 안산에서 꿀벌 김화숙
에필로그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는 글쓰기였다. 지나온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똑바로 응시하는 게 힘들었다. 구토할 정도로 괴로운 날도 있었고 멍하니 시간을 죽일 때도 있었다.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를 쓰며 가장 부끄러울 땐 젊은 날의 편지를 공개할 때였다. 30여 년 전 일인데 다른 시대 이야기 같았다. 초고를 읽은 가족들의 반응도 “도저히 못 읽겠다”였다. 짝꿍 덕은 자기가 쓴 편지는 건너뛰고 읽을 정도였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2년 전 출간한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 쓴 상황이 2011년에 쓴 이메일에도 있어서 놀랐다.
5년여 시간차를 둔 비슷한 상황이란 “나는 말하고 싶다”는 자각이었다. 13년 전 교회에서 은아 부부의 다툼을 듣고 나는 덕에게 글로 하소연하고 있었다.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지 않고 화내지 않는 ‘좋은’ 아내가 남의 부부싸움이 부럽더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8년 전 글은 N의 부부싸움을 부러워하다가 초라하고 헐벗은 자기 모습을 마주하는 내용이었다.
무슨 이야기냐면 익숙한 걸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는 소리다. 코를 박고 사느라 다른 세상을 볼 수조차 없었다. 매사에 순응하며 사는 법만 배운 사람이 변화를 시도하자니 두려움을 피할 수 없었다. 목소리 없이 살던 시절은 내가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억압한 시절이기도 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미안하고 부끄럽고 괴로운 글쓰기였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이 훨씬 커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천사처럼 나타나 나를 돕고 키워준 분들께 감사한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쇠약한 몸으로 이 딸을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친정엄마가 고맙다. 큰아들의 돌봄에 만족하며 내게 큰며느리 노릇을 요구하지 않는 시엄마가 고맙다. 나와 함께 계속 깨지는 걸 개의치 않는 짝꿍 덕이 고맙다. 바쁜 수험생활 중에 이 책의 제1 독자로 꼼꼼히 읽어주고 퇴고를 도와준 딸에게 감사한다. 엄마의 돌봄에서 일찌감치 독립한 멋진 두 아들이 고맙다.
숙덕과 함께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실험하는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감사한다. 목사와 사모를 향한 숙덕숙덕 뒷말을 견뎌내며 길동무가 되어주니 고맙다. 어느새 6년 차, 교회 안팎의 벗들이 어울려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을 토론하는 ‘백합과장미’가 고맙다. 연대하며 배우는 믿음의 벗들 여신협에 감사한다. 안산여성노동자회, 함께크는여성 울림, YWCA, 손잡고 싸우는 안산의 여성단체 벗들이 고맙다. 별을품은사람들, 책살림, 수글수글, 함께 토론하고 글 쓰는 벗들이 고맙다. 안산4.16시민연대와 4.16합창단에서 세월호로 별이 된 이들을 기억하며 노래할 수 있어 감사한다. 8년간 함께 성장해 온 안산여성노동자회 페미니즘 토론 모임 이프 벗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용기다. 이 어려운 시절에 무명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책을 또 한 권 내는 출판사 생각비행에 감사한다. 엄청난 분량의 초고를 편집해 준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어서 새 책을 또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