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길에 밤꽃 향내를 따라 가 흐드러진 밤꽃 사진을 찍었다. 해마다 보는데도 독특한 꽃 모양에 향기가 또 낯설어 나무 아래 한참 서 있었다. 볼수록 개성있는 꽃이다. 세상 모든 꽃이 같은 모양 같은 색 같은 향기면 얼마나 싫증날까. 무슨 꽃이 그렇게 생겼냐 모양과 향기가 왜 그 모양이냐, 감히 밤나무에게 말할 수 없으리. 그게 밤꽃이니까. 내 글도 그런 거 같다. 내 색깔과 느낌이 드러나야 내 글 아니겠나.
새 책 프롤로그 에필로그가 맘에 들 때까지 또 수정하고 다시 보냈다. 엊저녁 수글수글 합평 덕분이었다. 아무리 봐도 무겁고 맘에 안 드는 걸 어쩌랴. 출판사에 보낸 글이지만, 합평 후 다 뒤집어야 할 게 무섭지만, 글벗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역시 글벗들의 눈은 정확했다. 내가 찜찜한 부분을 다 짚어줬다. 덕분에 아침에 다시 쓸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끝~~ 이란 말을 몇 번 다시하며 파일을 보냈다.
늦게라도 글벗들의 합평을 받은 건 잘한 일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준 글벗들이 고맙다. 이미 퇴고한 원고라는데 별로 의견을 말하고 싶지 않은 맘 왜 없겠는가. 그러나 수글수글 벗들은 글에 진심인 사람들. 기탄없이 나눈 덕분에 내 맘에 더 드는 글이 되었다. 이제야 기분이 가볍다. 나를 토닥토닥 칭찬한다. 이제 정말 잊어버리고 주말을 쉬자. 더 이상 고칠 것 없는 글 파일로 받을 수 있을까? 마지막 검토가 기다려진다.
프롤로그/ 나는 왜 쓰고 싶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1번은?”
한 강좌에서 ‘버킷 리스트’를 적고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몇 개 적다 말고 꼭 하고 싶은 일 1번으로 생각이 되돌아갔다. 가장 절실한 소원 하나를 먼저 이루어 보자는 고집이었다. 20년도 더 전, 내 인생 ‘하프타임’ 초기였고 백수로 살 때였다. 전반 40년 인생과는 다른 후반부를 살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쓰기 말곤 절실한 게 없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미자립 가정교회 목사 사모, 이게 40대의 내 ‘사회적’ 이름이었다. 가끔 ‘애 셋 딸린’이란 수식어도 붙었다. 그 시절 글쓰기가 내 은밀한 이름이었다. 나는 책을 읽었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예술가 작가라 여겼다. 돈 안 되는 글쓰기를 돈도 없는 사람이 하자니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목구멍까지 질문이 차오르곤 했다. 나는 왜 굳이 굳이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50대가 된 후 어느 날 책상 앞에 써 붙였다.
나는 왜 쓰고 싶지?
내게 말할 기회를 주고 나와 화해하고 싶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되고 싶어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서.
내 가슴에 와글거리는 할 말 때문이었다. 활달하고 말 잘하는 겉모습과 달리 나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고 살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으면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고 내 탓을 하곤 했다. 내 감정과 성격을 드러내기보단 남에게 맞추는 게 미덕인 줄 알았으리라. 문제는 어떤 생생한 기억이었다. 불쑥 떠올라 나를 따라다니는 기억 때문에 나는 점점 더 말하고 싶었다.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글쓰기로 가는 길밖에 없었다.
60대 목사 사모가 그 버킷 리스트 1번을 이루었다면 너무 거창한가? 아니, 그렇게나 절실하게 말하고 싶던 걸 썼다. 그렇다.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란 제목은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기Exodus에서 따왔다. 영화 <쇼생크 탈출>도 좋다. 노예의 삶도 감옥살이도 인간의 현실인 동시에 인간 실존의 은유다. 그래서 탈출기는 구원과 해방의 문학이다. 이 책은 한 여자가 침묵과 복종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브런치에 <숙덕숙덕 사모가 미쳤대>로 연재한 덕분에 꼬박꼬박 원고를 쓸 수 있었다. 간암 수술과 갱년기를 통과하며 자기주도적 자연치유를 택한 게 어느새 10년 전 일이다. 가족력 B형 간염 보유자가 항체를 얻고 삶을 바꾼 이야기는 전작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 자세히 나온다. 이 탈출기는 더 먼저 나오지 못하고 그 책의 프리퀄이 된 셈이다.
내 인생 변곡점인 2002년에서 1장이 시작된다. 여자 나이 마흔에 인생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린다. 후반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한다. 2장에서 사랑과 헌신의 아이콘 30대 목사 사모 이야기로 전반전 경기를 되돌아본다. 3장은 1980년대 한국 사회와 선교단체를 배경으로 좌충우돌하는 20대 여자의 사랑과 열정을 보여준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가스라이팅을 보여준다. 4장에서 시간은 새 천년으로 돌아가 하프타임이 계속된다. 여자는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며 다시 묻고 공부한다. 예술가, 사회복지사, 미자립교회 사모는 자기주도적으로 세상을 탐색하며 자기 목소리를 찾아간다. 5장은 50대 이후 본격 후반전 이야기로, 2014년 암 수술 이후 판이 뒤집힌 새 삶의 면면을 보여준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 다 싣지 못한 새 몸 새 길 이야기, 매체에 쓴 글, 그리고 지금 여기서 사랑하고 행동하는 중년의 목소리다.
내 가슴은 여전히 말한다. 아직 할 말이 있고 할 일이 많다고. 살고 싶은 나라,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며 꿈꿀수록 그렇다. 내가 겪은 부당한 일을 내 딸과 다음 세대는 겪지 않기를 소망하며 나는 쓴다. 어딘가에서 가슴에 할 말을 묻어두고 사는 이들을 생각하며 쓴다. 이제 더는 그 누구도 사람에게 종의 멍에를 씌우는 일은 안 보고 싶다. 하나님의 이름으로도 교회의 이름으로도 사랑과 권위의 이름으로도 국가의 이름으로도. 내가 그랬듯 젊은이도 늙은이도 넘어지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중년에도 노년에도 삶은 같은 날이 없고 새로운 선물이다. 내가 납작한 자아로 살 땐 이런 놀라운 중년의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누구라도, 함께 새 꿈을 꾸자고 손 내밀며 또 쓴다.
2024년 6월 안산에서 꿀벌 김화숙
꿀벌 김화숙
자신의 여러 이름 중 예술가로 살 때 가장 행복한 60대 ‘목사 사모’다. 1980년대부터 대학 선교 단체에서 ‘성서 한국 세계 선교’라는 ‘사명’에 매여 살다가 마흔에 그림자 인생을 자각한다. 새로운 후반전을 꿈꾸며 공부와 자기 탐색으로 하프타임을 갖는다. 2014년간암 수술 후 ‘가만히 있으라’는 현대 의료 시스템을 버리고 자기주도적 자연치유의 길을 택한다. 단식과 자연식 등으로 B형 간염 항체를 얻고 몸을 바꾸고 삶을 바꿔 버린다. 침묵을 깨고 글쓰기, 토론 진행, 강연, 416합창단 등으로 세상에 활개치는 작가요 활동가로 살고 있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를 썼고 《글로 모인 사이2》,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을 공저했다.
지나온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똑바로 응시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마주하게 될 땐 구토할 정도로 괴로웠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 말을 되뇌며 멍하니 시간을 죽일 때도 있었다. 옛 편지를 공개할 땐 피하고 싶었다. 34여 년 전에 쓴 건데 조선 시대 글을 읽는 기분이랄까. 초고를 읽은 가족들도 “도저히 못 읽겠다”는 반응이었다. 짝꿍 덕은 자기가 쓴 편지는 건너뛰고 읽을 정도였다.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는 내가 죽기 전에 꼭 쓰고 싶다던 그 이야기다. 쓴다고 말은 했지만 정말 책으로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가볍지 않은 내용에다 폭풍 집중 연재까지 했다. 후반에는 주 4편까지 연재하며 달렸다. 몸이 안 따라주거나 주변에 변수가 있었다면 끝까지 못 왔을 것이다. 점점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감사하며 끝낼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천사로 나타났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먼저 감사한다. 나를 수단이 아니라 한 인간 존재로 지지하고 도와준 손길 덕에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한다. 지금 여기서 숙덕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만드는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감사한다. 목사와 사모를 향한 숙덕숙덕 소리 너머 새 길을 보니 고맙다. 교회 안팎의 벗들이 6년째 한 달 한 번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을 토론하는 ‘백합과 장미’가 고맙다. 연대하는 손길 여신협 벗들에게 감사한다.
어리고 부족한 나를 거쳐 가며 나를 자극하고 확장하도록 도와준 분들께 감사한다. 폴란드에서 돌아와 함께 했던 공동체가 고맙다. 익숙한 걸 바꿀 용기가 없어 상처를 대물림할 뻔했던 게 미안하다. 숙덕의 가정교회 시절 함께한 벗들이 고맙다. 물심양면 받은 은혜가 날로 크게 느껴진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숙덕을 지지하고 후원해 준 손길에 머리숙여 감사한다.
안산여성노동자회, 함께크는여성 울림, YWCA 등 내 힘이 되고 활동 마당인 안산의 단체들이 고맙다. 글벗으로 같이 읽고 합평해 주는 ‘수글수글’이 고맙다. 별을 품은 사람들, 4.16안산시민연대, 4.16합창단에서 세월호의 별들을 기억하고 함께 노래하는 복에 감사한다. 늦은 밤 토론하다 잠시 쉬는 책살림 벗들이 고맙다. 지난 8년간 함께 성장해 온 안산여성노동자회 페미니즘 토론 모임 ‘이프’가 고맙고 자랑스럽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용기다.
가장 가까운 내 우군, 가족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쇠약한 몸으로 딸을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친정엄마가 고맙다. 큰아들의 돌봄에 만족하며 내게 큰며느리 노릇을 요구하지 않는 시엄마가 고맙다. 나와 함께 낯선 길을 가며 깨지는 걸 개의치 않는 짝꿍 덕이 고맙다. 우리가 만들어 갈 새 길이 날로 더 기대된다. 바쁜 수험생활 중에 이 책의 제1 독자로 꼼꼼히 읽고 퇴고를 도와준 딸이 고맙다. 엄마의 돌봄에서 일찌감치 독립한 멋진 두 아들이 고맙다.
단체도 회사도 다 어렵다는데 무명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책을 또 한 권 내는 출판사 생각비행에 감사한다. 엄청난 분량의 초고를 편집한 수고에 감사의 말이 모자란다. 마지막으로 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인생 소원 1번을 이룬 너, 다음 소원을 말해 봐! 나는 주저없이 답한다. 글쓰기! 독자와의 공명이 즐거워서, 또 새 책을 쓰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