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로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10반 장수정에게
8월의 아이 수정아!
네 생일이 든 8월이 가는구나. 정말 더운 여름이었고 길고 긴 열대야였어.
8월의 아이 수정이가 생각나는 한 달이었단다. 네 생일날인 8월 22일엔 너를 기억하며 축하하며 하루를 시작했지. 그날 나는 오후에 1박2일로 떠날 일정이 있었어. 그래서 아주 이른 아침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했어. 그런데 너무 더워서 도저히 쓸 수가 없더구나. (우리집엔 에어컨이 없다는 건 우리끼리의 비밀이야.) 너와 함께 집을 나섰지. 4호선 전철을 타고 신용산역에 내려 근처 카페에 들어갔어. 네가 카페 좋아하는 아이란 걸 기억하며 말이야.
드디어 8월 마지막 주가 가고 있어. 열대야가 수그러들고 있잖아? 오늘 아침 기온 25도라니! 꿈만 같아. 네 생일에 쓰기 시작한 편지를 8월 말이 돼서 퇴고하고 있어. 너는 8월 한 달 오롯이 내 곁에 있었다는 거 알겠지?
https://youtu.be/HdkLHGu8fDc?si=Xpz9J8HH5UtLfw0u
다 함께 만들어요 416생명안전공원
다 함께 만들어요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
안산이 품고 대한민국이 기억하며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생명안전공원
슬픔을 딛고 새로운 미래 열어가는
우리 모두의 다짐과 희망을 모아
....
416합창단이 부른 '다 함께 만들어요 4.16생명안전공원' 영상을 네게 보여주고 싶었어. 무더위 속에 노래를 녹음하고 영상을 촬영했지. 별이 된 너희들이 모두 생명안전공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었어. 416합창단이 있는 가족협의회, 강당, 기억교실, 단원고 고래 조형물, 그리고 생명안전공원 부지 등에서 노래하며 촬영했어. 땀은 났지만 얼마나 유쾌발랄하게 노래하고 춤췄는지 아니? 평소 합창할 땐 수시로 목이 매이고 울컥하지만 이번 작업만은 그렇지 않았어. 보고 있으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야.
수정아! 올가을엔 생명안전공원이 첫삽을 뜨길 간절히 기도하며 노래했어. 이젠 더 미뤄지지 않고 약속대로 시행되길, 흩어져 있는 너희들이 모두 한자리에 올 수 있길 기도해.
천국을 꿈꾸는 아이 수정아!
"내 카페에 오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보여주고 싶다."
네가 한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야. 내가 카페에 가면 생각나곤 해. 너는 바리스타와 요리사를 둘 다 하고 싶었지. 수학여행 다녀오면 본격적으로 바리스타 학원에도 다닐 계획이었지. 네가 가장 좋아하는 캐러멜 마키아토를 날마다 새로운 문양으로 만들걸 상상하며 행복해했지.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아메리카노를 날마다 내려드리고 싶었고 말이야. 사람들에게 맛난 커피와 함께 음식과 분위기와 쉼이 있는 카페에서 천국을 맛보게 하고 싶었구나.
천국을 꿈꾸고 상상하는 수정아! 나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길 꿈꾸며 기도한단다. 수정이 덕분에 나도 카페에 가면 천국 카페를 그려보게 돼. 그윽한 커피향에 아름다운 음악, 사람들의 대화소리. 딱딱한 가구 말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 사람들이 화해하고 사랑하며 사는 곳. 그 뿐이겠니? 천국이라면 차별하는 사람도 차별당하는 이도 없겠지. 억울한 사람도, 디지털 성범죄도, 악명높은 딥페이크 성착취의 두려움도 없겠지.
씩씩한 아이 수정아!
너는 엄마와 함께 천국을 맛보길 좋아했구나. 엄마와 외출하면 잘 들르는 커피전문점이 있었지. 너는 인테리어며 카페 분위기를 살피며 네가 꾸밀 커피전문점을 상상하고 구상하길 좋아했지. 너는 브런치로 간편한 식사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회의도 할 수 있는 카페를 하고 싶었지. 틈날 때마다 김치볶음밥 멸치 주먹밥 해산물 볶음밥을 창의적으로 만들었지. 커피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응용하며 만들기 좋아했구나.
너는 별명이 '엄마의 껌딱지'였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라며 엄마와 함께 하길 좋아하는 딸이구나. 아빠는 늘 일 때문에 출타 중이라 엄마는 요샛말로 독박 육아에 살림에 직장 일까지 삼중고를 겪어야 했지. 너는 태어날 때 머리가 아니라 다리부터 나오는 아기라 엄마가 까무러치는 수고를 하셨지. 엄마가 지신 삶의 고충을 이해하는 너는 토요일이면 엄마랑 같이 장보고 짐을 들어주고 맛있는 요리를 해서 엄마를 위로하는 딸이었구나.
아~ 수정아!
너는 1살 위 오빠와 정확히 같은 날 태어났구나. 그래서 8월 22일이면 수북하게 양초가 꽂힌 케이크 하나로 남매의 생일을 함께 축하했구나. 한쪽엔 4살 수정이 초 빨간 색 네개, 반대편엔 5살 오빠 초 파란 색 5개.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너는 오솔레미오~~를 부르는 ‘드센’ 동생. 그런 너를 고분고분 따르는 순한 오빠. 그 뒤엔 행여 오빠가 동생을 때리기라도 할까 살피는 엄마가 계셨지. 네가 볶음밥 하면 오빠가 설거지를 하고 수정이가 방을 쓸면 오빠가 걸레질을 하고. 손잡고 함께 다니는 짝꿍 오누이, 참 보기좋아.
올해 8월 22일을 가족들은 어찌 보냈을까? 너 없는 생일에 엄마 아빠 오빠 세 분의 안녕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오빠는 같은 날 태어난 네 생각 나서 이젠 생일 케이크 싫어하실까? 아냐, 네 생일 양초까지 변함없이 함께 꽂고 오누이 생일로 축하하며 살아내시리라 믿고 싶어. 수정아! 보고싶구나. 네가 꿈꾸던 그 천국 카페에서 먹고 마시며 수다떨고 싶어. 천국에서 다시 만나면 너는 그대로일까? 오빠와 엄마 아빠를 금방 알아볼 수 있겠지? 천국에서, 수정 천국 카페에서 수정표 커피도 마시고 볶음밥도 먹고 싶어. 안녕~~
(세월호로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10반 장수정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