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내 전화기 바탕화면 알림이 "엄마 36일"로 떴어. 엄마 떠나고 한 달 하고 또 한 주가 다 가고 있다는 뜻이야. 그동안 하루도 엄마를 잊은 적 없지만 오늘도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사랑해.
아~~ 엄마!
미친 비상계엄 선포와 그 후폭풍 때문에 글쓰기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이 흔들렸어. 하루 종일 정치뉴스 지켜보느라 다른 일을 미루게 돼. 엄마를 생각하며 조용히 애도글을 연재하기 시작했건만, 이게 뭔지, 이 시끄러운 현실이 글이 되고 있어. 역시 삶의 현장이 중요하지? 내가 발 붙이고 사는 현장 이야기 빼고 엄마랑 소통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시국이 시국이잖아. 글이 좀 종횡무진 격하게 가더라도 엄만 이해하리라 믿어.
근데 엄마! 말이 안 되는 윤석열 정권이 나를 화나게 한 것만은 아냐. 묘한 기시감이랄까 깨달음이랄까, 내 정신을 맑게 하기도 했어. 내가 경험한 종교지도자들 모습이 윤석열에게 겹쳐 보일 때 그랬어. 비상계엄 선언하는 태도가 압권이었어. 권위주의에 절은, 국민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 혼자 애국자인양 힘이 들어간 어깨와 부풀려진 언어들. 피를 토하는 심정이래, 글쎄. 민주주의 정신은 1도 모르면서, 현실 인식이 전혀 딴동네면서.
자기 비리를 덮으려고 반국가 세력 타령하는 게 다 읽히는 거야. 살면서 많이 본 그림이고 논리거든.
보수 기독교회에서 많이 본 태도 아냐?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모든 사람들을 훈계하고 '단죄'하는 목사들이 보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탄' 타령하며 사람을 몰아세우잖아. 생각이 다르고 더 똑똑한 사람이 눈엣가시지. 대신 딸랑이를 좋아하지. 지극히 작은 자들의 편에 선 예수를 말로만 전하고,실제 삶은 예수와 거리가 먼 종교인들. 교회 안에도 위계질서를 세우고 위 아래를 만들어 권력을 누리는 문화.
엄마! 이 딸이 무슨 말하고 싶은지 알지?
이 혼란의 난장판 덕에 엄마 딸은 지난 날을 또 돌아봤단 말이야.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되더라. 저 윤석열 같은 종교지도자를 하나님의 종이라 믿고 따랐잖아. 저런 리더에 익숙한 교회일수록 윤석열의 행태를 아직도 지지할지도 몰라. 권력에 복종하는 걸 겸손한 신앙이라고 대놓고 가르치겠지. 내가 예수 정신을 알아갈수록, 분기탱천하고 목소리를 낼수록, 정말 윤석열은 못 봐줄 인간이야. 권력에 중독된 폭군만 보여.
이제 내일 12월 7일 토요일은 아주 큰 집회가 예정돼 있어. 전국 규모로 시민들이 서울 시내로 결집할 거야. 자승자박 구석으로 몰린 윤석열이 재차 계엄선포니 군사적인 도발이니, 더 광기를 부릴까 걱정이야.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면 얼마나 좋을까. 예상했지만 정말 상상 그 이상으로 나쁘고도 무식한 인간이야.
난 지금 심호흡을 깊이 하며 쓰고 있어, 엄마. 오늘 오전엔 여성계 시국선언문이 나왔어. 엄마 딸도 대한민국 여성이자 여성 활동가로서 개인 이름으로 연명한 선언문이야. 윤석열이 얼마나 반여성적으로 폭주했는지 알지? 대선 공약이란 게 여성가족부를 없애는 거였잖아. 구조적 성차별은 없대 글쎄.
"정부 탄생 초기부터 성평등 민주주의 가치 파괴에 앞장서 온 윤석열은 급기야 계엄령을 선포하여 모든 국민들의 기본권을 파괴하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선언문에서 내가 뽑은 한 문장이야.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깨어 있을게. 가만히 있지 않을게.
사랑해 엄마!
[여성계 시국선언문]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내란죄 범죄자 윤석열을 여성시민의 이름으로 파면한다
- 모든 사람의 인권과 평등이 지켜지는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행동할 것이다 -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땅에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윤석열은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장갑차와 헬기의 서울 한복판 진입, 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의 폭력적인 국회 침탈, 경찰의 국회 진입 통제 및 국회의원 출입 저지, ‘정당 활동과 일체의 집회·결사 활동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의 계엄사 통제’ 등의 내용을 담은 계엄사령부 포고령 등 2024년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한국의 민주주의 가치와 헌법적 질서가 땅에 떨어지는 장면을 대한민국 국민을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이 목도하는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국민의 희생과 피땀 어린 투쟁의 역사 그 자체이다.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수많은 굴곡의 현장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 헌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목숨도 불사하였다.
헌법적 요건도 갖추지 않았고 절차도 무시한 채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은 국민들이 준엄하게 위임한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하여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수십 년 간 국민들의 힘으로 힘겹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 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내란죄를 저질러 민주주의 시계를 순식간에 원점으로 되돌리고 위헌적 권력 남용과 독재 행위를 스스로 증명한 윤석열을 우리는 더 이상 대통령으로 용납할 수 없다.
윤석열은 선거 시기부터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발표하고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정서를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함으로써, 대통령 당선 전부터 반민주적인 통치를 예견하게 하였다.
또한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지금까지 불과 2년 반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지난 수 십 년 간 조금씩 진전되어 온 대한민국의 성평등 가치·정책·추진체계를 사상 유례없는 규모와 속도로 퇴행시켰다.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 정책 용어에서 ‘여성’과 ‘성평등’ 삭제, 중앙·지방정부 성평등 추진체계 삭제·축소·격하, 여성폭력 예산 대폭 삭감 및 민간고용평등상담실 전면 폐지 등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던 대한민국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보편적 국제기준이자 가치인 성평등과 인권을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각종 정책을 퇴행시키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백래시를 앞장서서 선동하는 모습은 국제사회에도 큰 충격을 준지 오래다. 정부 탄생 초기부터 성평등 민주주의 가치 파괴에 앞장서 온 윤석열은 급기야 계엄령을 선포하여 모든 국민들의 기본권을 파괴하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부정의와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앞장서서 맞서 싸워왔다.
또한 여성인권 3 법 제정, 여성할당제 도입, 호주제 폐지 그리고 미투운동과 디지털성폭력 의제화까지 성평등한 관점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그 내용을 진전시켜 온 주체이다.
우리들은 우리 힘으로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에 의해 유린되고 짓밟히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 윤석열을 파면하고, 그가 자신이 일으킨 내란죄에 대해 엄정한 처벌을 받을 그날까지 어떠한 행동도 불사할 것이다. 나아가, 여성과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인권과 평등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물러섬 없이 투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