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잘 아는 찬송가 가사로 시작해 본다. 엄마 딸이 아주 좋아하는 노래란 거 알지? 이 시국이 이 노래를 간절히 부르게 하네. 한때는 고분고분 말도 안 되는 권력에게 '순종'하려 용쓰던 인간이 이러는 게 살짝 부끄럽다 엄마. 부끄러움 인정할게. 아니라구? 그래, 엄만 나더러 맞다, 그래 니가 맞다, 그랬지?
뭐랄까, 지난 12일간 나는 완전 각성 상태로 살고 있어 엄마. 화들짝, 정신이 다시 들었달까. 뜻 없이 무릎 꿇고 복종하며 살던 과거를 또 한번 떨쳐내는 기간이랄까, 지금 여기서 나를 다시 새롭게 하는 시간이랄까.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거기가 바로 주가 계신 곳인 걸 확인했어. 엄마 국민들이 윤석열 내란 수괴를 탄핵했어.
사랑하는 엄마!
12.3 이후 12일째고 엄마 떠난 지 46일 째야. 내란 수괴 윤석열이 때문에 밤에 제시간에 잠들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힘이 나. 정시 자고 정시 일어나던 내가 새벽까지 깨어있는데도 말이야. 탄핵 가결 됐으니 이제 다시 진짜 출발선에 섰어. 그래서 더욱 뜻 없이 무릎 꿇지 않으리 노래하게 돼.
엄마, 가결은 됐지만 점점 드러나는 내란 범죄 전말이 장난 아니야.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이면 안 되지? 보고 배운대로, 욕심에 눈이 멀어 권력에 무릎 꿇고 복종하는 인간 군상들을 보고 있어. 나치에 복종한 아이히만이 여기에도 너무 많아. 위에서 시키는 대로 복종했을 뿐이라고? 죄가 없다고? 너무 소름 끼쳐.
아무리 미친 리더가 미친 명령을 한들, 그걸 복종하고 수행하는 인간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 윤석열의 무식하고 포악하고 비열한 뜻에 동조하고 복종하는 인간들을 볼수록 가슴이 답답해. 계엄도 내란도 결국 동조하는 인간들의 공동작품이잖아. 나도 바로 그런 인간이었으니 할 말이 없더라.
"가만히 있지 않을게." 엄마 딸이 4.16 세월호 참사 이후 가슴에 새긴 한마디야. 뜻 없이 무릎 꿇는 복종의 삶 살지 않겠다, 내 의지와 내 목소리로 말하고 행동하겠다, 그렇게 떨쳐 일어났지. 세월호를 겪고도 우리 사회는 참 변하기 어렵구나 싶더라. 그럼에도 떨쳐 일어나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희망을 보았어. 속 깊이 왕당파요 독재에 길든 자들은 박근혜와 세월호로도 학습한 게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민주시민들은 들불처럼 분노로 깨어 있었어.
인간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 생물 맞아. 몸에 익은 권위주의와 가부장 문화는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또 사람이잖아. 과거의 부끄러움을 안고, 아픔을 안고, 지금 여기서 다시 살기로 작정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런 민주시민들이 깨어나 행동하며 윤석열을 탄핵했어.
사랑하는 엄마!
과거를 반복하지 말자고 지난 토요일 정서방과 나는 좀 이른 점심을 먹고 1시까지 여의도에 들어갔어. 정말 구름같이 몰려든 사람들이었어. 장엄한 집회였지. 우린 국민의 힘 당사 앞에서 열린"민주주의 회복과 윤석열 탄핵촉구 시국 기도회"에 먼저 참여했어. 기독교 연합으로 하는 탄핵 촉구 시위이자 예배였지.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 교회개혁실천연대, 새 민족교회,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윤석열 폭정 종식 그리스도인모임 등등, 그들 속에 빨간 모자를 쓴 내가 있었지. 10년 전만 해도 기독교 연대에 참 소극적이던 우리가 지금은 거기 아는 얼굴이 참 많더라? 그뿐이 아냐. 진보당 깃발, 안산비상국민행동 깃발, 416안산시민연대 깃발 등 내가 연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 격세지감이자 감사요 감격이었어.
거기 예배 순서에서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를 불렀어. 젊은이 늙은이 어느 교회 어느 교파 상관없이 모인 기독교인들이 외쳤어. "하나님의 명령이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그 시간 기독교란 이름으로 광화문에선 "탄핵 반대!" 예배가 있었으니, 도대체 믿는다는 건 뭘까 엄마?영원한 숙제 같지?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말고, 해 아래 압박 있는 곳에 함께 하자 기도했어. 약한 자는 강하게 강한 자는 바르게 되길, 추한 자는 정케 되길. 어제 우리 교회 예배에서도 간절히 노래했어.
윤석열은 지가 무슨 민주화 투사라도 되는 줄, 잠시 멈추지만 계속 "싸우겠다"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꽉 막힐 수 있을까? 계속 국민들을 광장으로 나가 싸우게 하겠다는 선전포고지 뭐야. 그러나 그 모습 역시 기독교회사에서 많이 본 거라 낯설지 않았지. 광장의 목소리는 안 듣고 홀로 거룩하고 정당하다는 태도였어. 부디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해서 이 혼란을 마무리해 주길. 그날까지 전 국민이 깨어 싸워 이기길 기도해 엄마.
사랑하는 엄마!
엄마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브런치북 연재가 이렇게 흘러올 줄은 몰랐네. 엄마 장례 후 이런 시국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맞아, 이게 지금 여기의 삶의 현실이자 진실이지 엄마. 부인할 수도 도망할 수도 없는 현실 말이야. 엄마가 없는 게 너무 아쉬워. 엄마한테 전화해서 서울의 집회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싶더라.
엄마! 새해엔 엄마 딸이 새 책을 또 시작할 계획이야. 한 해 동안 초고 완성하는 게 목표야. 그래서 엄마 애도 브런치북 연재는 오늘로 마감하려 해. 탄핵 가결을 기뻐하며, 힘차게 승리의 노래를 하며. 생각보단 좀 이른 마무리지만,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좋지 엄마? 엄마 사랑해. 엄마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