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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Dec 30. 2020

찬실이는 복도 많지, 덕분에 영화 세 편

새해 첫 '백합과 장미' 토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결정하고


2021년 새해 1월에 '백합과 장미'가 토론할 영화를 결정했다. 긴 목록에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뽑아 공지하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다. 단상을 한 줄이라도 남기고 싶은 이 마음, 지난여름의 감상이 되살아난다. 블로그에 썼던 단상을 가져와 슬쩍 얹어 본다. 덕분에 이어서 본 세 편의 영화 이야기 수다라 하겠다.

  



1.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OST 때문에라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순 없겠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아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아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없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아

사랑도 가고 청춘도 가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아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에헤 에헤야 어허라 우겨라 찬실이는 복도 많네

에헤 에헤야 어허라 우겨라 찬실이는 복도 많네

에헤 에헤야 어허라 우겨라 찬실이는 복도 많아



https://youtu.be/ZOYPs8dkHxs



영화 파일이 비싸서 미루다 결국 다운로드로 봤다. 좀 시간이 가곤 스트리밍으로도 볼 수 있지 아마? 혼자 보고 나니 자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이걸 이제야 봤다? 실화냐? 보고 토론이든 글쓰기든 하리라 벼르게 되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한 달이 더 지나는데 자주 생각나니 끄적거리는 거다.



김초희 감독께 경의를! 찬실이(강말금)에게 박수를!


지금도 내 입은 찬실이를 흥얼거리고 손은 글을 쓴다. 경기 민요 사설 방아타령 가락에 영화 이야기를 가사로 입힌 곡이다. 영화 개봉 후 몇 달이 지났던가. 주변에선 왜 같이 보자는 사람이 없었지? 내 빈약한 네트워크여! 신개념(?) 민요 가수 이희문은 알았을 거 아닌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아....."


아, 그건 예술이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 마음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콕 찔리는 듯, 뭉클했으니까. 영화가 음악으로 살아나고, 찬실이가 내 마음에 쑥! 들어와 버렸다. (참고로 나는 국악을 제법 좋아한다.)



근데 김영, 그 사람 꼭 찬실이한테 그래야 했을까? 열심히, 영화만 알고 살아온 찬실이에게 난 왜 감정 이입되나.... 찬실이의 사랑과 이별, 이라고 까지 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리다. 지난 3월 개봉 때 며칠 만에 내리는 걸 보고, 좀 서두를 걸! 땅을 치며 아쉬워했더랬다. 슬쩍 확인해 보니 누적 관객 수가 겨우 27, 842명이란다. 이건 뭐지? 그렇게나 안 봤다는 거야? 페미니즘으로 좀 도배라도 했으면 더 봤을라나?



우리 찬실이 본 사람? 찬실이 얘기할 사람, 누구 없소? 토론 목록에 넣어 두고 기다리려니 마음이 근질근질하다.


아~~ 흥얼흥얼, 찬실이는 복도 많지.  








2. 아비정전


  

영화 속에서 찬실이가 어릴 때 장국영을 좋아했다고 하길래 <아비정전>을 단숨에 찾아서 봤다. 찬실이 옆방에 사는  아비역의 장국영 귀신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 한 편 보고 찬실이랑 공감하며 수다 떨고 싶어서였다. 나도 영화 덕에 생각 좀 했다고 꼭 말해 주고 싶었던 거 같다. 찬실이가 생각해 보라며 몰아간 게 여간 많아야 말이지.


찬실이가 사는 집에 장국영 귀신이 살며 수시로 출몰한다는 설정, 이상한데 재미있었다. 배우 김영민은 영화 <아비정전> 속 장국영과 외모 싱크로율 99%쯤 되겠다. 속옷 바람으로 그 유명한 맘보를 추는 장국영을 기억하는 사람 많을 거다. 그 허무하고도 강렬한 청춘의 느낌. 도무지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잔상이 살아났다.


찬실이 앞에 불쑥 나타나 그가 던지던 질문의 무게가 장난 아니었다. 영화란 게, 가벼운 유머와 깊은 사색으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그런 느낌의 캐릭터였다. 누구라도 스스로에게 물었을 법한 질문들. 아니 솔직하자. 내가 내게 콕콕 찌르며 물었던 질문이었다고 시인하자.


 "영화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겠어요?"

 "자신이 정말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 봐요."


아..... 영화?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느냐고?

영화 언저리에서 일한 적도 없으면서, 나는 아비고 나는 찬실이고, 이건 뭐냔 말이다.


https://youtu.be/atUt0XLNG6g


<아비정전>은 하도 눈에 익고 여기저기서 읽어서 내가 봤다는 착각으로 살았구나. 영화를 보며 그걸 바로 확인해 버렸다. 영화가 나온 30년 전 그 시절, 나는 영화를 '좇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다. 아비의 이야기, 청춘의 이야기, 그 속엔 내 이야기도 분명 보였다. 그런데 장국영은 내가 꼭 알고 싶지 않았던 그 심리는 뭐였을까?


2003년 장국영이 사망했을 때, 세상이 그를 추모하고, 매스컴에 그가 날마다 보였을 때, 나는 그가 궁금해졌을까? 궁금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살았더라니깐? 몇 년 전 <장국영이 죽었다>라는 단편 소설을 읽었을 때는? 아~~ 그땐 쪼금 달랐더라고? 그의 영화를 볼 기회였음에도 '꿋꿋하게' 안 보고 살아왔다,라고 또 고백한다.


아니, 그 소설이 정말 장국영을 생각하게 했더랬다. 그걸 읽고 글도 한 편 썼던 게 기억나니까. 나는 <아비정전>을 보고서야 장국영이 진심 궁금해졌다는 소릴 이다지도 길게 하고 있다. 장국영을 마구 찾아보게 됐다.


찬실이랑 같이 장국영이 내 마음에 쑥 들어오더란 말이다. 찬실이 덕분에, 찬실이 때문에, 찬실이랑 같이. 사람의 마음이란 도대체 어떨 때 움직이고 어떨 때 요지부동일까? 차돌멩이처럼 도무지 궁금하지 않던 세계가 어느 날 아침 파도처럼 나를 덮치고 밀어갈 때, 화산처럼 나를 녹여버리고 궁금해하게 할 때, 그건 또 뭐냔 말이다.


에라~~ 이, 이건 모두 찬실이 때문이라고 하자.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아.







3. 테넷



찬실이와 함께 보게 된 또 한 편의 영화가 <테넷>이다. 나 혼자서는 좀처럼 선택하지 않을 장르를 돈 내고 영화관에 가서 봤다고 자랑질하는 거다 이번엔.


김영과 찬실이 영화 이야기를 하는 대목 때문이었을 거다. 마음에 남았으니까. 장국영을 좋아했다는 찬실에게 영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찬실이는 눈이 똥그래질 정도로 놀라지.


"어떻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좋아할 수 있죠?"

"놀란 좋아한다는 사람하고 무슨 대화가 될까...."


뭐 이쯤 되는 대사였다. 찬실에게 영은 말한다. 그건 취향일 뿐이라고, 영화로 자기를 다 판단하지 말라 한다. 그래, 취향. 영화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고 말고.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바로 궁금해졌다. 영화를 한 번 봐야겠군. 크리스토퍼 놀란이라...... 뒤져 보니 내가 이 사람 영화 전혀 안 본 건 아니더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이 8월 26일 개봉하더니 안산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내게 낯선 장르요 감독이니 확 질러볼 기회가 온 거였다. 코로나 시국 조조영화관, 헉! 한둘이 보는 썰렁한 상영관을 상상하며 들어갔으니, 역시 나는 전혀 번지수를 모르고 덤빈 거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이렇게 관객들이 많았구나. 나를 놀라게 한 건 영화관을 채운 머리수만은 아니었다. 첨부터 벌써 내가 영화를 제대로 못 따라갈 거라는 묵직한 예감이 들어 버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하는 게 맞겠다. 잘 못 따라가는데, 눈은 보고 귀는 듣는데, 그렇다고 졸리는 영화는 절대! 아니었다. 졸 틈이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라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나서 기분이 살짝 나쁘려 했다. 무슨 상관이냐고? 난들 알겠나. 단지 눈과 귀는 있으되, 나는 영화를 그야말로 '구경만' 했다는 변명이 하고 싶을 뿐이다. 옛날 표현에 왜 '영화 구경 간다'는 말이 있는지 갑자기 확! 이해되고 말았다.


영화 내용은 40% 정도나마 이해했을까? 구경만 했다. 그런데 현재까지 관객 수를 찾아보니, 물경, 1,145,038명이나 됐다. 영화의 세계란...... 이렇게 영화 세 편을- 무슨 상관이 있는진 묻지 말라! - 내 멋대로 이어 보는 기회였다. 예술영화 드라마에 홍콩 영화에 액션 판타지 SF 블록버스터.... 장르도 정확힌 잘 모르겠다, 쩝!


안 먹어 본 낯선 음식은 잘 즐기는 난데. 영화의 세계는 참 어렵도다. 나를 약 올린다고 해야 하나. 하기야 책도 낯선 분야 읽기 쉬운 건 아니었음을 이실직고하자. 책 편식 심하게 하고 살았었잖아. 인정! 덕분에 세계가 조금 더 궁금해지고 이 세상이 내게 미지의 세계로 더 많이 확인됐다. 내 앞에 있는 세상이 궁금해졌으니, 건진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지? 엄청 기분 좋아지는 건 뭘까?


<테넷>은 기회 봐서 한 번 더 땡겨 봐? 두 번째 보면 어떨까? 여전히 궁금한데 또 여전히 잘 모르겠다며, 구경만 하곤 투덜거릴 테지. 뭐, 놀란 감독이니 내가 놀란 게 별 거 아니잖아? 푸훗! 놀란다잖아. 내가 모르는 줄도 모르고 사는 세계는 우주만큼 넓고 넓으니까. 놀란 가슴으로 그거 하나 더 놀란다고 또 뭐 놀랄 일이겠나. 크리스토퍼 놀란, 놀런, 하여간 기억하겠어......


어쩌고 저쩌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아.


에헤 에헤야 어허야 화숙이는 복도 많아.....


보너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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