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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Jan 12. 2021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2050 모녀 영화 토론,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작년 개봉 때 <밤쉘>을 모녀 데이트로 보고 토론하고 기록했다. 퇴고해 보니, 과연 폭탄 영화에 폭탄 토론이로다. 세상은 어떻게 변하는지, 어떻게 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다시 본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함께 보고 이야기해야 하리. 딸만이 아니라 손녀의 손녀도 보게 해야 하리. 최선으로 줄여서 올린다. (이게 줄인 거냐고?ㅋㅋㅋㅋ 폭탄 나온 김에, 전에 나온 같은 제목 다른 영화 <밤쉘>도 끝에서 강추한다!)



딸: 아~ 싸울 수 있다는 게 부럽다. 그것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들이 저러는 게 진짜 고무적이야.

엄마: 맞아.

딸: 어릴 때부터 자기주장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있어야 가능하지. 휴~~

엄마: 좋은 지적이다. 그럼 너는 싸우는 여자들이 젤 감동이었단 말이네?

딸: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엄마: 누구한테 가장 감정 이입됐어?

딸: 케일라. 내 또래라서 더 그런 듯. 배우 마고 로비가 90년생이래. 잘 싸우지 못하는 게 감정 이입돼. 처음에는 로저 한 번 만나 봐. 신나서 갔는데. 치마 한 번 올려 봐. 망설이다 살짝 올렸더니, 결국 더 올리래. 하지도, 안 하지도 못하는 상황. 내가 심장이 다 졸더라. 표정이랑 연기 정말 와 닿았어. 밉보이면 단순히 잘리는 것만 아니고, 직업 구하기도 쉽지 않을 거 같고. 야망이 있는 젊은 청년으로서 케일라도 뭔가 쌓고 싶어서 폭스 왔는데, 그렇게 된다는 게. 여자가 뭘 의도해서 몸을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드는 구조라는 게. 보는데 미치는 줄 알았어.

엄마: 맞아. 리얼, 리얼이지. 근데 의도적으로 까만 원피스 안에 흰 팬티 입힌 거 같지?

딸: 그렇다고 봐야지. 보통은 까만 원피스 안에 까만 팬티나 속바지 입을 가능성이 높지. 걷었을 때 살짝 팬티 보일 때 시각 효과 노린 거겠지. 뚱뚱한 늙은이가 그 앞에서 헐떡거리고 앉은 게 진짜 보고 있으려니 괴롭더라. 고추를 걷어차고 나가버려야 하는데. 큰아버지나 작은할아버지 뻘 아닐까?



엄마: 진짜. 근데 딸, 너는 살다가 그런 성적인 희롱당한 경우 없어?

딸: 나는 너무 온실인가? 아직 직접적으로는 그런 일까진 없지. 알바도 다행히 그런 환경은 아니었고. 상담센터 알바 때, 젊은 여자 애니까 좀 더 웃고 친절하라는 압박은 많이 받았지. 나는 충분히 친절한데 얼마나 더 해? 광대가 아플 정도로 항상 웃고 있어야 해? 압박이었어.

엄마: 지금 직장에서는 어떤 성차별 경험해?

딸: 여자니까 민원창구에 앉혀 놓고 웃고 서비스하라는 게 젤 크지. 같이 신입이라도 남자는 다 민원창구 가는 거 아냐. 나는 민원창구에 갈 때 발령 동기 남자는 구청에 간 거 알아. 여자는 무조건 아양 떨고 친절하길 요구해. 나는 자기 할 일 하는데도 괜히 뻣뻣하다는 소리 듣지. 난 죽어도 못하겠더라고. 그렇게 좋으면 당신들이 아양 떨라고! 여자는 깔끔하고 예쁘게 입고 화장도 하고 출근하잖아. 남자는 안 그래도 용인되는데. 난 그것도 볼수록 화나.





엄마: 이 영화에서 네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게 뭐야?

딸: 그레천의 한 방이 좋았어. 싸울 준비 하며 녹음을 다 해 뒀잖아. 정말 싸움을 한다면, 이렇게 해 주세요, 상대의 선의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결국 싸움이지. 머리 써야지. 폭로도 중요한데 이기는 싸움을 하는 게 중요한데. 저렇게 해야겠구나. 전략을 배웠어. 로저가 온갖 거짓말을 하게 뒀다가 결국 녹음파일을 공개했잖아. 결정적 한 방이었어. 빡치지만 내 일은 겁나 잘해야 해. 일로 무시당하지 않아야 해. 싸울 때는 전략적으로 결국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거.

엄마: 맞아. 나도 진짜 통쾌하더라. 징징대는 게 아니라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장수.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였고, 이기지 못하면 어떤 수모를 당할지 훤히 내다볼 수 있었으니까. 그냥 상대의 호의와 선심에 호소하는 읍소 따위 없어 좋더라.

딸: 그치. 우리나라 성범죄 다루는 꼴 봐. 뻑 하면 역고소하잖아. 가해자들도 아는 거야. 이거 이기지 못하면 지들 꼴이 어떻게 되는지. 그러니까 온갖 전술 전략을 동원하는 거지.



엄마: 그럼, 영화 속 커플 이야기 좀 해보자. 몇 커플 나왔지?

딸: 매긴 부부랑 로저 부부. 솔직히 로저 부인은 너무 바보 같았어. 눈에 들어오더라. 바보고 싶어서 그러겠냐만, 여자가 선하기만 하고 남자에게 올인, 남자 편이 돼 평생 살면 얼마나 멍청해지는지 보여주더라. 내가 그래서 착하다는 말에 경끼 하잖아. 너무 싫어. 누구 좋으라고. 어렸을 때 착하다는 소리 겁나 많이 들었어.

엄마: 엄빠는 착하다는 소리 안 한 거 같은데?

딸: 맞아. 집에서는 안 들었지. 착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지. 밖에 나가면 그랬어. 주위에서 자꾸 착하다 하면 내가 착해야 할 거 같은 거야. 아, 내가 착한 사람이지. 그러게 돼. 생긴 게 착하게 보여서 그런지 몰라도 참 많이 들었어. 자꾸 착하려고 하더라고.

엄마: 그럼 착한 로저 부인한테 해 주고 싶은 말은?

딸: 정신 차려요. 당신의 삶을 사시오! 그 말 밖에 없다. 안희정 부인도 생각나더라. 그 와중에도 남편 손에 뽀뽀해주고 존 잡아주며 신뢰와 지지의 눈빛을 보내는데. 와~~ 저팔계같이 생긴 로저를, 가부장제에 전 그 남자를 떠받들고 사는 모습 끔찍한데. 그 외의 삶은 생각해 본 적도 없을 테니까 끝까지, 일관되게 바보같이 사는 거 아냐.



엄마: 와~~ 목사 부인들이 들여다보면 로저 부인 같지 않을까?

딸: 그럴 가능성 높지. 목사들이 성도들을 그루밍하는 동안 오직 남편을 주의 종이라 떠받들고 기도하고 신뢰를 보여주고 뽀뽀하고 우쭈쭈하고 편들고. 자기 남편은 그런 사람 아닌데 여자들이 문제라고 해주고. 시험받은 거라고. 그게 너무 무서운 게, 그런 일 일어났을 때, 여자로서 당한 여자에게 감정이입 안 되고, 자동적으로 남편의 아내로서만, 자기 남편은 그럴 사람 아니라는 쪽으로 감정이 움직인다는 게 너무 끔찍해. 이건 세뇌된 거야, 명백해.

엄마: 맞아. <미스 비헤이비어>에 밥 호프의 부인도 생각나더라. 자기 남편 하는 짓 맘에 안 들지만, 확실히 목소리 내고 싸운다거나 그러지 못하는 중년 여자. 남편 힘들어하면 결국 위로하고 우쭈쭈 하지. 문제를 인식해도 살아온 습속을 못 바꾸지. 남자가 너무 안 바뀌니까 여자가 미리 포기하고 다시 해오던 대로. 그럼 너그 엄마 아빠는 어떤데?

딸: 로저 부부 같은 관계면 내가 이 영화를 엄마랑 볼 리가 없고 이런 토론 할 리가 없지. 저 바보 같은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라면, 아~~ 생각만 해도 서글프다.

엄마: 그래도 영화 같이 보고 토론하며 딸이 엄마를 손잡고 코치하지 않을까?

딸: 그 짓을 한들! 엄마들이 말을 바로 알아들어 주냔 말이지. 난 착한 딸이 아니라 그 짓 안 했을 거 같아. 친구들 보면 그래. 엄마 때문에 다들 속이 썩어.

엄마: 그래도, 아 저건 완전 우리 엄마네, 우리 아빠네, 그런 장면은 없디? 가르쳐 줘.

딸: 로저 부부한텐 없어!



엄마: 그럼 매긴 부부 이야기도 해줘. 그 사람들 관계는 어떻게 봤어?

딸: 아~~ 누군가는 짚신을 찾아서 저렇게 잘 살고 있구나~ㅋㅋㅋ 좋아 보이는 건, 비전형적인 커플인데 잘 살고 있다는 거야. 남자를 위해 여자가 커리어 포기하는 건 너무 많이 보잖아. 남자가 대단한 능력자도 아닌데 무조건 남자를 위해 여자가 희생하는 걸 당연히 여기지. 그런데 매긴 부부는 애는 셋에 부인이 사회에서 더 잘 나가고 남편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데 부인보다 직급도 더 낮고 돈도 덜 벌어. 부인이 출장 가는 일 많아서 애도 남편이 더 많이 봐야 하고. 싸움을 하는 여자를 뒤에서 묵묵히 내조하는 남자. 이거 현실에서 너무 없는 그림이잖아. “내가 우리 관계 망쳐놨어?” 매긴이 물었을 때, 아직은, 남편이 쿨하게 답했잖아. <서프러제트>와 <거룩한 분노>에서 남편들 봐. 밖에서 싸우는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무라고 말렸잖아. 그런데 매긴 남편은 아내를 지지하고 옛날에 로저한테 당한 이야기 듣고도 아내를 탓하거나 안 했어. 어디서 그런 좋은 짝을 만나는 걸까? 매긴한테 좀 물어봐야겠어. ㅋㅋㅋㅋㅋ

엄마: 맞아. 그런 남녀관계 참 보기 좋지. 어딘가 짝이 숨어 있을 껴.



딸: 도대체 현실에선 소통해 보려면 점점 싸움만 되는 벽이 진짜 높아 보여. 그래서 아예 대화 안 하고 폐쇄적이 되기 쉬운 남녀관계 같아. "난 너하고 싸우기 싫어." 이런 표현, 난 너무 싫더라. 주변에 보면, 연애하면서도, 싸우기 싫다면서, 그걸 무슨 대단한 의로 삼아. 사실은 각자 단절이 되는 길일 텐데. 닥치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이걸 그렇게 포장한 건 아닌지. 말이 좋아서 싸우기 싫어, 지. 실은 깊이 대화하지 않으니 문제가 뭔지 직면하려 하지 않지. 부딪치는 걸 피하고 벽을 치고. 아냐? 집에서 조차 펜스 룰 같은 거 하더라.

엄마: 좋은 지적이다. 엄마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잖아. 너네 대학생 될 때까지 엄빠 싸우는 거 못 봤다 그랬잖아. 안 싸우는 게 화목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알고 보니 어떤 벽을 못 넘은 거 맞더란 말이지.


딸: 남자들은 지들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여자들 일은 하찮게 취급하잖아. 매긴 남편은 그런 남자 아닌 거지. 이 구조에 여자들이 균열을 일으키려 하고 하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남자들은 욕하거나 말리잖아. 작은 움직임이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하는 건데. 여자들이 하는 그런 싸움을 남편이 지지하는 게 좋았어. 그런데 뭐냐. 그렇게 쓸데 있는 일 하시는 분들이 화장실에 몰카나 설치하시고 참 나! 마치 그래도 정상이고 멀쩡한 세상인 것처럼 살잖아. 말이 되냐? 이래서 우리 엄빠처럼 남자와 여자가 같이 페미니즘을 하고 토론하면서 소통 문화를 만들어가야 해.




좌로부터: 마고 로비(케일라) 니콜 키드먼(그레천 칼슨) 샤를리즈 테론(매긴 켈리)



엄마: 옳소! 좋아! 아까 앞에서 이 영화에서 니가 부러운 게 뭐라 그랬지?

딸: 미국 여자들이 드센 거. 여자들이 강력하게 싸울 수 있다는 거. 말하고 자기주장하고 표현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와 다른 지점이라고 봐. 사회 전반적으로 자기표현하고 자기주장하는 게 당연시되잖아. 내가 출장 이야기했잖아. 사람들 발표 더럽게 못하고 자기주장하기 두려워한다고. 남자 여자 다 그래. 연대가 되어야 하는 건데 두려워서 못하지. 목소리 만드는 과정이 힘들어 우리는. 세대 간 단절도 너무 심하고.

엄마: 매긴이랑 그레천이 자기 분야에서 이미 성공한 사람들인데 커리어 불이익 각오하고 목소리 냈잖아. 어지간해서는 목소리 안 내고 못 내는 우리 상황이지. 죽음이니까.

딸: 교수들한테서도 느꼈거든. 페미니즘도 민주주의도 하기 힘든 사람들로 보였어. 체제 순응 교육하는 나라잖아. 구조적으로 가방끈이 길수록 체제에 적응하게 되는 문화야. 거스르는 소리를 못 내잖아. 우리 세대가 목소리 내는 건 중요한데, 내가 볼 때, 자리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 내줘야 해. 젊은 입장에서 볼 때, 이게 너무 아쉬워.

엄마: 그렇지. 서지현 검사가 그 점에서 굉장한 용기지. 서지현 김지은 이분들도 알고 보면 젊어. 더 위에서 나올 수 있을 텐데 조용한 거 봐. 더 많을 텐데. 그분들이 당한 거 같은 피해를 누가 감수할 수 있겠어.

딸: 목소리를 내면 불이익이 너무 크니까. 완전 죽음이지. 조심하는 거지.



엄마: 매긴 대사에서, 10년 전 성추행을 드러낼 거냐 동료가 물었을 때, 자기도 모르겠다면서 한 말 생각나? 자기가 피해자로 낙인찍히는 건 싫다고 했던가? 무슨 말이지?

딸: 여성들이 투쟁하는 이유는 피해자로서, 나 이런 고통받았다는 걸 드러내는 건 맞는데, 그것만이 아니라는 거지. 단지 피해자로 규정될 때 여자는 약하고 사소하고 징징 짜는 존재로 취급되니까. 그게 문제라는 고발이지. 자기 피해를 말할 때, 할 말을 하는 주체인데, 피해자로만 낙인찍히고 갇혀버리는, 그런 게 싫다고 고발하는 말 같아.

엄마: 폭스뉴스 이게 미국 헐리우드 미투를 촉발시킨 사건이랬지? 하비 와인스타인보다 먼저 드러난 사건이지?

딸: 폭스의 로저는 2016년에 고소당했고 하비 와인스타인은 2017년에 폭로되고 2018년에 고소당했지. 와인스타인은 23년형 받았어.

엄마: 로저 에인스는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됐지?

딸: 그레천과 합의했대. 220억 원 지불했다네. 어마어마하지. 공식 사과도 했고. 2017년 5월 18년 혈우병으로 악화된 격막 하혈종으로 사망했대. 1940년생이니까 78세로 끝!



엄마: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점 좀 더 말해 주면?

딸: 케일라 레즈비언 친구 제스가 인상에 남았어. 여성들 사이에서도 목소리가 다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 ‘팀 로저’나 로저 부인은 다른 게 보이는데 페미니스트들 사이에도 처한 상황이 다르고 목소리 낼 수 없는 사람 있을 수 있다는 거지. 폭스에서 레즈비언으로서 일하면서 목소리 없이 사는 제스를 누가 비난할 수 있냐는 거야.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운동하면서 어떤 통일된 여성 집단을 상정하고 똑같은 목소리만 나오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거지. 처음에 케일라가 로저 방에 갔다 온 뒤에 털어놓으려 할 때 제스가 자기랑은 엮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잖아.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그런 거 같아. 카일라 위험하다는 건 알기에 계속 지켜보잖아. 마음은 가는데 자기가 드러나게 도와줘서 좋은 쪽으로 가는 건 아닌 걸 알지. 자기 레즈비언인 게 드러난다거나 신변에 위협되니까. 민주당 힐러리를 지지하지만 폭스에서는 비밀, 성 정체성도 비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잖아.



엄마: 캬~~ 잘 짚어 줬다. 좋아 좋아. 사람들의 여러 결을 보여주는 캐릭터네? 그럼 케일라가 빌 전화기로 그 친구한테 전화했잖아. 그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더라?

딸: 음.... 처음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해며 케일라가 말했는데 자기 레즈비언이라는 게 드러날까 봐 제스는 조심하잖아. 카일라가 통화할 때도 빌 전화기로 해서 제스를 보호해주려 한 거 같아. 제스한텐 전화기에 빌이라고 입력했다고 둘러댔지만, 빌이랑 그 친구는 업무관계잖아. 케일라랑 제스가 엮인 흔적 없게 되는 거지.

엄마: 와~~ 그렇구나. 그 입장 안 되면 다 이해 못하는 거 인정해야겠어. 제스 책상에 여자 친구랑 찍은 사진을 있었잖아. 카일라가 그걸 서랍에 감추게 했잖아. 마지막에 떠나기 전에 케일라가 그 사진을 다시 꺼내 책상에 놓아줬는데 제스는 다시 서랍에 집어넣더라? 그건 무슨 의미로 봤어?



좌로부터: 케이트 맥키넌(케일라 직장 친구 제스) 마크 듀플레스(매기 남편 더글러스) 코니 브리튼(로저 부인 베스)



딸: 영화 내내 케일라는 딱 붙은 원피스 입다가 마지막에 폭스를 떠나는 장면에서 바지에 편한 티셔츠 복장이었어. 인상에 강하게 남더라. 그게 폭스 문화에도, 케일라 내면에도 변화가 있었다는 뜻 같아. 치마를 입고 대상화되고 성 착취당했는데 이젠 편하게 입고 일할 수 있게 됐다는 뜻 같더라. 마찬가지로 이젠 그렇게 제스가 자기 성 정체성 숨길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케일라가 사진을 꺼내 준 거 같아. 그런데 멀어지는 케일라를 지켜보며 제스는 다시 사진을 집어넣었어. 같은 여성이라도 케일라가 그렇게 느낀다 해도, 성소수자가 살기에는 여전히 어렵게 느낀다는 걸 보여주는 거 같아. 지금 로저가 쫓겨나서 여성들은 좀 숨통 트였을 수도 있겠지만 소수자에겐 여전히 숨쉬기 좋은 세상은 아니라는 뜻으로 봤어. 또는 제스가 케일라를 레즈비언으로서 마음에 두고 있다는 암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어.

엄마: 와~~ 그렇구나. 레즈 여성 제스 분량이 제법 비중 있길래 뭔가 의미 있는 역할이란 생각을 하며 봤어. 뭐지? 자꾸 궁금했는데, 아~~~ 이제 이해가 많이 되네.



딸: 여성이면 다 같은 입장 아니라는 거지. 여성 중에도 기득권이 있고 소수자가 있다는 거 보여주는 거야. 매긴 보고 팀에서 기득권 맞다고 길이 그랬잖아. 매긴은 아니라고 했지. 사회 전체에서는 백인 여성에다 성공한 앵커면 기득권일 수 있어. 10년 전의 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할 힘도 기득권이라서 가능했던 점도 있다고 봐. 그러나 성별 계급구조에서는 그런 백인 성공한 여성도 남성 권력에겐 착취당하는 약자일 수 있다는 거야. 마찬가지로 같은 백인 여성이라도 레즈비언인 경우는 백인이지만 여성 사이에서 또 소수자성을 갖지. 카일라는 히스페닉이지만 오히려 주류 보수 기독교인으로 정체성을 가지려 애쓰는 거 봐. 결국 입장이라는 건 아주 상대적이고 복합적이라는 걸 이해하고 정황과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고 봐.

엄마: 맞아. 매긴이 한 발언이 문제 되잖아. “산타는 항상 백인이다. 유색인일 수 없다.” 그런 얘기 있었지. 폭스 같은 보수 매체 앵커 치고는 굉장히 페미니스트 같아 보이고, 트럼프 까니까 진보 같은데, 또 다른 면에서는 매긴이 인종차별주의자로 욕먹은 사례였어. 이건 뭐지?



딸: 그것도 매긴이 결국 백인 기득권이라는 말이 되지. 산타라는 게 신화 수업에서 들은 건데, 긍정적인 건 백인으로 만들고 안 좋은 건 흑인으로 만들어 내는 사례야. 산타가 백인이라야 당연하고, 산타 같은 훌륭한 사람을 흑인으로 할 수 없다는 소리는, 결국 백인 기득권의 생각을 대변하는 말이지. 복잡해.

엄마: 공감 공감. 자유주의 페미니즘 때 봐.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비롯해서 중산층 좀 사는 여성들이 참정권 투쟁 주도하고 목소리를 냈잖아. 백인 중산층 여성들이 잘 사는데 무슨 욕심이 그래 많냐? 한쪽에선 그런 공격도 했어. 지금 시대에 매긴 같은 사람이 미투를 했잖아. 여성문제와 정치 사회적 권력관계에 대해 뭔가 보여주는 거 없나?

딸: 있지. 어쩔 수 없어. 여성 목소리를 사실은 그들이 내줘야 한다고 봐. 그나마 백인 중산층 정도 되니까 파장이 있지 흑인 여성이 해봐야 사회적으로 폭발력도 약하고 파장도 길지 않았을 건 두말하면 잔소리지. 다양한 계층 여성이 모두 다 목소리 내는 게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거야. 목소리 내던 사람도 성공하면 다시 나머지 대중 여성들과 자기를 동일시하기 어렵게 된다는 게 슬픈 역설이지.



엄마: 그치. 복잡한 지점이야. 그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여성문제에도 해당된다고 봐도 될까?

딸: 결국 모든 여성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건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여성들은 엄연히 있다. 사실은 다수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침묵 속에 살고 있다고 봐야 해. 조금이라도 힘 있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더 내줘야 한다고 봐. 결국 파장을 일으켰고 미투 일어나게 했잖아.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지.

엄마: 엄마도 페미니즘 할수록 이게 결이 다양하다는 걸 봐. 동시에 결국 조금이라도 힘을 가진 사람이 목소리를 더 내고 행동을 더 하는 게 순리랄까? 억지로 다 똑같이 할 순 없잖아. 어때? 그럼 네가 살아갈 미래도 크게 달라지겠어? 너무 비관적인가? 이런 점에 대해 딸도 자기 관점 있겠지?

딸: 나는 사회 속에선 기득권이라 할 수 있겠지. 동시에 약자의 삶이 되겠지. 여성의 삶의 이중성 양면성을 처절하게 인정해. 가부장제를 대상으로 싸울 땐 약자성이 있다. 그런데 목소리를 낼 때 마이크를 가진 사람은 또 누군가에겐 기득권으로 비칠 수 있고, 사실 기득권일 수도 있잖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다수 대중은 언제나 존재하니까. 그걸 인정하고 연대할 수 있는 거지, 자긴 기득권 아니라고 부정하면 안 된다고 봐. 여성이라고 다 같지 않고 그 상황과 입장, 삶의 맥락은 다양한 결일 수 있다는 걸 항상 인정해야 한다. 난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엄마: 캬~~ 그럼 그레천하고 매긴은 보수 매체 폭스에선 엄청 페미니스트 취급받잖아. 그러나 자기 당대에 페미니스트라고 강하게 드러내진 못했어. 매긴은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라 그랬던가? 그런 점은 어떻게 봤어?

딸: 미국 사회의 보수 기독교 문화에 반페미니즘 정서가 얼마나 강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어. 페미니스트라 하면 우리나라도 메갈 메갈하고 낙인용으로 쓰잖아. 그런 거랑 비슷한 거지. 폭스 같은 꼴보 직장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드러내면 당할 불이익을 뻔히 아니까 그러는 거지.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목소리를 얻고 커리어를 잃는다”는 말이 있지. 인어공주로 목소리를 잃고 살면 공격받지 않는데 목소리를 내면 캭! 죽음이지. 영화에선 매긴 비중이 크게 나오지만, 실제에선 그레천이 대단한 역할 한 건 분명해 보여. 미투의 물꼬를 맨 먼저 텄잖아.



엄마: 맞아. 매긴은 폭스 남아 있다가 결국 옮겼는데 그 후엔 썩 잘 풀리진 않은 거 같아. 사실 그레천을 좀 더 주목해 봐야 해. 조용해 보이고 회사 떠나며 미투했지만 대단한 인물 맞아. 그레천 칼슨 대단한 책도 냈어.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국내 번역됐어. 대단해. 그레천 비출 때 계속 아이들 보여줬잖아. 실력 있고 자기 삶 잘 챙기면서도 목소리 내는 성공한 여성 맞아. 그 딸의 세대에는 엄마 때완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연결 같더라. 페미니즘이란 게 혼자만 하면 뭔 재민겨? 딸 세대는 엄마 세대보다 더 나아져야 맛이잖아?

딸: 맞아. 대사는 별로 없었지만 나도 그레천 딸이 눈에 들어왔어. 저 아인 모녀 페미니스트로 자라겠구나, 그런 생각? 우리 모녀처럼 말이지. 모녀가 페미니즘을 하는 건 뭐랄까. 엄마 그레천의 각성과 투쟁이 있었기에 딸에겐 너무 좋은 길을 보여 준 거지. 엄마도 그렇잖아. 할머니랑은 공유할 수 없는 게 많아 슬프다가도 나랑 이러고 사니까 좋잖아? 최강 모녀 페미! 내 다음 세대에는 더 나을 거라고 봐.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할 일을 할 거니까......



<밤쉘>(알렉산드라 딘 감독, 미국,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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