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직장인 아들과 50대 엄마가 페미니즘 영화를 보고 토론했다. 기록 그대로 올려 본다.
나: 아들이 이런 페미니즘 영화 몇 편이나 봤더라?
아들: 몇 개 봤지. <On the Basis of Sex(세상을 바꾼 변호인)>, <RBG>, <서프러제트>, 이 정도 생각나네.
나: 우와~~. 그런데 <거룩한 분노>는 안 봤던가? 스위스 여성 참정권 투쟁 이야기.
아들: 엄마랑 봤잖아. 그거 생각나네. 자기 보지가 호랑이같이 생겼다던 거.
나: 꺄~~ 그거 기억하네? 엄마가 바로 호랑이잖아.
아들: 엄마가 호랑이 띠지.
나: 응. 엄마 그 영화 볼 때 아빠한테 그랬잖아. 엄마 보지가 바로 호랑이다 으흥~~ 까불지 마! 그러고 보니 아들이 호랑이를 통과해서 이 세상에 나온 거네?
아들: 킥킥킥. 그렇게 되는 거네?
나: 그럼 그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 꼽으라면? (<82년생 김지영>도 봤구먼. 더 있을 텐데?)
아들: On the Basis of Sex.
나: 오~ 그렇구나. 우리말론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었지? 그게 어떻게 재미있었어?
아들: 여성 운동 지지하는 남편도 아내도 다 성공하는 이야기라 좋았어. 루스 때문에 마티가 자기 꿈을 접었다거나 마티 때문에 루스가 그랬다거나 그런 거 없었잖아.
나: 아하! 그런 점이 중요했구나. (여자들은 숱하게 남편 꿈 위해 자기 꿈 접는단다.) 좋아, 그럼 이번 영화는 그런 맥락에서 좀 밀린다는 얘긴가?
아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남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안 보였어.
나: 오호, 역시 감상 포인트가 다르구나. 그럼 5점 만점에 몇 점?
아들: 3.5점. 남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별로 주는 게 없다. 남성 모델이 안티 테제로만 그려져서 아쉽더라. 그래서 점수 뺐어.
나: 우와~ 반면교사 남자들 뿐이었네 그러고 보니. 샐리랑 사는 남자에겐 별 감정이입 안 됐어?
아들: 그렇잖아. 애 봐주고, 밥하는 역할 말고 직업적으로 어떤 사람인지가 안 보였어.
나: 맞네.(남자 전업주부는 불가? 여자는 그 짓 평생 한단다.) 그럼 샐리 학교 면접관 남자들 있잖아. 둘이서 10분의 7 썼다가 긋고 9로 고치는 장면. 무슨 뜻이야? 잘 모르겠더라.
아들: 여자 외모 평가하는 거 아니었을까?
나: 아, 그럴 수 있겠네. 면접 질문이 뭐였더라?
아들: 영국에 왜 혁명이 없었냐고 물었지. 여주가 왜 혁명이 실패했냐고 물어야 한다 그랬지.
나: 그게 시작 장면이잖아. 무슨 뜻있는 거 같지 않아? 혁명 실패는 무슨 말이야?
아들: 혁명이 없었던 게 아니라 실패했다. 왜 실패했나. 그 질문을 던지는 거 같더라. 나도 혁명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엄청난 피를 흘리지만 문제 해결은 안 되는 혁명. 크롬웰 때 유일한 공화정이었는데. 한 세대밖에 안 갔지. 한나 아렌트도 그랬어. 혁명은 단지 폭정을 뒤집어엎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유를 체제에 성공적으로 반영해야 성공적인 혁명이라 그랬어. 거기까지 못 가니 실패라는 소리 같았어.
나: 자, 그럼 <미스비헤이비어>에서 어떤 게 가장 인상적이었어?
아들: 사람은 다 투사 싫어하고 소시민적인 행복 좋아한다고 봐. 혁명으로 뭘 바꿔 보려면 너무 힘드니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제도권에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잘 갈 수 있게 내 몫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 들었어.
나: 어떻게? 그게 무슨 말이야?
아들: 혜화에 모여 데모하는 사람들과 엄마처럼 발을 땅에 붙이고 사랑하고 살면서 운동하는 사람들 다르잖아. 나라도 내 가까운 여자가 그런 불합리한 일 겪게 하고 혁명의 피를 흘리게 하는 원인은 되지 말자 이 말이지. 세상을 통째로 바꾸는 건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잖아.
나: 아, 너의 진심과 선의 알겠어. 좋은데, 여자들이 왜 데모할까? 혜화 나가는 사람들과 사랑하고 살림하고 직장 다니는 여자들이 전혀 다른 존재일까?
아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게 해결 안 되면 나가서 데모하겠지. 일상의 불합리를 같이 풀어나가도록 내가 할 역할을 해야겠구나 이거지.
나: 오~~ 진짜 선의의 남자야. 그런데 너만 잘하면 될까? 가장 가까운 아내나 딸이, 그리고 엄마가 밖에 나가면 다 불합리하게 차별받는 구조라면 어쩌지?
아들: 그때 또 풀어가야지. 주인공도 겪었잖아. 토론에 남자들이 제대로 끼워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나는 그런 짓 하진 말자 이 말이야.
나: 그래. 바로,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발언권을 안 주는구나, 여자들은 느끼고 살아. 어쩌지?
아들: 사소해 보이는 행동이라도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버릴 수 있다. 그걸 유념하자. 이 말이야. 안희정도 그랬잖아. 밖에서는 큰일을 하는 거 같은데 사적 영역에서는 그렇지 못했지. 나는 공적인 운동은 모르겠고 사적 영역에서 잘하면 가까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행복은 사적인 영역에서 결정되니까. 이 말이야.
나: 그래 너 맘 잘 알겠어. 그런데, 아들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그렇게 별개로 나눠지디?
아들: 밖에서 아무리 잘해도 결국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건 사적인 영역이라고 봐. 나는 연역적인 방법 별로 안 좋아해. 하나하나 작은 거 바꿔 나가면 큰 변화 가능하다고 봐.
모자관계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나: 그럼 영화에서 네가 가장 공감한 점 얘기해 줄래?
아들: 지금 투사로 보이는 여성들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자기 분야에서 남자와 대등하게 경쟁하고 싶었는데 그게 좌절되면서 투사가 된 거다. 적어도 내가 영향 미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내가 자세를 바꿔야 한다.
나: 그래? 그럼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점은 뭐였어?
아들: 백인 중산층 여성과 흑인 여성의 입장 차이랄까. 흑백 문제가 더 큰가 여성이라는 게 더 큰가? 인종 문제. 미스 그레나다는 흑인으로 먼저 정체화했어. 백인 여성의 관점과 다르다는 거지.
나: 그럼 비공감이 아닌 거네. 영화가 잘 그려 낸 거네? 그럼 찡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아들: 마지막에 엄마랑 포옹하는 장면. 나도 엄마 속 무지 썩였다. 그 엄마가 말했잖아. 그 엄마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 딸이 가는 길 인정한 셈이잖아. 나도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 소리 듣고 싶다는 생각 들었어. 원래 자식이 부모 말 안 듣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그러잖아. 그런데 엄마는 나랑 부모 자식으로 보다는 남녀 문제로 접근하잖아. 엄마 아빠도 공부 잘하다가 대학에서 갑자기 교회 가서 부모 거역했으면서. 그러니까 나도 살다 보니 부모 거역할 때도 있는 건데, 내가 사실 엄마 아빠 속 썩인 거 별로 없잖아. 그런데 내가 페미니즘이랑 생각 다른 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엄마는 그렇게 인정하지 않잖아. 그대로 수용되는 느낌, 그게 부럽더라.
나: 그래? 그렇게 읽혔어? 다른 맥락 아닌가? (아~~ 네가 페미니스트고 엄마가 널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들: 그러지 말고, 자식이니까 그냥 받아주는 거 말이야. 그게 그리워.
나: 아들은 엄마가 이전처럼 그저 받아주는 엄마면 좋겠구나. 엄마라는 존재는 그거다 그렇지?
아들: 아니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 엄마는 어쨌거나 모자관계를 넘어 이제는 나랑 인간 대 인간으로, 친구처럼 소통하고 싶다는데. 엄마가 아니면 내가 이렇게 성과 정치 이야기로 볶는 친구를 뭐 하러 사귀겠어. 사랑하는 엄마니까 이러는 거 아냐. 그러니까 엄마도 날 사랑하는 아들로만 받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맘이지.
나: 그럼 엄마가 페미니즘 얘기는 안 하면 좋은 엄마? 그러면 수용받는 느낌이야?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들: 꼭 그건 아닌 거 같아. 안 하면 엄마가 얼마나 답답하겠어. 내가 엄마한텐 틱틱 대도 엄마가 내게 얼마나 영향 미치고 있는지 몰라. 다시 생각해 보면 엄마가 맞거든. 알아. 다만 엄마 원하는 만큼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잖아.
나: 그래 좋아. 그럼 밥 호프랑 그의 아내 관계는 어떻게 봤어? 부인이 남편 우쭈쭈하고 견뎌주니 부러웠어?
아들: 그 관계는 죽은 관계인데 뭐가 좋아. 하나도 안 부러워. 부부관계와 모자관계는 다르다니까? 부부는 끝까지 잘 가려면 싸워야잖아. 부모 자식도 그렇게 되면 가장 좋겠지. 되겠어? 대부분 그냥 저주고 넘어가는 관계 아닐까?
나: 그냥 저주는 모자관계라.... 훤히 내다보이거든. 너랑 이런 주제 소통되지 않는 관계라.... 많이 봤잖아 주변에서. 끔찍하지 않아? 너는 엄마가 변해버려서, 저주는 사랑, 수용하는 사랑을 못 느끼겠다는 말이야?
아들: 페미니즘 때문에 엄마랑 심하게 부딪칠 땐 그런 기분이었지. 엄마의 세계관과 내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때.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자살하는 애 있잖아. 애가 부모 뜻 거슬렀을 때, 상상해 봐. 나는 그럴 기회가 없었어.
나: (그것과 맥락이 같아?) 엄마가 그런 식으로 너를 몰아가는 거 같단 소리구나.
아들: 나와 정서적 교감을 하고 싶다는 뜻은 알지. 그렇게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엄마 아빠의 전철을 밟을 게 안타까운 거잖아. 나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 여사친과 이런 얘기 할 땐 심리적 저항이 별로 없더라고. 엄마는 항상 자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할 테니까, 그게 심리적 저항을 느끼는 거 같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 있잖아. 남녀는 젠더라며. 부모 자식조차도 그런 건가, 그게 의문이었어.
하필이면 그게 매운맛이야
나: 부모 자식 관계라는 거 있잖아. 아주 좋은 의문인 거 같아. 자연일까? 젠더 문제 아닐까 과연?
아들: 엄마가 그랬지. 일방적인 감정 노동하지 않고. 엄마니까 이래야 해, 그런 거 말고 말 통하고 싶다고. 밖에서 사귀는 친구라면 힘들면 덤덤히 넘겨버릴 텐데, 엄마하고는 그게 안 되잖아. 내 숙명이고 엄마 숙명이야.
나: 그래, (나쁜 짓하는 엄마라 미안!) 어떤 게 가장 힘들었어?
아들: 사랑하고 같이 살려면 관심사를 서로 튜닝하고 받아들이고 그래야 할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쉬운 건 아니란 소리지. 엄마가 굉장히 도전적이라고 생각해. 엄마가 날 낳았으니까 이러고 있잖아. 정말 마음 통하고 나눌 거 있는 관계로 가고 싶잖아. 그 나누고 싶은 주제가 하필이면 너무나 핫한 주제라는 게 문제지.
나: 그래 작년에 엄마하고 많이 힘들었잖아. 그때랑 지금 어떤 차이가 있어?
아들: 달라졌지. 전에는 약간 0 아니면 1이었달까. 의절하고 나가 살아봤더니 그것도 힘들었고. 엄마가 날 가장 잘 알고 날 사랑하고 엄마가 같이 나누고 싶어 하는구나. 지금은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있지. 관계라는 건 상호적인 거잖아. 내가 엄마랑 함께 나누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도 나누고 싶은 게 있고. 다만 엄마가 나누고 싶은 게 매운맛이야. 하필 내가 잘 못 먹는 매운맛. ㅋㅋㅋㅋ 현 정권이 너무 싫어졌는데 엄마의 세계 일부분을 구성하잖아. 그럴 때면 그게 또 크지.
나: 그래, 하필이면 엄마가 아들하고 나누고 싶은 게 매운맛이네? (아, 맞네. misbehaviour!) 그런데 아들, 너의 정치관이 언제부터 그렇게 달라진 거야?
아들: 탄핵 촛불은 참여했는데 문재인 대통령 되고 나서 보니 생각하는 게 나은 게 없더라. 민족주의로 한일 관계 꽈놨고 북한한테 하는 만큼 다른 데도 좀 하지. 국정교과서 난리 치더니 역사왜곡 금지법 발의한 것. 그 발상 나쁘다고 봐. 억울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 해결하진 못하고 그걸로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만 하고 있어. 위안부와 세월호가 그거지. 문제 해결하는 게 할 일인데, 해결 못했으니까 그게 무능한 거라고 봐. 속이는 것도 싫어. 부동산, 월세를 세금으로 바쳐라. 그게 가진 자 못 가진 자 문제로만 보고. 월세 내고 세금 내면 국가가 책임져 줄게. 그걸 못하고 있다. 운동권 내부의 안희정 같은 사람들의 위선과 쓰레기 같은 짓 싫고.
나: 그렇게 보는구나. 네가 <김지은입니다> 읽고 그랬잖아. 사람에게 메시아 기대하지 말라. 문재인도 바로 다 해결할 순 없잖아? 우리나라 정치지형이 얼마나 힘든 상황이냐.
아들: 문재인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뭔지 잘 모르겠어.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걸었던 것처럼 문재인이 메시아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자기 찍어주면 다 될 것처럼 했어.
나: 자, 그럼 여주인공의 삶은 어떻게 봤어? 공감돼? 키이라 나이틀리 연기는?
아들: 멋있게 잘 살았지. 자기 전문분야에서 성공하고 여성 운동하고. 운동만 하는 사람 난 싫더라. 사랑도 하고 가족생활도 하고 자기 분야 길을 잘 갔으니 멋있었어.
나: 그럼, 미스 월드 대회를 방해하려고 작당한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에 동의가 돼?
아들: 민형사적 책임은 논외로 하고 정치적으로 그들의 대의는 옳았다고 봐. 다만 그런 의문은 남지. 내가 내 똑똑함을 과시하는 것과 섹시함을 과시하는 것의 차이가 뭔가? 남자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산다고 하잖아. 자기 알아달라고 강점 드러낼 수 있지. 그럼 사람들이 정신적 성취에 대해서는 엄청 와~~ 하면서 육체에 대해서는 문제 삼는가 의문은 있어. 여자가 자기 몸을 미스 월드로 내놓는 거, 꼭 상품화 만인가 이런 거지.
나: 그 기준을 누가 만들고 누구를 위한 상품화인가, 그런 의문은 없어? 전부 남자들이 뜯어보고 있잖아.
아들: 지금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니까 어떻게 하겠나. 하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 상품으로 내놓는 게 선택인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미스 그레나다처럼. 정황과 맥락은 있는 거 같아.
나: 그럼 n번방도 정당한 거겠네? 몸을 사고파는 거.
아들: 에이~~ n번방은 다르지. 그건 명백한 범죄고!
대화 또 대화, 꽝이 될까 봐!
나: 그래, 페미니즘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하잖아. 이 말은 어떻게 들려?
아들: 천주교 탄압할 때, 사상의 자유 시장처럼, 한쪽에서는 그런 패러다임 있는 거고 한쪽에서는 몸을 상품화하는 거고. 자유시장에 맡기면 안 되나. 나는 극단적 리버럴이라서. 민형사상 책임져야 되는 거랑 정치적 올바름은 다르다고 보거든. 사실 의식이 개선되면 시장성을 잃을 거라고 봐. 아프리카 빈곤 볼 때 식량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서 그렇다고 하는 건 쉬운데 대안을 위해 화학비료를 생산하고 이런 이야기하는 건 훨씬 욕먹기 쉽듯이 말이야.
나: 그니께 아들은 엄마랑 페미니즘 하는 게 사상의 자유 시장 논리로 싫다는 거야?
아들: 아니, 싫다기보다는. 아빠도 심리적 저항 있었다 그랬잖아? 엄빠 전철을 밟으면 안 돼, 라는 절박감이 있고. 가부장제라는 말로 일원화할 수만은 없다는 게 내 관점인데, 엄마는 그렇다고 생각하잖아. 그런 건 있어. 지난번 민지랑 이야기하면서도 그랬는데 엄마랑 동생을 너무 몰랐다는 걸 알았어. 엄마랑 아들로서 이야기와는 달리 대뜸 심각한 이야기로 가니까 부담스러웠던 게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어.
나: 우리 솔직히 대화 많이 하는 모자 사이 아니었어? 다른 얘기는 다 하는데 페미니즘은 왜 못해? 나쁜 짓이냐?
아들: 어떤 친구 하고도 성과 정치 이야기만 계속하지는 않잖아.
나: 맨 마지막 화면 자막, "가부장제를 깨부수기 위한 여성들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였나?
아들: "여성이 겪는 불합리를 깨기 위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라고 풀어줘야 맞다고 봐. 중년이 되면 대개 엄마들이 아들 낳아서 꽝으로 판명 나는 거 괴로워하는 거 같더라. 인지부조화. 네 아비랑 똑같다는 소리 하잖아. 한편으로는 엄마랑 내가 참 비슷한 점 많아. 엄마가 나랑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맘 알 거 같아. 꽝이 될까 봐. ㅋㅋㅋ
나: 오 말 되네.(그래, 알고 보니 꽝이 될까 봐!) 엄마가 아들하고 책 읽자 영화 보자 이런 거 안 하면 더 좋겠어?
아들: 사는데 클리어한 상태란 게 있겠어? 싫은 거 같은데 좋고, 좋은데 귀찮고 그렇지. 엄마가 아들에 대해 미련을 정말 버리면 몰라도. 그게 가능하겠어? 생각하다 또 하고 그러겠지.
나: 그래 힘든 토론 했으니 이 약발 몇 달 우려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아니 몇 주? 우리끼리 이렇게 열라 싸우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우리 아들 대단하다 그래.
아들: 맞아. 인정해야지! 밖에서 여자들이 나보고 그런 대화가 잘 된다 그래. 우리 엄마가 너무 매운맛이라 집에서 내가 잘 못 먹는다 소리 듣지. 집에서 편식한다고 욕먹으니까 밖에 가면 뭐든 잘 먹는다 소리 듣나 봐. 엄마랑 매운맛 페미니즘을 많이 하니까 밖에선 열렸단 소리 듣는다고. 웃기지? 우리 엄마의 지랄맞은 교육법이려니 해 이젠.
나: 캬~~ 알고 보면 대단한 모자 맞지. 이런 매운맛 같이 먹는 아들 고맙다. 자, 그럼 오늘의 토론 마무리해 줘 봐.
아들: 뭐니 뭐니 해도 대화가 중요하다. 얼굴 보고 대화해야 해. 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 엄마가 뭐 읽자, 뭐 보자 할 때 혼자 생각하면 저항이 있는데, 얼굴 보고 이야기하다 보면 달라. 다 멀쩡한 사람들이잖아 우린. 영화는 솔직히 대화의 매개일 뿐이지. 볼수록 엄마가 보통내기 아니고 대단해. 쉬운 일 아니란 거 알아. 근데 점점 아빠도 대단하다 싶어. 둘이 잘 지내는 거 보기 좋고. 나도 나이 먹도록 뜨겁게 사랑하는 좋은 관계 만들고 싶다 꿈꾸게 돼.
나: 오~~ 파이팅 파이팅! 엄마도 용기 내는 거야. 그렇게 살라고 엄마가 귀찮은 싸움 하잖아. 네 시대에 더 빛을 발할 거라 믿어.
아들: 근데 엄마, 이상하다? 엄마가 날 볶을 땐 그러려니 되는데 아빠가 그러면, 내 기분의 결이 뭔가 좀 달라.
나: 어떻게 달라? 눌려? 자기도 그랬으면서 뭘 잘난 척하시나, 이런 기분 아냐 혹시?
아들: 맞아 좀 비슷해. 아빠가, 아들도 어서 이리로 넘어와라, 막 이러잖아, 큰소리칠 입장 아니지 아빠~~.
나: 와~~ 그렇구나. 그런 기분이구나~~~ 알 거 같아. 깔깔깔.
나: 아들, 우리나라에서도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 있었던 거 알아? 페미니스트들이 미인대회 생중계 없앴잖아. 미스월드 1970년이랑 비교해서 우리 사회 전반적인 페미니즘 인식은 30년 정도 차이 나지 않나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