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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Jan 04. 2021

에놀라 Alone, 엄마와 딸 영화 토론

에놀라 모녀에게서 우리 모녀 사이 힌트 얻어서 적용해 볼 건 뭐야?


넷플릭스 개봉 당시 2050 우리 모녀가 <에놀라>를 보고 토론한 기록이다.


연말 즈음엔 토론 모임에서 또 한 번 토론한 영화다. 작년에 본 영화 중 다시 보고 싶고 추천하고 싶은 목록을 정리해 볼 겸, 토론 현장 목소리 그대로 올려 본다. 새해에, 딸과 엄마, 아들딸과 부모, 세대 간의 벽을 넘어 소통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온 마음으로 강추하고 싶은 영화다.    





딸: 넷플릭스 9월 23일 개봉. 따끈따끈하게 봐서 좋다. 이 작가의 상상력이 참 매력 있어. 만약 셜록 홈스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여동생뿐 아니라 엄마까지 멋있게 살려낸 게 너무 좋아.


나: 맞아. 셜록의 '이쁜 동생' 따위 말고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으로. 작가가 누구였지? 원작 소설 말이야.

딸: 낸시 스프링어(Nancy Springer). 미국 작가. 지금 72세야. <사라진 후작> 이게 2006년 나왔으니까 당시 58세였네.

나: 오~~ 내 나이였을 때 썼다고? 진짜 멋진 중년이다. 뭉클하네!

딸: 그래선가, 종합적인 안목이 보여.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잘 그려 거 같아. 단지 발칙한 여자 아이 이야기만 한 게 아니야. 엄마의 삶과 그 시대 배경까지 멋있게 녹여냈어. 성장소설에 추리에 페미니즘까지 담아냈어. 완성도가 높아. 엄청나지 않아 엄마?

나: 맞아. 진짜 수작이다! Enola, 이름을 거꾸로 하면 Alone이 된다 그랬잖아. 이건 어떻게 읽어야 하지?



딸: 그 이름에 대한 내용이 소설에 나오거든. 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야. 당시 여자는 독립된 인간이기보다는 남자에게 의존해야 했지. 투표권 없던 게 잘 보여주지.

나: 넌 셜록 홈스 책으로 많이 읽었지?

딸: 내가 한 때 셜록 홈스에 빠져서 다 찾아 읽었지. 베네딕트 컴버배치 나오는 드라마도 봤고. 홈즈가 워낙 오래되고 재미있는 이야기니까 스핀 오프가 많거든. 여러 작가들이 계속 홈즈 이야기를 썼지.


나: 스핀 오프?


딸: 원래 책이 나왔잖아? 그 책에서 영화가 나오고 책에서 또 책이 나오고 드라마가 나온 걸 스핀 프(spin-off)라 그래. 파생 작, 번외 작이란 뜻이야.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원작 <셜록 홈스>는 단편이 많고 장편은 네 편 밖에 안 돼. 다른 작가들이 셜록 홈스를 가지고 쓴 스핀 오프 작품이 엄청 많아. 셜록 홈스 캐릭터를 가져오되 사건만 새로 만들면 되니까. 이 작품은 셜록 홈스에게 여동생이 있다고 상상해서 여동생 중심으로 끌어가는 새로운 이야기지. 

나: 그렇구나. 진짜 신선해! 주인공 밀리 바비 브라운 연기 좋고 매력적이네.

딸: 와~~ 알아 엄마? 엄청 어려! 2004년생이래. 완전 극 중 나이와 똑같은 16세로 캐스팅됐어. 자기가 어리니까 영화에선 22세라고 속이고 다니는 장면 있었잖아. 이 배우가 얼마나 대단한지 제작에도 참여했어.






9월 23일 넷플릭스에 개봉한 영화 <에놀라 홈즈>

                


독립된 인간 엄마, 독립된 인간 딸



나: 와~~ 장난 아니구먼. 그럼 영화에서 딸에게 가장 마음에 남은 게 뭐야?


딸: 그 엄마가 딸에게 그 시대에 안 가르칠 거 같은 걸 가르쳤잖아. 격투기, 테니스, 활쏘기, 화학실험에 독서에. 여자애들은 신부 수업시키는 그때, 그 엄마가 대단했어.

나: 그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딸: 깨어 있는 사람이었지. 서프러제트였잖아. 아빠 일찍 돌아가신 걸로 설정됐으니 딸이 누구 도움 없이도 독립된 인간으로 살도록 키우려 했지. 주짓수 가르쳐 준 흑인이 에놀라 첫 가정교사였다 그랬잖아. 가정교사 두긴 했지만 엄마가 창의적으로 주체적으로 딸을 가르친 거지.



나: 에놀라 엄마와는 다른 그 시대 여성 교육 이야기 좀 해 봐.


딸: 헤리슨 교장 선생님 학교 들어가서 신부수업받는 게 그 당시 주류 여자 교육이었잖아. 처음에 오빠들 왔을 때, 너한테 엄마가 교사들 붙여주긴 했지? 이런 말 했잖아. 위험천만한 엄마한테서 네가 어떻게 컸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에놀라를 의심스럽게 봤잖아.

나: 짜식들 자기들도 그만큼 큰 건 사실 훌륭한 엄마 덕 봤을 텐데. 엄마를 무시해?

딸: 큰 오빠가 직업을 특정할 순 없는데 똑똑하고 권력과 연줄이 있는 명망가로 원작에 나와. 아빠 없는 집 장남이니까 가부장 역할하는 캐릭터인 거지.

나: 큰아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에놀라 교육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든 거란 소리지?

딸: 마음에 안 든 거지. 테니스 채 집어 들고 이게 뭐냐고. 엄마가 키워 놓은 방식 맘에 안 들어서 학교 집어넣으려 했잖아. 그럼 엄마는 뭐가 젤 인상적이었어?



나: 에놀라를 독립된 인간으로 키운 엄마. 그 엄마와 에놀라의 관계가 감동이더라. 에놀라가 자전거 타고 어디든 신나게 달리잖아. 초원에서 자전거 달리는 장면이 잘 보여주더라. 엄마들은 딸을 자기처럼 안 살게 키우고 싶다고 하잖아. 자기는 막상 시대에 갇혀 사니, 이중 플레이하기 쉬워. 영화엔 엄마도 딸도 강하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람들로 사는 게 너무나 보기 좋더라. 몸도 정신도 강하고, 딸에게 가르친 거나 자기 사는 모습이나 모순되지 않는 엄마잖아. 딸을 두고 집을 나간 게 놀랍지 않아? 쉽지 않은 선택이지. 딸을 사랑해서 그랬다잖아. 이해되는 지점 있었어. 딸에게 이런 세상에 살게 할 수 없어서, 세상을 바꿔 보려고. 그 정도로 자신감 있었어. 에놀라를 잘 키웠기 때문에 자기가 나가도 이 딸이 충분히 강하게 잘 살 거라는 믿음이 있었겠지? 결정적인 순간마다 에놀라가 엄마와 같이 배운 거 떠올리고 목소리 기억하면서 스스로 싸우고 일어서는 것도 감동이더라.


엄마가 딸 사랑한다고 아무리 올인해도 나중에 딸이 깨닫게 되는 경우 많지. 엄마가 키운 방식으로 살 세상이 아니구나 하고 말이야. 엄마가 가부장제 아래서 명자 씨로 딸을 키웠다면 딸은 결국 엄마를 부정해야 자기로 살 수 있잖아. 그런데 에놀라 엄마는 이미 그 지점을 내다보고 넘어섰어. 에놀라를 그 시대 여성교육 기준 따라 키우지 않았어. 자유롭고 해방된 여자로 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가르치고 준비시켰더라. 캬~~~ 말처럼 쉬운 거 아니야. 제대로 된 모녀 동지로 세월 갈수록 더 이해하고 연대하게 될 거야. 진짜 멋진 영화야.



<에놀라>, 에놀라(밀리 바비 브라운)와 엄마(헬레나 본햄 카터)



딸: 맞아. 어렸을 때 엄마랑 실험했을 때, 처음에는 에놀라도 오빠가 말한 대로, 엄마가 위험천만 하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엄마가 왜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했는지도 알게 되잖아. 에놀라가 씩씩하게 엄마 찾아가는 과정으로 그려 놔서 그렇지,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게 유쾌한 경험은 아닐 거잖아. 그런데 에놀라라는 캐릭터를 워낙 씩씩하게 잘 만들어 놨고, 계속 중간 중간 떡밥을 던지잖아. 이 아줌마가 왜 집을 나갔는지 궁금하고 이해하게 잘 만들었더라. 결국 둘 다 런던으로 왔잖아. 처음에 에놀라는 투표권에 대해 잘 몰랐잖아. 엄마 주소 가지고 갔을 때, 서프러제트 아지트 같은 데 들어갔잖아. 폭탄 제조라든가 인쇄물 만드는 거 알게 되고 엄마가 뭘 위해 싸우는지 제대로 알게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잘 보여줘서 좋더라.



나: 엄마 없는 상황을 에놀라가 불행으로 머물지 않고 엄마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게 아주 인상적이더라. 그냥 비뚤어진다거나 우울과 슬픔이 될 소재잖아. 에놀라는 엄마가 그렇게 할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고 스토리를 찾아가잖아. 역시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야 그것도.


딸: 그렇지. 그만큼 잘 컸다는 거지. 얘는 분명한 자아가 있고 집 밖으로 뛰쳐나온 이유가 스스로 엄마를 찾고자 했잖아. 단지 남자와의 사랑이라거나 남자 의존하는 여자가 아니더라. 나는 왜 얘가 신경 쓰일까. 튜크스베리랑 얽힐 때, 어릴 때 양을 돌봐 준 경험을 떠올리잖아. 얘는 지금 힘이 없고 나는 힘이 있잖아. 자기의 행동 동기 설정하는 게 멋있더라. 걔를 너무 좋아해서가 아니야. 왜 마음이 자꾸 가지? 사랑인가? 이런 식으로 훅 가버리지 않잖아. 걔가 어려움에 처해있고 힘이 없고 나는 힘이 있어. 그래서 도와야지, 이런 식인 거야. 내가 변호사 하고 싶다는 생각할 때도 그런 비슷한 생각 하거든.



                                               <에놀라>, 에놀라와 튜크스베리(루이스 페트리지)




나: 당시 영국 선거법에 귀족 남자들에게만 투표권 있었던 거지?


딸: 1918년 4차 선거법 개정에서 30세 이상 일정 재산 있는 여성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지는 것으로 개정됐어. 이때 선거법 개정이 통과됐다는 게 영화 속 이야기 같아. 튜크스베리 후작이 죽지 않고 살아서 중요한 한 표를 행사했는데 한 표 차로 선거법 개정이 통과됐다는 이야기야. 당시 21-29세 여성들은 왈가닥 유권자(flepper vote)로 제외되었다가 1928년 5차 선거법 개정 때 포함됐어.

나: 오~~. 그 복잡하고 지난한 서프러제트의 투쟁 이야기를 에놀라 엄마 이야기로 가져온 게 참 신선하고 재미있었어. 살아있는 사람 이야기로 서프러제트를 다룬 작품이 드물잖아.


딸: 서프러제트는 투쟁하는 이야기 중심이었지만 여기서는 투쟁하는 엄마 세대와 그 딸 세대의 삶이 잘 이어져서 좋았지. 그리고 그 남자애도 마냥 바보로 그려내지 않아서 좋았어. 주인공을 부각하기 위해 발암 캐릭터로 만들어버리기 쉽잖아. "네가 불 피우면 내가 요리할게." 그 대사 남녀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 줬어. 그리고 알고 보니 식물학에 관심 있고 등등. 경찰에 잡혔을 때 에놀라가 희생하면서 튜크스베리 탈출시키잖아. 나중에는 튜크스베리가 에놀라 구하러 가고. 각자 살아있고 입체적이고 죽은 캐릭터가 없어 좋더라. 처음에는 저 새끼 재수 없네 했는데, 나중에 튜크스베리가 눈물 보이잖아. 처음에는 귀족인 척하더니 나중에는 훨씬 감성 여리고 아쉬워하고 어떻게 하면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러는 튜크스베리. 에놀라가 더 씩씩하고 덤덤하고. 남녀를 사랑에 쉽게 빠지는 걸로 안 만든 것도 마음에 들었어. 할머니한테 총 맞았을 때도 "내가 바보는 아니지?" 하며 방탄조끼 내보이는 것도 멋있더라. 성역할 고정관념 깨는 역할 보여주려는 게 좋았어.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묻는 튜크스베리 보고 에놀라가 “너 아직 나를 못 떼어 낸 거야?” 한 이 대사도 멋있었어.



 <서프러제트> 사라 가브론 감독






5파운드 줄 테니 나랑 옷 바꿔 입자!


나: 이 영화가 우리 현실에 닿아 있는 지점은 뭐가 보였어?

딸: 긍정적인 점에서 닿은 지점은 잘 없더라. 이 나라는 여자 애들을 너무 조신하도록 키우는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나: 100년 전 영국 배경인데 오늘 우리 현실보다 더 깨어있고 자유로운 여자 캐릭터를 보여준 거네? 이 시대도 표면적으로 보면 분명 여자도 원하는 대로 공부하고 자유롭게 사는 거 같은데.


딸: 그렇지. 그런데 내가 볼 때, 이게 너무 은근하고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다 눈치를 못 채. 여성교육의 모든 바탕에는, 너는 커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 딸에게 브레이크 거는 역할 하는 게 가정이고 사회야. 저 당시는 남자 없으면 사회생활 못하던 시절이잖아. 여자애가 스스로 자기 몸을 보호하고 스스로 먹고살 수 있도록 실력 키워주는 게 얼마나 멋져.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에서 여자에게 교육 기회가 같이 주어지는 건 분명한데, 너무 은근하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들 교육에 상한선이 있게 되지. 너는 결국 누군가의 아내 되고 엄마 된다는 걸 전제로 해. 여자 스스로도 자기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걸게 되고. 이거 결혼하면 할 수 있나? 결국 공무원 교사하는 이유가 뭐야. 엄마가 에놀라랑 같이 폭탄도 만들고, 자동차 원리 익히고 스스로 차를 몰 수 있잖아. 멋있어. 에놀라가 일을 추진해 가는 게 단순히 왈가닥이라서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 가는 인간의 모습이라 좋더라. 에놀라는 혼자 둬도 잘 살 애니까 튜크스베리를 오히려 도와주잖아. 에놀라가 한 이 대사가 인상적이었어.



걔는 힘이 없지만 나는 힘이 있다. 내가 도울 수 있다.

                                                                             <에놀라>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이 따라가는 삶의 단계가 정해져 있다는 통념이 너무 강해. 그 안에서만 보면 결혼이란 게 여자 삶의 중심이 되고 너무 닫힌 결말로 가는 기분이야. 선택지가 너무 좁아. 에놀라가 신부수업 안 받고 학교에서 튀어나와서 자기 길 갔어. 요즘 여자에게 교육의 기회 훨씬 많이 개방됐는데도 결혼이란 전제에 너무 매이게 하는 점에선 여전히 답답해.




나: 그럼 에놀라 모녀에게서 우리 모녀 사이 힌트 얻어서 적용해 볼 건 뭐가 보여?

딸: 우리 격투기를 합시다!

나: ㅋㅋㅋㅋㅋㅋ 오~~~ 맞아. 그 엄마는 어떻게 그 시대에 격투기를 딸에게 가르칠 생각을 했지? 주짓수가 그렇게 오래된 스포츠다 그치? 코로나 때문에 그런 운동 타격 컸을 거 같아.

딸: 서로 땀 흘리고 침 튀고 숨 헉헉 거리고 하는 운동 그렇지. 코로나 이후엔 주짓수는 못해도 뭔가 호신술은 확실히 해야겠어.

나: 너 태권도 잘했잖아. 다시 할 생각 없어?

딸: 있지. 시험 끝나면 뭐라도 할까 봐. 에놀라는 위기에서 누가 도와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머리 쓰고 몸 써서 다 헤쳐 나가더라. 몸싸움 너무나 끈질기게 잘하는 거 참 좋더라.

나: 그렇지. 그런 건 힘써서 길러야지 그냥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딸: 맞아. 보통 동화 같은 여자 캐릭터는 Help! 이러고 남자가 나타나서 도와주고 구해주길 기다리고 그러잖아. 도와달란 대사가 이 영화에 한마디도 안 나왔어. 오히려 지가 남자애 구조해주고 스스로 싸우고 끝까지 처래해 버려. 그건 평소 몸에 밴 대로 한 거야. 상황마다 자기가 입은 불편한 옷 던지고 옷 바꿔 입고 위기 돌파해 버리잖아. 짱 멋있었어.



5파운드 줄 테니 나랑 옷 바꿔 입자!

                                                                             <에놀라>



나: 니가 에놀라 같은 캐릭터로 살자면 엄마는 어떻게 살면 좋겠어? 우리 모녀 관계에서 이런 건 달라져야 해, 그런 거 보이는 거 없었어?

딸: 큰 오빠가 했던 대사 그거 “You are my ward!” 그 대사에서 ward란 단어 있잖아. 영국에서 법률 후견인의 보호를 받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야. 영화에서는 “나는 니 보호자야!” 이렇게 번역했잖아. 큰 오빠에게 여동생은 보호를 받을 대상이지 독립된 인간이 아니라는 거지.


 엄마와 딸도 독립된 인간이면서 연대하는 게 최고 관계가 된다 이거야. 에놀라는 모험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엄마와 좋은 동지가 되겠구나 싶더라. 엄마가 조금이라도 정정할 때, 엄마가 하는 일 다르고 내 하는 일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 지향점이 같은 사회인으로 활동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 들더라. 에놀라 엄마도 계속 투표권 위해 투쟁할 거 아냐. 에놀라도 엄마 이해했고 런던에 나와서 살게 되니 연대할 거잖아. 이제 사회 보는 눈도 더 뜨게 될 거 아냐. 


우리도 마찬가지지. 엄마는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좀 더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자기 이름으로 살도록 해. 그러면서 나랑 모녀로만 말고, 자유롭고 강한 여성 동지로 사회에서도 보자고, 알았지?



나: 그렇지! 맞아 맞아. 최고다. 그렇게 안 되면 엄마와 딸은 늙을수록 공유할 게 너무 적잖아. 자식 낳고 기르고 살림하는 그런 영역에서 공유하는 거 말곤 없겠지. 낳아준 엄마고 딸이니까 이어질 뿐인 관계. 그건 너무 슬프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딸의 인생에 브레이크 거는 엄마만 안 돼도 복이지. 그런데 같은 방향의 싸움을 하는 동지라면, 함께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연대한다면, 이건 서로에게 엄청 날개를 달아주는 게 되고 힘이 되지. 와~~ 그렇게 살 거야 우린. 최강 모녀니까. 안 그래?



딸: 그렇지! 결국 엄마와 딸이 같이 성장해야 하는 거 같아. 신문에서 아, 엄마다!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에놀라가 다시 추론하잖아. 엄마였으면 국화라고 했을 거고 왕립 예술학교에서 만나자니, 거기는 여자를 배척하는 곳인데 엄마가 거기서 만나자고 했을 리 없다고, 이건 셜록이 한 거라고 깨달아 버리잖아. 재미있었어. 큰 오빠는 집에 와서 무슨 책이더라? 그거 집어 들고 그러잖아. “뭐야 이거 페미니즘이네?” 엄마를 마치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좀 빈정거리잖아.


나: 맞아! 작가가 아들들과 딸의 다른 관점을 그런 식으로 짚어 줬구나 싶더라. 리얼했어. 엄마가 페미니스트면 아들이 기뻐하고 반겨야 되는 거 아냐? 존경해야지 안 그래? 무슨 정신병자 취급이야. 엄마가 명자씨면 좋은 건가? 하긴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그런 취급받으며 투쟁했지. 남자 말이나 따를 것이지 지들이 투표권 갖겠다고 드세게 싸우는 게 얼마나 눈꼴셨으면 정신병자 취급이겠어. 에구..... 오늘날도 그런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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