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아, <수상한 그녀> 보자꾸나!

별에게 보내는 편지, 단원고 2학년 10반 구보현을 기억하며

by 꿀벌 김화숙


보현아, <수상한 그녀> 보자꾸나!


그래! 화요일 심야로 보현이랑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는 거야!

네 생일 달인 12월에, 네 약전을 다시 읽고 네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너를 기억하는구나.



12월 29일은 2020년 마지막 화요일이자, 네 생일 달 마지막 화요일이었어. 네가 엄마 아빠와 같이 심야로 이 영화 보기로 한 날이 화요일이었잖아? 나도 화요 심야 영화 데이트에 너를 초대했지. 네가 좋아한 그 영화 <수상한 그녀>로! 아~~ 어떻게 잠 많은 청소년들이 날마다 야자를 했을까? (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는 중년.) 심야 영화, 그거 아무나 보는 게 아니었어.



밤 10시가 넘어 "보현아, 영화 보자!" 시작할 땐 좋았지 물론. 이를 어쩐다냐. 영화는 재미있는데 내 눈꺼풀은 왜 그리 무겁냐고. 아차, 전날 오래간만에, 안 마시던 커피를 반 잔 마셨던 거야. 밤늦게 잠든 다음 날이니, 잠이 일찍 쏟아지는 걸 어찌 막겠니. 아~~ 30분을 못 넘기고 심야 영화 감상 포기했단다. 어이없었지 보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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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아침 일찍 일어나 <수상한 그녀>를 처음부터 다시 봤단다.


와~~ 이리 잘 만든 코미디 영화를 이제야 보다니. 미안할 정도였어. 후반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주체할 수가 없었구나. 나는 무슨 근거로, 재미없을 거란 선입견에다, 이 영화를 계속 지나쳤을까? 네게 너무나 고맙고, 너랑 함께라 좋았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네. <수상한 그녀>와 보현이를 종일 생각하는 하루였단다.




보현아! 넌 어떤 점이 제일 재미있었니? 네 목소리, 네 소감이 듣고 싶구나. 조잘조잘 깔깔깔, 워낙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보현이잖니.



너는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을 누리는 아이였지. 손재주가 좋아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꿨구나. 기타며 드럼도 잘 치고 춤도 잘 춘 너. 사랑스러운 딸이 "사랑해!" 고백을 잘했으니, 엄만 얼마나 행복했을까. 나무늘보처럼 매달리며, 뀨~~ 하는 딸을 보는 아빠 눈빛에 행복이 가득하구나.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며 자꾸만 너와 엄마 아빠를 생각하게 되더구나.



영화 결말쯤 있잖아. 나문희였던 몸이 젊은 심은경으로, 결국 손자 입원한 병원에 갔지. 거기서 엄마 나문희의 자랑인 대학교수 아들 성동일과 만나는 장면 말이야. 아, 모자가 헌혈 앞두고 나눈 대화 생각나? 난 눈물이 나서 화면이 안 보여 혼났단다. 내가 '왓챠'에서 화면을 정지시켜 가며 다시 찾아 옮겨 적은 대사 좀 들어 볼래?



"저기요,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혹시 '붙들'이라는 아이 알아요? 알아요? 예전에 갓난쟁이를 남편도 없이 키우던 젊은 여자가 있었어요. 근데 그 갓난쟁이가 병이 났는데 도통 낫지를 않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목숨줄을 놓으려고 했죠. 그런데 그 갓난쟁이 엄마는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가슴으로 끌어안고, 눈물로 말했어요. 붙들아, 붙들아! 붙들아! 목숨 줄을 붙들어라. 제발 목숨줄을 붙들어라."



아들 성동일이 더듬듯 말했지. 심은경이 "빨리 가요."라며 자리를 막 뜨려 하지. 그러나 아들은 울먹이며 계속 붙잡고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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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들은 제가 책임지고 살릴게요. 가세요. 그냥 가세요 제발. 제발 가셔서, 남이 버린 시래기도 주워 먹지 말고, 그 비린내 나는 생선 장사도 하지 말고, 자식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아귀처럼 살지 말고, 명 짧은 남편도 얻지 말고, 나처럼, 나처럼 못난 아들도 낳지 마세요. 그냥 제발...... 제발, 제발 가세요...... 엄마!"



새파랗게 젊은 몸인 심은경에게 성동일은 결국 "엄마!"라 부르고 말지. 울먹이며. 신파 같으면서도 난 작가가 한 여자의 삶을 너무나 존중하며 잘 그렸다 싶더라. 인생이란 이토록 판타지가 없인 도저히 서로 알 수 없는 걸까. 붙들이가 젊은 엄마 심은경을 깊이 이해했잖아. 엄마는 흔들리지 않고 아들을 눈물로 얼싸안지.



아니,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이 살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이 살란다. 그래야 내가 니 엄마고, 니가 내 자식일 테니까, 응?



사랑스러운 보현아!



네 엄마 아빠도 이런 맘이셨더구나. 너를 가장 사랑하고, 네 엄마 네 아빠로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지. 널 사랑하신 여섯 삼촌들 생각도 났어. 네 빈자리를 어찌들 견디셨을까. 다시 젊어지더라도 결국 똑같은 선택, 같은 사랑을 할 거란 말. 여운이 길게 길게 남는 한마디였어.




그래야 내가 니 엄마고, 니가 내 자식일 테니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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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된 아이 같은 네가 유치원 입학하던 때를 난 잊지 못하겠어. 엄만 특별히 유치원에 부탁하셨더랬지. 뭐든 느린 너였으니까. 밥을 늦게 먹어도, 뭘 늦게 해도, 부디 널 혼내지 말아 달라고. 너는 그런 아이라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몰아세울 수 없고말고. 너는 너고, 느리게 자라는 네가 바로 엄마의 딸 보현이었으니까.



보현아! 너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니?

엄마 아빠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실까?

이 바보 같은 질문을 용서해 주렴......



엄마는 그토록 네 엄마로, 너를 소중한 딸로 대하셨구나. 다시 살아도, 돌아가도, 엄만 너를 위해 같은 선택을 하셨을 거야, 그치? 다시 살아도 네 엄마로, 너 역시 세상 하나뿐인 보현이로, 엄마 아빠 딸로...... <수상한 그녀>로 함께 해준 시간 정말 고마워, 보현아! 네가 너라서 고마워!







보현아! 고백하고 싶구나. 지난 한 해도 '별에게 보내는 편지'로 함께 하게 해 준 거 정말 고마웠다고. 새해에도 별이 된 너희들 곁에 서 있을게. 잊지 않을게. 약속해. 네가 별이 된 그해 네 생일, 12월 3일에 신호현 시인이 쓴 시 알지? <너의 빈자리>를 낭독하며 이만 마무리할게. 보현아, 사랑해~~~




너의 빈자리 / 신호현



아침이면 종달새처럼

삐리 빌리 빌릴리 재잘거리던

엄마 일어나 엄마 사랑해 히히



매일매일 조금씩

기타 드럼 바느질 배우고

비즈공예 알알이 구슬을 꿰던



다정한 잉꼬새처럼

엄마 곁에 붙어 서서 삐리릭

난 엄마 딸인 게 너무 좋아 히히



아빠 등에 매달려

나무늘보 놀이 즐기던

코알라 놀이 즐기던 보현아



삼촌들의 웃음 상자

애교와 귀염이 넘쳤기에

너무나 행복한 나날이었는데



너의 빈자리에서

오빠는 가슴에 금이 가고

엄마 아빠는 온몸이 터지겠구나


( 단원고 2학년 10반 구보현 생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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