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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듬떠듬, 야속한 영어야, 팍팍 좀 나오면 안 될까?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 웨일스 주의회 투어 사진을 보며

by 꿀벌 김화숙

시드니에서 5일째가 되니 영어가 답답한 여행자는 인상 쓸 때가 많다. 가는 곳마다 무조건 누군가와 말을 하고 즐기기는 하는데 마음만 앞서지 입이 영 안 따라오기 때문이다. 어떨 땐 진짜 완전 엉터리 영어다. 입이 점점 풀리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건만 왜 이리 팍팍 안 나오는지. 영어는 야속한 님이로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해 주로 실내활동을 한 금요일 하루도 그랬다. 오전엔 안작 메모리얼 방문, 오후엔 뉴사우스 웨일스 주의회 투어였다. 말을 하다 보면 정말 환장하게 답답한 순간을 견뎌야 했다.


안작 메모리얼에서는 흰머리의 베테랑 자원봉사자 조지와 한국 전쟁 이야기를 나눴다. 할말이 태산인 아줌마는 브로큰 잉글리시로 열심히 질문하고 그의 대답은 딸의 도움을 받으며 이해해야 했다. 점심 후 주의회투어에서는 안내자에게 질문 3개 하고 덧붙여 코멘트도 하려 애썼다. 후에 영국인 젊은이 샘과 시청까지 함께 걸으며 수다 떨었다. 쇼핑센터 웨스트필드에 들러 신문을 사며 점원과 수다 떨고 저녁엔 오페라극장 앞에서 걸어 하버브리지를 올랐다가 파키스탄 출신 야간 경비 페이잔과 사귀고 떠들었다.


"엄마 표정 좀 봐. 이거 오늘 사진 중 최고 작품이야!"

늦은 밤 딸이 카메라에서 사진을 옮겨주며 웃고 있었다. 사진 속 내 모습은 주의회에서 인상을 잔뜩 쓴 모습이었다. 하원 상원 회의 좌석배치에 평등 구조가 보였다. 할말은 많으나 입은 떠듬떠듬인 흰머리 한국 아줌마를 백인들의 얼굴이 바라보고 있었다.

"으앙~ 뭐야! 너무 불쌍한 얼굴을 포착했잖아. 인상이 이게 뭐야."


딸이 재미있어 못 참겠다는 듯이 덧붙였다.

"말은 하고 싶은데 영어는 잘 안 나오고, 인상을 마구 쓰는 거 봐. 보기 좋아. 백인들에게 둘러싸여 기 안 죽고 말하는 김화숙이잖아. 리얼 명작이야."

"아~ 야속한 영어야, 팍팍 좀 나오면 안 되겠니?"


그랬다. 스몰 토크는 어찌어찌 한다치고 정치 역사 건축 등 전문 주제로 이야기가 흐른다면? 바로 그런 하루였다. 듣기는 점수 많이 주면 70%나 이해했으려나? 말하기는 이게 테스트였다면 어휘도 문장구성도 50점도 못 받았을 게다. 겁없이 떠들지만 이런 걸 브로큰 잉글리시라 하지 싶다. 웃음이 나오다가 인상 쓰다, 에라이 내가 가진 건 똥배짱, 어쩔? 꾸역꾸역 떠들었다.


한국인 여행자가 영어 좀 못하기로서니 기죽고 부끄러워해야 해? 전공도 아니고 영어 쓰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처음 온 외국인이라고! 이곳 사람 중에 한국말 잘하는 사람 얼마나 되겠어? 게다가 난 매일 쓰는 한국말 단어도 안 떠올라 떠듬 또는 엉뚱한 말을 하는 중년이잖아. 하물며 영어!


매일 정신승리로 시드니를 누비고 있다. 점점 못하는 영어로 잘 놀고 즐기는 내가 사랑스럽고 맘에 든다. 떠듬떠듬하는 낯선 사람들과 문화와 자연을 배우고 사귀고 떠든 내가 자랑스럽다. 정말이지 떨지도 않고 공공장소에서 질문하고 의견을 말하는 건 역시 흰머리의 힘인가? 한국 여행자 20대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고 정치 관련 질문을 했으니 말이다. 저녁에 만난 파이잔이 나와 소통하려 한국 카톡을 깔고 말걸어 왔으니 또 좋다.


오늘이 63회 내 생일이었다. 가장 내 맘에 들게 즐거운 생일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더 풀린 입으로 더 많이 즐길 걸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두고 보자. 2주간의 여행이 끝날 즈음엔 영어가 물흐르듯이 흘러나오고 있을 거라고? 행복한 착각은 내 자유! 아, 영어야, 팍팍 좀 나와 주렴!!




사랑하는 엄마!


내 생일에 남반구 시드니에서 엄마를 부른다.

나를 낳았을 때 엄마 나이는 스물일곱이었어. 열아홉에 결혼해서 이미 큰딸과 아들을 낳았고 나를 셋째 아이이자 둘째 딸로 낳았지. 엄마는 대가족의 책임자.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돌봐야 했고 외삼촌과 고모 셋, 거기다 머슴들을 건사하며 농사를 지어야 했지. 아빠는 바깥 볼일이 많은 얼치기 농부였고 말이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아래로 연년생 여동생과 세 살 아래 막내를 낳으며 엄마는 이미 서른에 3녀2남의 엄마가 됐지. 그러니 자식들을 혼내가며 잡아 키우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누구 하나 엄마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엄마에겐 끊없는 의무는 있었을지언정 권리 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었겠지. 불평등도 성차별도 들어본 적 없는 말, 엄마는 오직 '여자'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지.


참 감사하게도 고분고분하던 엄마 딸은 "가만히 있지 않을게."를 알아 버렸지.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내 가슴에 새겨진 그 한마디. 잘못 살아 왔구나,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지. 드디어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라는 노래가 가슴에 와 닿더라. 인간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 생물 맞아. 몸에 익은 습은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것 또한 사람이잖아.


사랑하는 엄마!


과거를 반복하지 말자, 그게 탄핵 집회에 나가는 내 맘이었어. 내가 잊을 수 없는 그 토요일, 1시까지 여의도에 들어간 그날 이야기해 줄게. 구름같이 몰려든 사람들로 장엄한 집회였지. 우린 국민의 힘 당사 앞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윤석열 탄핵촉구 시국 기도회"에 먼저 참여했어. 기독교 연합으로 하는 탄핵 촉구 시위이자 예배였지. 엄마 아빠가 살아 생전에 전혀 경험한 적 없는 '기독교 집회'라고만 해 둘게.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 교회개혁실천연대, 새 민족교회,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윤석열 폭정 종식 그리스도인모임 등등, 그들 속에 빨간 모자를 쓴 나와 짝꿍이 있었지. 10년 전만 해도 기독교 연대에 참 소극적이던 우리가 지금은 거기 아는 얼굴이 참 많더라? 그뿐이 아냐. 진보당 깃발, 안산비상국민행동 깃발, 416안산시민연대 깃발 등 내가 연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감사요 감격이었어.


거기 예배 순서에서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를 불렀어. 젊은이 늙은이 어느 교회 어느 교파 상관없이 모인 기독교인들이 외쳤어. "하나님의 명령이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그 시간 기독교란 이름으로 광화문에선 "탄핵 반대!" 예배가 있었으니, 도대체 믿는다는 건 뭘까 엄마? 영원한 숙제 같지?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말고, 해 아래 압박 있는 곳에 함께 하자 기도했어. 약한 자는 강하게 강한 자는 바르게 되길, 추한 자는 정케 되길. 어제 우리 교회 예배에서도 간절히 노래했어.


엄마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브런치북 연재가 이렇게 흘러올 줄은 몰랐네. 엄마 장례 후 이런 시국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맞아, 이게 지금 여기의 삶의 현실이자 진실이지 엄마. 부인할 수도 도망할 수도 없는 현실 말이야. 엄마가 없는 게 너무 아쉬워. 엄마한테 전화해서 서울의 집회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싶더라.


엄마! 새해엔 엄마 딸이 새 책을 시작할 수 있길 바라. 어서 이 시국이 일상을 회복하는 쪽으로 회복되길 바라며, 내 생일 축하로 엄마한테 들리게 힘차게 승리의 노래를 불러 본다.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주 뜻이 이뤄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함이 주님의 뜻이라

해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 주시어 정의가 사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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