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살 잡고 끌고 오다시피 해서

함께 10년째 페미니즘 토론하는 짝꿍이 쓴 모임 후기가 웃겨서

by 꿀벌 김화숙

260115. 목. 8/3


‘찐빵장미’를 시작할 때 남자들이 얼마나 올지 궁금하고 기대도 있었다. 나는 다른 페미니즘 토론모임도 두 개 더하는데, 남성이 없거나 둘 셋, 그나마도 빠질 때는 나 혼자라 아쉬웠기 때문이다. 나도 짝꿍 화숙이 멱살 잡고 끌고 오다시피 해서 꾸준히 했지, 혼자였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는 지난 1년간 변함없이 남녀 수가 비슷하고 남성 출석률도 좋았다. 페미니즘과 여성들한테 무참히 깨지면서도 변명하기보다는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기꺼이 인정하며 토론하는 남성들을 보며 내가 용기를 얻고 배운다. ‘찐빵장미’ 만세!- 덕이


내 짝꿍 덕이 '찐빵장미' 토론 모임에 참여한 소감이다. 진보당 기관지 '너머'가 안산의 '찐빵장미'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실어준단다. 전국 유일의 진보당 페미니즘 분회라나 뭐라나. 모임 지기라고 내가 꼭 글을 쓸 필요는 없겠다 싶어 분회원들의 목소리 한마디씩 모으기로 했다. 겨우 A4 한장에 욱여넣으려니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분량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호기롭게 몇 단락으로 써 낸 벗들은 한 단락으로 줄이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동안 페미니즘 토론하며 기억나는 점, 재미있었던 점 또는 어려움 등.


"나도 짝꿍 화숙이 멱살 잡고 끌고 오다시피 해서 꾸준히 했지, 혼자였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덕이 쓴 소감에서 이 한 문장이 나를 웃게 했다. 멱살 잡혀 끌려와서 페미니즘 토론을 꾸준히 하고 있단다. 덕의 최고 장점 중 하나다. 짝꿍에게 끌려서라도 페미니즘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것 말이다. 지난 10년간 페미니즘 토론 모임 3개에 함께 참여하는 숙덕이다. 이 남성중심 한국에서 남성이 죽었다 깨도 자발적으로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긴 어려운 현실이다. 나처럼 무서운 페미니스트 짝꿍과 함께 살다 보니 덕이는 점점 말 통하는 사람으로 진화 중이다. 글에도 사람 냄새가 점점 나는 게 보인다.


숙덕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다. 아니, 덕이 전생에 나라를 얼마나 크게 구했길래 이 중년에 짝꿍과 페미니즘 토론하는 복을 누릴까. 숙덕이 복이 많아 막내 아들과 한 모임에서 토론하는 거다. 그리고 우리 딸과 숙덕은 '이프'와 '백합과장미'에서 또 같이 토론한다. 그럼 숙이 전생에 나라를 몇 개나 구했을까? 남편과 아들과 딸과 함께 페미니즘으로 소통하니 말이다. (자식 셋 중 큰 놈은 같이 못 하고 있으니, 엄청 구한 건 아닌가 보다.)


덕이 쓴 '멱살 잡고 끌고 오다시피' 어쩌고 이건 이전 같으면 내가 질겁했을 표현이다. 강박적으로 부드럽고 조신한 아내 코스프레하며 살던 때가 있었으니까. 감히 남편 멱살을 잡고 뭘 강요한다고? 어느 집 여자가 그렇게 억세대? 자기검열하기 바빴을 나란 걸 안다. 그러나 이젠 오히려 이런 우스개를 즐긴다. 큰 복이란 걸 아니까. 몸에 밴 가부장성을 거슬러 성평등에게로 기꺼이 멱살 잡혀 갈 용기가 있는 사람인 걸 아니까.


위풍당당 페미니스트 부부 홧팅!

위풍당당 페미니스트 가족 홧팅!

페미 부모와 함께 찐빵장미 토론 함께 하는 우리 막내 아들, 20대 청년 석이가 쓴 소감도 올려 본다.


매월 한 번인데 ‘찐빵장미’는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정신없는 일상에서 헉! 벌써? 하곤 했다. 책이 어려울 때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토론에선 부끄러움과, 답답하던 마음이 해소되는 쾌감을 함께 느꼈다. 회원들도 그런 말 할 때, 재미있었다. 돌아보면 이렇게 다양한 나이대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란 게 가장 귀하게 느껴진다. 작은 모임에도 관점이 많은데 세상엔 얼마나 더 다양한 입장이 있겠는가. 나와 다른 견해를 들으며, 정답은 없구나 싶다가도, 성평등한 세상을 위한 내 목소리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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