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로브스키 반지 146,000원 모녀 플렉스!

난생 처음 스와로브스키 매장에 들어가 크리스탈 세계를 구경한 모녀

by 꿀벌 김화숙

260118. 일. 6/-3


난생 처음 강남의 화려한 스와로브스키 매장에서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세상을 구경하고, 그 속에서 모녀 둘이 같이 나눠 낄 수 있는 크리스탈 반지 세트를 사다.


순전히 즉흥적인 기분과 호기심 덕분이었다. 강남에서 정이 딸 결혼식이 끝났을 때가 3시였고, 4시가 넘어 식사가 끝났다. 모녀 함께였다. 나온 김에 결혼식장 부근 선릉로며 강남의 거리를 좀 쏘다니기로 했다. 높은 빌딩 사이를 목적 없이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 상점 구경하기 좋아하는 모녀니까. 날이면 날마다 오는 곳도 아닌 강남 아닌가. 평소 자주 못 보던 새로운 뭐가 있나 기대하며 걸었다.


"와, 스와로브스키가 여기 있네? 구경해 보자!"

"정말이네? 들어갈 거야?"


세계적인 보석상 스와로브스키 간판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쳤고 딸이 호응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더구나 태어나서 한번도 보석상에 들어가 반지며 목걸이등 장신구를 구경해 본 적도 사 본 적도 없는 우리였다. 어쩌다 특별한 이벤트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파는 스토리가 있는 악세사리 한두개 사 본 정도였다. 나는 36년 전 결혼식 반지 사러 친정 엄마와 함께 가 본 금은방이 전부였다.


1895년 오스트리아의 '다니엘 스와로브스키(Daniel Swarovski)'라는 사람이 "세상 모든 여성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보석을 가질 수 있게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만들었단다. 땅에서 캐낸 보석이 아니라, 크리스털 유리를 정교하게, 나중엔 전기 기계를 발명해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만큼 반짝이는데 다이아몬드와 비교할 수 없이 착한 가격이고 백조가 상징이라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정보였다.


난생 처음 들어가 본 보석상이 세계적인 스와로브스키라니, 설레며 들어섰다. 세상의 모든 목걸이 반지와 귀고리를 모아둔 걸까. 어쩌면 그리 다양하게 반짝이는지. 수백 수천만원을 상상했지만 가격대는 대체로 몇 십만원대였다. 빨간색 초록 분홍 파랑 보라 등 색깔도 상상 이상 다양했다. 박물관에라도 온양 우리는 진심으로 낯선 세계를 찬찬히 구경했다. 1층을 다 보고 지하 매장까지 내려가

'부담 없이 즐기는 다이아몬드'를 맘껏 보았다.


우리가 구경한 가게가 마침 '플래그십(Flagship)'이었다. 원래 해군 함대에서 '깃발을 꽂은 대장 배'라는 뜻이라는데, 그 브랜드의 "얼굴이자 대표 선수" 매장이란 뜻이다. 크고 화려한 매장, 고급 인테리어, 물건이 신상이나 희귀한 물건이 다 있는 곳. 한마디로 "우리가 이 정도다!" 라고 보여주는, 스와로브스키의 가장 멋진 본거지에 우리 모녀가 불쑥 들어와 샅샅이 감상한 셈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걸까. 그 좋은 것들을 보기만 하고 돌아서려니 뒤가 땡기고 아쉬웠다. 들어갈 땐 세상 낯선 구경이나 하자했는데, 나올 땐 맘이 달랐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그냥 떠나기 보단 기념 반지라도 하나 사 끼고 싶었다. 그 많은 이쁜 것들 중에 하나쯤 산다고 세상 망할 것도 아니잖아? 장신구 없이 살아온 우리 모녀가 크리스탈 반지 하나 살 멋진 기회라구!


"가격 착하고 상징적인 기념으로 살 만한 반지 좀 보여 주세요."

"두 개가 세트인데 따님과 둘이 하나씩 나눠 끼면 좋겠네요."


그렇게 컨설턴트가 도와 주었고, 모녀는 요것조것 껴 보다 하나 골랐다. 146,000원에 두 개가 세트인 크리스탈 은색 반지로! 그 매장에 있는 것 중엔 할인 대상이자 단종이라 가장 착한 가격이었다. 모든 게 처음인데 신제품 단종 제품, 우리에겐 차이가 없었다. 반짝이는 것이 우리 손가락에 처음 자리했다. 하나는 내가 왼손 무명지에 결혼 실반지와 함께 끼고 또 하나는 딸이 은색 가락지 낀 중지 곁 검지에 꼈다. 내겐 미리 자축한 생일선물이고 딸에겐 시험 끝낸 축하 선물이라고 우리끼리 의미도 부여하며.


온 몸에 명품을 도배하면 이런 기분일까? 우리 좀 플렉스Flex? 모녀는 위풍당당 매장을 나왔다.


역사적인 날을 그냥 지나칠소냐. 매장 앞 'SWAROVSKI' 간판 앞에 서서 나는 왼손을 딸은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인증사진을 하나 남겼다. 사진에 웃음 소리가 안 찍힌 건 작은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