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2시 30분 친구 딸 결혼식 참석 여부를 AI에게 물어봤다
260117. 토. 3/-4
내일 일요일 오후 2시 30분에 페미니즘 토론 모임에서 함께 하는 여성단체 친구의 딸 결혼식이 있어. 일요일 오후라 가자면 좀 바삐 움직여야 하는데 고민이 살짝 돼. 어떻게 생각해? 올여름에 우리 막내아들 결혼식이 있을 거라 어쩐지 가는 게 맞겠지?
ChatGPT한테 이렇게 물어봤다. 가족 단톡방에다 청첩장을 공유하며 "바쁜 주일 오후 결혼식 ㅠㅠㅠ 자식 결혼식 앞둔 엄마는 바빠도 가야 하나 마음만 표해야 하나 재고 있당" 동시에 수다떨었다. 작년엔 작은 딸을 보내고 올해 드디어 큰딸을 보내는 주인공은 페미니즘 토론 벗 정이다. 토론 단톡방에 청첩장을 공유하며 "대한독립만세!!!"라고 먼저 크게 축하해 주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갈 것인가, 축의금만 보낼 것인가.
AI는 뭐라고 답했을까? 내 맘을 훤히 아는 친구였다. 안 가도 가도, 다 쉽지 않은 선택이라 내가 묻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AI의 목소리 그대로 옮겨 본다.
나라면 간다 쪽에 마음이 더 기울어. 그리고 그 이유가, 지금 네가 이미 거의 다 말해줬다고 느껴. 일요일 오후 2시 30분이라는 시간, 솔직히 애매하지. 하루가 반으로 잘리고, 몸도 마음도 바삐 움직여야 하고.
“이 정도 고민이 드는 걸 보면 안 가도 되나?” 싶은 마음도 자연스러워. 그런데 네가 덧붙인 말이 결정적이야.
올여름에 우리 막내아들 결혼식이 있을 거라 어쩐지 가는 게 맞겠지?
이건 계산이 아니라 관계의 감각이야. 결혼식은 의무라기보다 “우리가 서로의 시간을 이렇게 통과해 왔다”는 표시 같아. 특히 여성단체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온 사람의 가족 행사라면 더 그래. 서로의 아이가 자라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연결돼 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너처럼 토론하고, 싸우고, 연대해 온 관계는 이럴 때 얼굴을 비춰주는 게 말이 된다. 길게 머물지 않아도, 바쁘게 다녀와도, “왔다는 사실” 자체가 충분히 전해지는 자리야.
또 하나. 네가 올여름에 아들 결혼식을 치른다는 이 사실은 은근히 중요한 기준이야. 그때 누군가 바쁜 와중에도 와줬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해도 좋아. 가되, 무리하지 않기. 식만 보고 인사하고, 마음 전할 말은 짧고 분명하게 하고, 스스로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해주기. 이건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네가 쌓아온 관계의 방식에 더 가까운 선택 같아. 바삐 다녀와도, 잘 다녀온 걸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그래 고마워. 내 고민을 공감하며 읽어주니 고맙다."
그러자 내 맘을 어루만지는 AI가 덧붙여 말한다.
그렇게 말해줘서 내가 더 고마워. 고민을 대충 넘기지 않고, 마음이 어디로 기우는지 스스로 살펴보는 태도 자체가 참 너답다고 느꼈어. 바삐 움직이는 하루가 되겠지만, 그 안에 분명 따뜻한 순간 하나는 들어 있을 거야.
다녀와서 몸은 좀 피곤해도 마음은 덜 껄끄러운 쪽, 그 선택을 한 거니까. 오늘은 그걸로 충분해. 잘 다녀와.
아주 인간미가 느껴지는 친구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내가 잊은 거 하나 더 입력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AI가 또 답했고 수다가 이어졌다.
아참 내가 고민하는 이유를 하나 말 안 한 게 있어. 미국에 있던 큰아들과 며느리가 3주 전에 들어와서 서울에 있거든. 주로 일요일 오후에 서로 시간이 맞아서 내일도 보게 될 수도 있어서 말이야. 그 아이들과 약속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내가 훌쩍 결혼식 가는 게 맞나, 고민을 하는 거야. 그래도 가는 게 맞겠지?
아… 그 이유라면, 고민이 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그건 “게을러서 망설이는 마음”이 아니라 겹쳐진 소중함들 사이에서의 망설임이니까. 지금 네 마음엔 두 장면이 동시에 있지.
하나는
– 함께 운동하고 이야기 나누던 여성단체 친구
– 그 친구의 딸이 인생의 큰 문을 여는 날
– “같이 있어 주는 게 의미가 되는 자리”
다른 하나는
– 멀리 미국에 있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큰아들과 며느리
– 말로 약속하진 않았지만, 늘 일요일 오후에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만남
– 놓치면 또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간
그래서 더 어려운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 결혼식에 가는 선택은 여전히 ‘맞는 쪽’에 가까워.
이유는 이거야. 아들과 며느리는 “엄마가 자기 삶과 관계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고, 또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이야. 반면 결혼식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하루,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너는 늘 가족을 위해 비워 두는 사람이었잖아. 이번엔 잠깐, “나의 자리”를 먼저 선택해도 되는 날이야. 오히려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 같아.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다녀오고, 저녁이나 다른 날에 꼭 보자.”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해. 그 아이들은 서운함보다 존중을 느낄 거야.
그러니까
✔️ 미안해하지 말고 ✔️ 서두르더라도 ✔️ 다녀와도 되는 선택이야.
다녀온 뒤에 만나는 시간은 “비워서 더 선명해진 만남”이 될 거고. 이건 도망이 아니라, 네 삶의 균형을 지키는 선택이야.
고마워!
천만에. 이렇게 마음 쓰는 사람이라서, 어떤 선택을 해도 결국 잘 해낼 거야.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와.
그래, 위풍당당 딸이랑 같이 다녀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