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나를 넘어서 너와 손잡고 가는 싸움의 연대

by 꿀벌 김화숙

"아~ 우째 이런 일이! 그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놓쳤어~~~"


광주 짧은 1박 2일 여행 둘째날 아침, 호텔 체크아웃을 준비하다가 내가 소리쳤다. 번쩍 '민주로 285' 이정표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어제 그 지점에서 본 현수막이 떠올라서였다. 내가 앓는 소리로 딸에게 말했다.


"찍어야지 했거든. 근데 주차장에서는 묘역으로 직행했잖아. 까맣게 잊어 버렸어. 지금 가기엔 무릴까?"

하나마나한 질문이었다. 합창단이 모이는 시간까진 이제 한 시간 남짓, 구묘역 다녀올 시간은 아니었다.

"이상하다 했어. 차에서 엄마가 분명 현수막 보면서 말했잖아. 사진을 왜 안 찍나 했다니까."

딸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이런 경우 허둥대는 나를 모른 척하지 않는 딸이었다. 폰을 쥔 딸의 손이 바빠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내 톡으로 어제 본 그 위치의 현수막 사진 한장이 들어왔다. 안타깝게도 내가 필요한 딱 그건 아니었다.

"모야, 딸이 운전해서 전일빌딩245에 엄빠 내려주고 휙 다녀와 줄래? 엄빠 리허설 할 동안 딸은 자유시간 있으니 도와 줘. 주차는 알아서 잘 할 테니 걱정 안 할게. 부탁해~~."


체면이니 미안이니 할 상황이 아니었다. 낯선 길을 나 혼자 운전해서 다녀온다는 건 우리 셋 중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바였다. 덕이 운전해서 이 시간에 같이 갔다 올 일도 아니었다. 다음 날의 설교 준비에 약속 시간 칼인인 그가 그런 무리수를 둘 리 없었다. 남은 선택지는 딸, 차 열쇄를 받아쥐며 딸이 못 박았다.

"이젠 여행가면 아빠, 무조건 엄마가 사진찍을 시간 충분히 주자. 저것도 찍어, 우리가 일러 주자고."


딸은 운전해서 망월동으로 출발하고 숙덕은 공연장소인 전일빌딩245로 여유있게 걸어갔다.



나를 만나는 여행


416합창단 광주 공연 일정에 덧붙인 짧은 여행이었다. 합창단 단체 버스 포기하고 차로 이동해 셋이서 518민주묘역과 상무대 등을 둘러보고 호텔에서 1박했건만, 여유있던 일정에 돌발 변수였다. 합창단 활동 7년 차에 지방 공연과 여행을 함께 즐기는 중인데 말이다. 서울에서만 한번 하던 기획공연이 '찾아가는 기획공연, 별들의 노래일지'로 일곱 도시 순회 공연. 작년 10월 안산에서 시작해, 11월 제주, 12월 원주, 1월 부산, 2월 광주, 3월 세종, 4월 대구까지 달린다.


계획에 없던 변수가 여행의 재미라 했던가?


낯선 장소, 낯선 사람을 만나며 과연 자기 자신을 만나는 여행이었다. 요즘 와서 어찌나 깜빡깜빡 하는지, 글쓰기에 집중하다가 놓치는 게 한둘이 아니더니, 집에서 새던 바가지가 들에 나가서 안 샐 순 없겠다. 딸 덕분에 숙덕은 전일빌딩245 9층 10층 전시도 보고 합창단과 점심도 먹었다. 그 시간에 딸은 망월동에서 찍은 사진을 톡으로 주루룩 보내고, 무료 주차장을 찾아 차를 대고 홀로 금남로를 구경했단다.


"고 배은심 어머니 4주기 추모제, 민주화운동의 한길 배은심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 16일 약속 국민연대, 생명 안전 약속 4.16재단"


이렇게 416가족들이 배은심 어머니를 기억하고 광주 어머니들을 기억하는 공연이었다. 배은심 어머니도 광주 어머니들도 세월호 엄마들에게 손을 주신 분들이었다. 차웅 엄마 김연실 님과 창현 엄마 최순화 님이 토크 시간에 한 어머니들 이야기를 조금 옮겨 본다.


"4·16 합창단은 굉장히 많은 공연을 했습니다. 오늘이 487번째 공연이고요. 초등학교 공연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바로 광주 정산초등학교였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모교이기도 하죠. 제가 지금 차웅이 엄마로 살아가는 건 이한열 열사 어머님 배은심 여사님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아들 한열의 죽음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 제가 힘들고 꾀가 날 때, 그 말씀이 자꾸 생각나서 지금까지 여러분 앞에 있는 거 같습니다."- 차웅 엄마 김연실


"매년 5·18이면 저희 4·16 가족들은 안산에서 총출동해 5월 17일에 망월동 국립묘지를 먼저 참배하고 전야제 참석하고 광주에서 자고 다음 날 기념식까지 하죠. 4·16 합창단도 마찬가지고요. 전날 와서 다음날 5·18 합창제에서 해마다 노래하니 굉장히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도 ‘광주 시민 상주 모임’은 세월호 참사 초기 3년 동안만 상주 노릇하겠다 했는데 12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하고 계세요. 팽목에서부터 계속된 그 행적들을 다 말하기에는, 왜 찬송가 가사 있죠?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다” 라고 할 정도로 많은 거 같아요."- 창현 엄마 최순화


“광주하면 어머님들과의 첫 대면이 생각나요. 2014년도였죠. '5월어머니집'에 저희가 먼저 도착해 마당에서 기다릴 때, 어머님들이 저희들을 보러 상기된 얼굴로 빠르게 걸어오시던 장면이요. "아, 35년 후의 내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에 제 몸에 소름이 돋았었거든요. 그래서 그 느낌을 간담회에서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님께서는 “35년 전 젊었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라고 하셨어요. 눈물의 대화를 나눴던 그때 그 기억이 납니다.”- 차웅 엄마 김연실


"5·18 어머님들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뜨거운 감정을 느낀 기억은 2018년 5.18 전야제 때인 것 같아요. 금남로에 큰 무대가 세 개인가 세워져 있고 가운데 무대에서 5·18 어머님들이 하얀 옷을 입고 노래하셨어요. 저희는 세 번째 무대에 서서 노래했던 거 같아요. 노래를 마치고 저희 4·16 부모들이 5·18 어머님들을 향해 걸어가서 같은 무대에 섰는데 어머님들께서 굉장히 따뜻하게 저희를 안아주셨고, 아까 차웅 엄마 말씀하셨던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창현 엄마 최순화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4.16합창단 공연을 하며 나는 슬픔을 함께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 공연 말미에 부른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는 4.16가족과 5.18가족들의 연대이자, 배은심 어머니와 광주의 어머니들과 세월호 어머니들, 그리고 연대하는 시민들이 서로 잡은 손과 같은 노래다. 이 노래를 합창단과 광주의 관객들이 싱얼롱으로 함께 불렀을 때, 수없이 부른 그 가사가 내 가슴을 새롭게 적시며 파고들었다.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눈을 보고)


그거였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을 때, 38세의 배은심 어머니는 슬픔의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슬픔의 손을 잡고 그는 투사가 되었다. 그의 묘비에 적힌 글을 보자.

"제가 바라보는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이 돼서 민주주의가 한 발짝 씩 온다는 것을 경험을 했습니다. 이 죽음들이 헛되지 않게 역사에 길이 남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2018년 6월 8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추모제에서. 배은심.


광주에 갈 때마다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된 민주주의'를 조금씩 더 알게 되어 좋다. 배은심 어머니가 투사로 뛰어들던 그때, 25세의 젊은 나는 슬픔에게 손을 주는 법을 몰랐다. 2014년 내 나이 52세, 세월호 참사로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이 우리 막내 아들과 같은 학년이었다. 그제서야 광장에 선 세월호 어머니들에게 내 눈이 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손을 주고, 눈물젖은 눈을 바라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눈을 보고."


광주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90세로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20년 전에 간암 간경화로 큰아들을 잃은 엄마. 생전에 나는 아들 앞세운 엄마의 그 슬픔에 손을 주지 않았다. 제발 좀 아들 생각 그만하라고 잔소리하는 딸이었다. 세월호 부모님들 곁에서 노래하며 자식 잃은 엄마에게 손을 주게 됐다. 이제야 엄마의 젖은 눈을 바라보는데, 여기 엄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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