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 수거 대작전

그 여자는 왜 프라이팬을 그렇게 사용했을까?

by 꿀벌 김화숙

화면 속 한 여자가 프라이팬을 고르고 있다. 오른손으로 프라이팬 손잡이를 잡고 정성스레 부침개를 공중에서 뒤집는 동작을 반복한다. 카메라가 방향을 바꾸면 또 한 여자가 프라이팬을 고르고 있다. 이번엔 오른손에 잡은 프라이팬을 힘껏 들어 올려 아래로 후려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 아래 이런 자막이 뜬다.


"세상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들이여, 정신 차리고 잘 고르시길."


또 다른 영상엔 프라이팬 고르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남자는 쇼핑카트를 밀고 서 있고 그 옆에서 여자가 프라이팬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여자는 프라이팬으로 부침개 뒤집는 동작을 반복하며 고른다. 그리곤 남자 뒤에서 그 프라이팬으로 남자 머리통을 내려치는 시늉을 하다가, 슬며시 카트에 담는다.


'프라이팬 사용 설명서'라고 제목을 붙여 본다. 혹은 "집에서 프라이팬을 싹 다 치워라!"는 어떨까? 혼자 제목을 붙이며 쿡쿡 웃는다. 세상에 있다는 '두 종류의 여자'라는 자막을 다시 돌려서 본다. 글쎄, 과연 그럴까? 내가 볼 땐 그 여자가 그 여자구만. 내 눈엔 두 종류의 여자 보단 두 종류의 남자가 보이는 거 같다. 웃다가, 혼자 생각한다. 이런 짤 만든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걸까, 생각하니 슬퍼진다.


숙덕 부부에게도 그런 프라이팬 사용 설명서가 있었다.


프라이팬 수거 대작전

10년도 훨씬 전, 서너 가정이 우리 집에 모이던 대안적 가정교회 시절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날 예배 설교에 덕이 예화로 끌어온 이야기에 내 맘대로 제목을 붙이자면, '프라이팬 사모님' 정도 되겠다. 그의 친구 목사 중에 교도소 사역하는 분이 있는데, 그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덕이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청주 교도소 여성 수감자들 중에 목사 부인 장군 부인이 많다더라. 왜 그럴까? 목사 사모 중엔 남편이 잘 때 프라이팬으로 때려죽여서 살인죄로 복역하는 사모님이 있다더라..." 어쩌고 저쩌고 했다. 예화도 그랬지만, 맥락도 문제적이었다. 당대의 종교 정치 지도자들을 본받지 말라며 한 예수의 가르침 "너희는 섬기는 종이 돼라"에 프라이팬이 등장한 것이다. 해석자요 정리자로서 그가 말했다. "권위적인 남편 목사의 문제, 그 남편을 위해 더 기도하고 더 낮아져 대화로 섬겼으면 좋았을 사모"라고 했다.


저건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당신은 절대 그런 남편 아니라 믿는 걸까?

더 기도하고 더 친절한 대화는 아내만의 책임일까?

칼이 아니라 프라이팬이 살인의 도구도 되는구나.

얼마나 참았으면, 오죽하면, 분노가 얼마나 폭발했으면....


설교를 듣는.동안 내 속이 낯선 불편함으로 와글거렸다. 내 눈에 프라이팬이 어른거리고, 우리집 프라이팬들 거치대를 힐껏 하게 되면 프라이팬을 들고 남편을 후려치는 여자의 환영도 보이는 거 같았다. 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예배 후에 서로 소감을 나눌 때도 밥 먹을 때도, 프라이팬만 계속 생각했다. 벗들이 다 돌아간 후, 내가 덕에게 말했다.


우리 부엌에 프라이팬이 몇 개인 줄 알아?"

덕이 무슨 시시한 질문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더니 떠듬떠듬 말했다.

"글쎄? 서너 개 되겠지? 큰 거 작은 거, 궁중팬, 뚜껑 붙어서 양면으로 뒤집을 수 있는 빨간 거..."

"잘 아네?" 내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아니네, 하나 더 있던가?" 그가 프라이팬 숫자를 제대로 세어 보겠다는 듯 부엌 쪽으로 가며 말했다.

"잘 가네. 가는 김에 거지 있는 프라이팬 싹 다 좀 어디로 치워버리면 좋겠어."


그가 나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왜?무슨 소리야?"

내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프라이팬 안 무서워? 내가 프라이팬을 집어들 거 같은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편하게 프라이팬 이야기를 하지?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고 무감각인지 이해가 안 돼. 지금 프라이팬 수거 대작전을 할 때 아냐?"

늘 그래왔듯, 내가 이런식으로 훅 나가면 그는 몇발 뒤로 물러났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그는 알고 싶지 않은지, 알까 봐 무서운지, 티키타카를 기대하면 내가 숨 넘어가기 딱이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침묵이다.


나를 향해 의아한 얼굴로 다가오는 그에게 나는 쉬운 말로, 나 화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내 마음이 지금 그렇다는 거야. 내가 프라이팬을 집어들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당신은 안 무서워?"

그 후에 우리가 어떤 대화를 이어갔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그가 몹시 당황했고 이해할 수 없어 했다는 거 뿐이다. 작전명 프라이팬 수거 대작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청주교도소에 수감된 그 사모의 마음이 나는 확 이해되었다는 말만 반복했고, 그는 억울해했다.


그래, 그건 분노의 서곡

아주 작은 교회 적은 성도와 함께지만, 남편은 평생 목회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대학 시절 선교단체에서 시작된 사역자의 삶을 40년 계속하는 중이다.(그의 짝꿍이란 이유로 나는 '목사 사모'로 불린다.) 30대엔 해외에서 직장 일과 작은 공동체 목회를 병행했다. 국내에선 세 아이들 키우느라 10년 정도 용역회사에 다니는 투잡 목사였다. 아파트 청소, 건물 청소, 수목 소독, 건물 소독 등, 현장 일도 하고 작업자들을 관리하는 일도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독립하면서 몇 년 전부턴 전임사역만 하고 있다.


그의 주된 일은 설교다. 내가 하는 일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이 남자의 말에 '권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내가 존경하지 않는 남자의 말을 누가 귀담아듣겠는가. 자기 가정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목사의 설교란 얼마나 미심쩍은가. 나는 최고의 청자로, 그의 체면을 살려주는' 좋은 아내'로 살고자 했다. 오호 통제라, 목사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상 돌아가는 원리가 그랬다. 나는 할 말을 참고 사는데도 그는 늘 내가 센 여자라 했다.


프라이팬 예화는 그가 '빻은' 소리할 때가 가장 문제였다. 지금이야 그가 페미니즘이다 성평등이다, 신문물을 받아들여서 헛소리를 잘 안 하지만, 10년 전까진 그도 남성중심 가부장 귀남이었다. 여자란 엄마와 누나들밖에 모르는 남자였다. 그를 귀히 여기고, 그를 우선하고, 일구월심 뒷바라지해 주는, 그의 위성, 아바타, 비서, 대변인이 나란 존재였다. 그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대놓고 반박하기보다, 은밀하게 부드럽게 '아뢰어야' 했다. 그러나 세월이 나를 속이니 내 생각이 달라지는 걸 나도 막을 수 없었다.


고분고분 친절하려 애쓰던 '현숙한 새댁'은 점점 호랑이로 자라고 있었다. 그의 뜻만 따르며 그 품 안에만 머무르기엔 그가 너무 작다는 게 문제였다. 답답한 내 맘은 여성신문과 책과 영화가 달래주었다. 그날의 "프라이팬 싹 다 치우는 게 좋겠어"는 대폭발의 서곡이었다. 사적 공간 공적 공간, 그 이분법이 무너지고 있었다. 내 안에 응축된 분노 게이지는 건드리면 터질 준비가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