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도 위풍당당 새 길로!

성평등 설명절 문화를 상상하며

by 꿀벌 김화숙

260210. 화. 흐리다늦은오후살짝비. 3/-1


설명절이 다가오니 고민하게 된다. 성인 자녀들과 어떻게 모두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을까.


명절에 관한한 나는 참 주체적으로 살지 못했다. 50대가 되도록 명절마다 시집에 가서 맏며느리 명절노동하는 게 전부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애 셋에 직장일에, 그 고단한 일상에 명절은 더 고달픈 시간이었다. 장거리 귀성길을 달려, 시집 부엌에서 명절을 다 보내고 또 장거리 돌아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게 마치 금과옥조 진리인양 침묵 속에 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비현실로 느껴질 정도다.


우리집에 새며느리들이 그런식으로 명절을 보내러 온다고 상상해 본다. 귀한 시간을 내 부엌에서 밥이나 하고 가족들 뒤치닥거리나 하다가 돌아간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손자들 낳아서 데리고 왔다고 상상해 본다. 아이들 키우랴 직장 일하랴 잠도 제대로 못 잤을 젊은이들을 새벽부터 명절노동하게 한다? 그래서 무슨 영화를 보았을까? 내집에서 그런 스릴러를 찍어서는 안 된다.


내가 결혼 36년이 되도록 시집 쪽 사람 그 누구와도 인간다운 관계를 맺지 못한 이유가 뭘까? 내가 사회성이 부족해서? 내가 덕을 사랑하지 않아서? 천부당만부당이다. 명절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탓이다. 나는 시집에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실감을 하곤 했다. 그 낯선 공간에서 나는 개성도 지성도 감정도 없는 일꾼 같았다. 그곳에 가면 나는 이유없이 몸이 아팠고 변비와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돌아보면 명절증후군이었고 신체화 증상이었다. 나는 내 의지에 반해서 하는 일을 못 견뎌했다. 목소리 없는 존재로 알 수 없는 어떤 질서에 복종해야 할 때 삭신이 아팠다. 시엄마가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하는 공간, 그 곁에서 뭐라도 해야 했다. 내 몸도 마음도 내 것이 아닌양 불편하고, 나는 소외를 느꼈다. 내 가슴에는 할 말이 와글거렸지만 그곳에서 나는 침묵했다. 나는 말하는 존재도 생각하는 존재도 아니었다.


내집에서는 그따위 명절 문화는 없어야 한다. 며느리도 아들도, 딸도 사위도, 엄마도 아빠도, 그런 명절은 몰라야 한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겪은 그 말도 안 되는 성차별과 가부장적 문화를 '전통'이라며 지키랴. 누구를 위한 전통이라더냐. 나이 60대면 남 따라 명절 쇨 이유 없다. 이젠 전적으로 내가 만드는 거다.


그래서 나는 설이 다가올수록 고민하고 상상한다. 어떻게 모두를 위한 명절, 모두에게 즐거움과 쉼이 되는 명절이 될 수 있을까. 이 시대 설은 뭐고 가족은 뭐냐고. 차례 따위 어른 따위 위계 따위는 개나 주라 그래. 모두를 위한 성평등과 존중과 소통의 명절, 새로운 가족 명절 문화를 만들어 볼 일이다. 누구나 한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번은 길을 만든다. 설명절도 위풍당당 새 길로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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