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곳을 짓밟아

광주에서 쓴다

by 꿀벌 김화숙

260227. 금. 흐리고 아주 간간이 여우비.


짝꿍과 딸과 함께 셋이서 광주에 왔다. 내일 오후 4시 구 도청 앞 전일빌딩 245에서 416합창단 공연이 있어서다. 평소 합창단 공연은 주로 단체 버스로 이동하는데, 지난번 부산 공연 때처럼 숙덕은 차로 따로 딸과 함께 왔다. 짧은 망중한 여행으로.


아침 6시 40분 서울 혜화를 출발해 11시 20분 도착해 점심을 먹은 후 저녁까지 국립 518 민주묘지와 망월동 구묘역, 그리고 상무대 518 자유공원을 둘러보았다. 저녁 먹고 금남로 가까운 호텔에 들어왔다. 씻고 수다떨고 각자 컴 앞에 앉으니 9시가 넘었다.


최근 몇 년은 해마다 5월에 광주를 다녀간 거 같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광주는 매년 또는 자주 오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솔직히 민주 묘역의 그 많은 비석을 언제 다 읽어 볼 수 있을꼬. 여러 번 와도 아직 한 번도 들르지 못한 무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의 기억이란 흐려지고 무뎌지는 것. 내 삶의 정황과 맥락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도, 같은 공간이라도 다르게 보이고 느껴질 수 있어서다.


오늘도 한 분 한 분 한 걸음 한 걸음이 새로웠다. 윤상원, 문재학, 전옥주, 리영희... 비석에 새겨진 생몰연대에서 1960년대를 보면, 그리고 나보다 더 나중 태어났다가 광주에서 스러져간 분들 앞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됐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음에 이분들에게 빚졌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무명열사의 무덤, 희생자 중에 아직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분들, 실종자로 남은 분들도 자꾸 돌아보게 됐다.


오늘 가장 맘이 강하게 움직인 공간은 구 묘역 바닥에 깔린 전두환의 민박 기념비 조각을 밟을 때였다. 수없이 밟고 지나간 공간이지만 오늘은 또 달랐다. 사람이 거의 없는 고요한 묘역에 우리 셋 뿐이라서였다. 맘 놓고 전두환이라는 이름자와 비석 조각을 한참 욕하며 짓밟아줄 수 있었다. 그 곁에 세워진 안내 판 앞에서 인증숏도 찍고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현장" 팻말 내용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다.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현장

민족의 반역자요 광주민중 학살과 자주 민주 통일의 원흉 전두환이 자기 죄를 은폐하고자 학살 현장인 광주를 방문하지 못하고 1982년 3월 10일 담양군 고서면 성산 마을에 잠입하여 민박 기념비를 세웠다.

이데 복받쳐 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을 참을 수가 없어 1989년 1월 13일 이 비를 부수어 이곳에 묻었나니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곳을 짓밟아 통일을 향한 큰길로 함께 나아갑시다.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1989년 1월 13일


내일 그 어느 공연 때보다 위풍당당 노래하리라.




누가 그날을 모른다 말하리

고정희


넋이여,

망월동에 잠든 넋이여

하늘이 푸르러 눈물이 나네

산꽃 들꽃 피어나니 눈물이 나네

누가 그날을 잊었다 말하리

누가 그날을 모른다 말하리

가슴과 가슴에서 되살아나는 넋

칼바람 세월 속에 우뚝 솟은 너

진달래 온 산에 붉게 물들어

꽃울음 가슴에 문지르는 어머니

그대 이름 호명하며 눈물이 나네

목숨 바친 역사 뒤에 자유는 남는 것

시대는 사라져도 민주꽃 만발하리

너 떠난 길 위에 통일의 바람 부니

겨레해방 봄소식 눈물이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