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도 12가지 색 페인트마카를 칠해 보자
260304. 수. 맑음. 12/-3
서울 우리 교회 친구인 난수와 안산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차도 마셨다. 지난 일요일 교회에서 만났을 때 난수가 "화숙이 수요일 바빠?"라고 물었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오늘부터 8주간 안산으로 강의하러 오가게 되는 난수가 첫날 나와 점심을 먹자는 데이트 신청이라서였다. 난수가 작년엔 여성단체 울림에도 가입하고 글쓰기 모임도 함께 하더니, 이젠 나와 단둘이 만나자는 말도 하는구나. 정말 기뻤다.
아침에 걸어서 미디어도서관에 가 2시간 남짓 글 쓰다가 시청까지 걸어갔다. 샛바람은 있었지만 3월의 햇볕이 따사로웠다. 강의 끝나고 나오는 난수와 만나 내가 잘 아는 '콩사랑맛사랑'에 가서 9천 원짜리 비빔밥 청국장을 먹었다. 내가 밥값을 냈고, 난수가 스타벅스에서 차와 후식을 샀다.
"화숙이 책을 내가 읽었지만 내용을 10%도 이해하지 못한 거 같아."
오늘 난수한테 들은 것 중 가장 인상에 남은 말이다. 이런 겸손한 표현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이런 충격적인 말이었다. 난수는 대학에서 인문학과 글쓰기를 강의하는 박사님이다. 문해력이 딸려서 내 책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만큼 나라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많았기 때문이란다.
"8년 전에 우리 교회에 처음 온 날,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내가 너무 충격을 받았거든. 그동안 보아 온 목사 사모에 대한 선입견이, 조용하고 자기주장 안 드러내는 사람이었는데, 화숙이는 자기 말을 했잖아...."
그거였다. 8년간 나를 지켜본 소감인 셈이었다. 처음에 '무슨 목사 사모가 저래?'여서 내게 쉽게 마음을 열기 어려웠단다. 내가 페미니즘 토론모임 만들어서 교회 안팎의 사람들과 함께 할 때, 강요받는 기분이었단다. 나는 어떤 강요도 없이 자리를 만들었을 뿐이지만,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잘 참석 안 하던 난수는 재작년부터 1년에 한 번 토론 진행도 하고, 몇 달 전부턴 토론모임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화숙이를 이 사회에서 만났으면 훨씬 더 빨리 친해졌을 거야. 재미있는 사람으로, 새로운 걸 배우고 관계도 더 확장되고 좋은 친구로 지냈을 거야. 그런데 교회 안에선 오직 목사 사모로만 본 거 같아. 사모가 뭐라고, 도대체 왜 그런 벽을 뒀는지, 화숙인 처음부터 친구 하자 그랬는데, 생각할수록 미안해...."
감사 또 감사로다. 8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고, 깊은 위로와 지지를 받는 시간이었다. 난수와 나는 서로 지지와 위로를 주고받았다. 성격도 개성도 학벌, 난수 말마따나 목사 사모와 성도, 그게 뭐라고, 그렇게 다를까? 그런 거 떼 버리고 사람과 사람으로 친구 하자고 우리가 평어 쓰는 거 아니겠다. 초록은 동색이다.
삶에도 12가지 색 페인트마카를 칠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