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여행 고마워! 사랑해!

1박2일 목포 여행에서 돌아와서

by 꿀벌 김화숙

260401. 수. 흐림. 17/4


1박2일의 짧고 굵은 목포 여행을 마치고 숙덕은 서울과 안산으로 다시 갈라졌다. 안산 집에서 짐 정리하고 잠시 쉬었다가 덕은 혜화로 떠났다. 서울에서 내일부터 집중력을 발휘해 부활절 주일 설교 준비하겠지. 목포에서 사온 꽃들을 화분에 심어 돌보는 일도 하겠지. 부레옥잠을 교회 앞 항아리에 띄워놓고 자겠지. 나는 내일부터 안산에서 활동가요 작가로 바쁜 주후반을 살고 토요일 늦게나 서울로 가게 되겠지.


아까 11시 좀 전에 광화문 앞이라며 덕이 전화했다. 늦은밤은 차 안 밀리고 1시간에 주파했다는 게다.

"목포 여행 많이 고마워! 사랑해!"

1박2일 여행 동안 우리가 나눈 대화와 보고 느끼고 함께한 모든 것에 대한 감사였다.

"그래! 사랑해. 아무리봐도 너무 복받은 놈이여!"

우리끼리만 아는 암호였다. 점점 같은 언어를 쓰며 소통하는 즐거움이었다.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알고 그가 고백하면 나는 그 복 잘 누리라는 듯이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맞장구를 치고 또 핑퐁핑퐁한다.

"그래! 내 복이니 시기하지 마! 내꺼야!"

"하하하 복 받은 놈 옆에 있으니 그복이 내 복이기도 한 거 아냐?"

"아하! 그렇구나. 고마워."

그렇게 내 탈고기념과 4월맞이 숙덕의 짧은 여행이 마무리됐다.


목포에서 본 것중 몇 개만 기록으로 남겨 본다.


1. 벚꽃은 만개해 가고 흐드러진 동백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중에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붉디붉어서 떨어진 동백꽃 나무 아래에선 자꾸 걸음을 멈추게 됐다. 목포 근대역사관1,2를 보고 나니 더 그랬다. 아픈 시대를 살던 민중의 피같기도 하고, 싸우다 스러져간 사람들의 혼인양,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진도 팽목항 등대와 세월호기억관,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바람에 나부끼던 노란 리본들과 겹쳐, 세월호의 별들이 붉은 꽃으로 땅에 내려온 것처럼 보였다. 목포는 동백꽃이었다.


2. 식민지 역사 현장을 걷고 만지고 이야기하고 볼 수 있었다. 과연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근대사의 중심지, 목포"였다. 역사는 역시 다시 기억하고 다시 공부하는 게 맞다. 목포근대역사관 1이 특히 그랬다. 목포 개항 이후 일본의 영사업무를 위해 1900년 1월에 착공, 12월에 완공된 건물이다. 영사관,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활용되다가 해방 후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으로 활용됐고, 현재 목포근대역사관 1이 됐다. 그 앞에 소녀상이 있었다. 식민지 역사 흔적을 다 부숴버리지 않고 그대로 둔 게 고마웠다.


3. 목포근대역사관1 뒤 유달산자락에 방공호가 그대로 있어 충격이었다. 직접 굴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전쟁준비의 흔적, 방공호를 만들어놓고 한반도를 지배하려 야욕을 부린 일본. 폭격에서 지들은 살아보자고 조선사람들을 잡아다 굴을 파게 했다는 거다. 취사시설과 공기정화시설까지 해놓고 장기전을 대비한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유달산 말고도 고하도에도 방공호가 있고, 제주도에는 훨씬 많다는 걸 안다. 전쟁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4. 진도운림산방도 인상적이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일가 직계 5대의 화맥이 200여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화맥의 산실이라는데, 운림산방 그 존재를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조선 말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 선생이 49세인 1856년 고향인 진도에 내려와 그림을 그리고 저술활동을 하던 곳이란다. 그 아들에 아들로 5대 화맥을 이었으니 특별한 경우 맞다. 하지만 나는 운림산방을 거닐며 전시물을 보며 그곳에 살았을 여성들을 생각했다. 화려한 5대는 오직 남자들만의 기록이었다. 그들의 엄마 누이 아내 누구라도 여성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이 남자들은 무성생식했나 봐. 잘들 나셨어." 허탈한 탄식이 자꾸 나왔다. 지독한 가부장적 문화를 자랑하는 꼴이 보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