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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교사 Nov 02. 2019

첫사랑의 졸업식

첫사랑은 떠나고, 나만 남았다.


교사생활 3년을 가득 채워가던 즈음, 올 것이 왔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5년,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는 항상 입학이라는 시작과 졸업이라는 끝이 있었기에 그 리듬에 익숙해진 나에게 임용과 발령을 시작으로 3년이 지난 즈음에는 의례껏 졸업을 해야 할 것 같은 뭔가 애매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발령 첫 해에 나와 함께 입학한 내 첫 담임반 아이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줄곧 1학년 담임을 했기에 중2, 중3이 된 첫사랑들의 모습을 다소 멀리서 바라봐왔는데 이따금씩 복도에서 만나면 키가 훌쩍 크고 성숙한 모습으로 꾸벅 인사하는 모습에 대견함과 신기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 졸업을 한다. 


첫사랑들이 입학하던 날, 교실에 앉아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교실을 빠져 나가는 아이들에게 교직생활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으로 장미꽃 한 송이씩 선물했다. 그들의 입학을, 그리고 나의 시작을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서. 



우리의 성장드라마

그리고 3년 동안 아이들도, 나도 참 많은 변화와 성장을 겪었다. 성장 드라마가 그러하듯 아이들과 나의 시나리오는 너무나도 다이나믹 했다. 윌리암 블레이크의 순수의 노래와 경험의 노래에서 나타난 성장을 통해 순수함이 경험이라는 어른으로 변하는 과정을 눈 앞에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또한 현장과 시간이 주는 배움은 어마어마했다. 수업하다가 잘못 알려준 게 있으면 너무나 미안해서 하루동안 속앓이 하다 다음 날 수업 때 정정해주고, 아이들끼리 싸워서 부모님에게 전화라도 할 때면 떨리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선배 선생님들이 이미 알려준 공문 쓰고 회수하는 시스템에 적응을 못해서 퇴근도 못하고 끙끙 대고, 상상하지 못했던 학교 내의 사건과 사고들로 이론으로 배운 응급처치라는 걸 하고, 밥 먹을 친구가 없어 점심을 못 먹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밥 먹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같이 먹기도 하고, 반에서 사이버 폭력 사안이 발생해서 학교폭력위원회에 참석해서 의견을 이야기하다 핑 도는 눈물을 꾹 참기도 하고, 행정적인 절차를 잘 못 챙겨 불편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센 척도 했다가, 무관심한 척도 했다가, 괜찮은 척도 했다가 그렇게 ‘이번 생에 교사는 처음인’ 내가 나름의 방향과 사명감을 원동력으로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렇게 3년의 학교 생활을 해오다 그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줌아웃

누가 말했다. 직장의 권태기는 3, 5, 7년 차에 온다고. 내가 느낀 감정은 권태기는 아니었다. 그냥, 뭔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관성처럼 졸업해야 할 시기인데, 졸업생 명단에 이름이 없는, 졸업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 주는 이상한 압박감이었다. 아, 두려움 이었던 것 같다. 졸업을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 같은데, 뭔가 멈추는, 안주하는 것 같아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랄까. 그 불안감 덕에 하루하루 벌어진 일을 쳐내고 벌린 일을 해나가며 미시적인 관점으로만 보던 내 인생에 대해 다시 줌아웃해서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날의 차분함

정작 당일에는 참 마음이 차분했다. 아이들의 졸업식을 바라보며 단 1초도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나아가는 그 길에 대한 응원과 격려의 마음으로 가는 길을 배웅하고 인사했다. 선물을 하고 싶어 고민을 하다 양말 한 켤레 씩 준비해서 카드를 적어 어수선한 졸업식장에서 아이들에게 전해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생각지 못했던 인사였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쳐다보며 감사하다고 하던 얼굴들이 생생하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나는 잊고 싶은 흑역사를 기억하는 달갑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고 싶은 욕심은 없다. 나도 나의 중학교 선생님들의 많은 면을 기억하고 찾아뵙고 하지 못한다. 그 때는 우리의 현재 였던 그 시간이 모이고 쌓여 그 때는 미래였던 지금을 만들고 또 나아가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박수치며 보내주다

첫사랑들을 보내며, 주위의 충고에 휩쓸려 나이가 젊어 아이들에게 쉬워 보일까봐 실제보다 몇 배는 더 엄근진하게 대했던 신규교사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사람을 대하는데 정도는 없다는 것 하나를 알게 된다. 교사와 학생이기 전에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에, 생긴 결 대로, 만난 모양대로 부딪히고 통하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수많은 학생과 교사 중에 이렇게 만난 건 엄청난 인연이라는 것과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고 되뇌이며 마음 속 졸업식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리고 나는 아직 학교에 있다. 형식적인 졸업식을 하지 않아도 계속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함 또는 아무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 걱정이 왜 안 되겠는가. 그러나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걱정 뿐만 아니라 희망도 기대도 있음을 알기에 희망과 기대를 품고 고민을 한다. 동시에 나의 틀이 깨지는 배움과 경험도 계속 되고 있다. 고민을 한다고 항상 답에 도달하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는 선물들이 어마어마 하기에 적극적으로 고민한다. 내가 체험한 배움을 내 수업에 적용시켜 설계하고 실행하고 수정해나가는 게 나에겐 참 재밌는 일이자 놀이다. 그렇게 판을 벌이면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기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인간은, 아니 나는 참 모순 덩어리다. 새로움을 원하면서 안정감을 원하고, 안정감을 원하면서 새로움을 원한다. 그 모순을 인정하고 마주하며 나는 오늘도 배우러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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