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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교사 Mar 23. 2022

대학 안 갈 거야?!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 지승완 학생에게 던진 교사의 물음 


서재경 앵커: 요즘 화제의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의 12화 장면 속 대사에 평범한 일반인 시청자가 돌연 본인의 사회적 자아가 소환되어 갑자기 손발이 떨리고 오한을 느끼며 마음에 용암이 터졌다고 합니다. 자세한 상황 현장에 나가 있는 백이진 기자가 전달하겠습니다. 백이진 기자 - 


백이진 기자: 현장에 나와있는 백이진기자입니다. 12화 속 폭력교사가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폭로한 학생 지승완에게 네가 한 짓은 퇴학 감이라며, 학생을 '교육'한다는 명분 아래 사과를 하면 용서하겠다고, 그럼에도 굽히지 않는 학생 지승완에게 마지막 카드로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습니다.


"대학 안 갈 거야?!"

이에 방구석에서 온 감각 곤두세워 드라마의 이야기에 흠뻑 취해 몰입하며 시청하던 일반인 시청자가 돌연 사회적 자아, 부캐인 교사로서의 정체성이 튀어나와 같은 교사(?)로서 정말 쪽팔리다 못해 짜증이 매우 많이 나서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 본인이 지승완 학생 대신 교사의 고 조동아리에 시원하게 죽빵을 한 서너 대 날리고 싶은 순간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스크린에 주먹 날리면 자신의 소중한 손이 아야 하고, 비싼 스크린이 아야 하면 자신의 마음과 지갑은 더 아야 하니, 그것은 실행하지 못하고 '아놔, 나 열 받았숴... 대학 안 갈 거냐고? 안 가 ㅅㅂ...'라고 마음으로 읊조렸다고 합니다. 현직 교사 열폭하게 만든 작가님의 능력에 박수 세 번 드린다며, 본인의 저급한 대사와 달리 우리 지승완 학생이 또박또박 아름다운 워딩으로 날린 다음의 대사가 시청자의 마음에 사이다 2.5L에 상응하는 청량감과 쾌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화제의 대사를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이상 UBS 백이진 기자였습니다. 


"대학이요, 가야죠. 

그런데 이딴 학교 졸업장 들고는 쪽팔려서 못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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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진 기자의 목소리로 정리하는 요즘 교사, 나의 화남이다. 이에 대한 지승완 학생의 받아침은 정말 시원했다. 나이스 샷 (박수*10,000) 살아보니 고등학교 졸업장 중요하더라 야, 그것도 내 서사거든. 넌 그걸 그때 벌써 깨우쳤니. 브라보! 



요즘 교사도 당신 말에 화났다구욧!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면 그만이지, 뭘 또 이렇게 열 받아 타자를 두들기냐 하겠지만 워낙 모든 일에 진심이라, 특히 선생질에 진심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가 참 대단하다. 학교물을 적극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매주 목이 빠져라 기다리며 보고 있지 않는가. 주인공들이 교복 입고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니. 그렇다. 교사라는 사회적 자아를 가지고는 단순하게 학교물을 바라보기가 힘들다. (내가 유별난 것일 수도 있다.) 왜냐면 대부분 미디어 속 학교는 구리니까. 지금 시대가 아니라는 시간이 주는 거리감 때문일 수도 있지만, '교복'이라는 나의 아킬레스건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한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남주가 잘생겼고, 연기를 너어어어무 잘하고-인물 공부를 정말 많이 하나 봐-, 여주를 비롯해 조연까지 캐릭터들이 너어어어어어무 사랑스럽고, 대사들이 주옥같고, 개연성이 쫀쫀하고, 각도며 화면의 색감이며 너어어어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냥 좋다. 




학교물이 싫은 교사의 변명: 텔레비전 속 학교는 왜 맨날 구려 

'범죄도시' 이후, 조선족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범죄'가 되었고, '도가니' 이후로 아동보호시설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도가니'가 되었고 '부당거래' 이후, 검사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부당거래'가 되었다. 절대적인 수치보다 '사회적 분위기'를 말한다. 미디어의 힘을 알기에 미디어의 소재가 되는 순간 그것이 보통 이상의 이미지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은 보통 '그런'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기득권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언제나 도마에 오를 준비가 되어야 하고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도 할 말이 없는 곳이다. 나는 '그런 곳'에 소속된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건설적인 의견은 분명 있으나 욕받이나 화풀이 대상이 되기 일쑤인 상황을 마주하면 맥이 풀리기도 한다. 게다가 미디어의 소재는 대부분 자극적이고 '그 드라마'의 파급력 하나로, '그 영화'의 인기 하나로 실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가는 구성원의 노력이 깡그리 아닌 게 되어버린 것 같아 보기 힘들 때가 있다. 일선에서 보는 '학교'는 정말 많이 변했고 '좋아'졌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뭔가 그게 다 아닌 게 되어버리는 기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런 건 그런 것 대로 흘려듣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툴툴 털어버리고 아이들과 학교를 마주한다. 사실, 그런 생각에 잠기는 것도 잠깐일 뿐 학교는 항상 너무 아주 많이 이런저런 사소한 일로, 저런 이런 대소한 일로 바쁘다. 그러다 문득 학교에 대한 생각을 마주하는 시간은 학부모님들의 한 마디다. '와, 요즘 학교 저희 때랑 다르네요!' 그때 문득 깨닫는다. 나는 학교를 떠나본 적이 없지만, 다른 성인들에게 학교는 '그때'의 학교겠구나. 그래서 '그런' 시선들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아무튼 더 나아져야 한다는 채찍질로 알겠으나, 가끔, 아니 자주 다 저렇지는 않다는 걸 대중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그렇다. 나는 오지랖이 조금 많이 심하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근데 이번 학주 선생님의 '대학 안 갈 거야?!'라는 대사 아니 협박은 듣자마자 정말 화가 났다. 폭력이나 체벌은 이제 학교 현장에서 사라졌지만 저 무자비한 '대학 협박'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저 한 마디에 순한 강아지 눈을 하고 스크린을 바라보던 시청자가 갑자기 퐈이어를 눈에 품은 이글이글 아이즈로 돌변한 것이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저렇게 무식하게 말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고자 대학으로 협박하는 치졸한 교사는 없다. 아니 있어도 그건 바로 '신고'감이고 현재 시스템은 승완이가 겪은 시스템처럼 경찰에 신고하면 다시 학교로 접수되는 그런 20세기 시스템이 아니다. 확고한 매뉴얼이 있다. 되려 교사가 학생에게 '당'했을 때의 시스템이 허접하다. 그래서 요즘 '그런' 일을 처리하는 보험 가입이 교사에게 필수라는 걸 사람들은 알까. 유토피아는 없지만 하나의 사건이나 하나의 공간에는 아주 다방면에서 다각도의 시선으로 봐야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는 됐고 아무튼 아직도 '대학입시'라는 협박 아래 아이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게 결국 '자의'가 된다는 것이다. 사회에 의해 한 번, 그것에 순응하여 두 번, 아이들은 기꺼이 '대학 협박'을 받는다. 



생기부 생기부 생기부 

중학교를 선호하는 것은 그나마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이진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금수'와 함께 생활한다는 점에서 신체적 정신적인 힘겨움은 있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뭘 할 때 45도로 올려보며 '생기부 들어가요?'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 아직 키가 덜 커서 보통은 올려다본다. - 그래서 인지적, 정의적 역량을 모두 고려하며 수업과 활동을 짜고 실행할 때 수업다운 수업을 할 수 있고 나도 아이들에게 많이 배운다. 고등학교에서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내가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추가된다. 바로 '효율'.  '대학'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교사와 학생이 똘똘 단결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효율'을 가지고 달려간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단지 정량 점수만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는 것. 이게 아이들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고 교사에게도 창의성을 끝없이 요구하는 부담이기도 하지만 생기부 시스템이 되고는 수업시간에 판을 짜고 함께 생각을 논하는 것에 대한 '당위'가 주어져 시스템에 고마울 때도 있다. 안 그랬음 우리 맨날 문제만 풀어야 했을 거 아니냐고... 현재의 다양한 경험을 중시하는 시스템에서는 할 게 너무 많아 아이들에겐 힘들 거다. 그래서 내 것만 고집하지 않고 주변 교과 선생님들과 이야기하고 대화하며 수행의 양이 적절한지, 아이들이 너무 지나치게 힘든지 상황은 아닌지, 아니면 학업적인 면이 부족하진 않는지 조율한다. 우린(적어도 나와 내 동료는) 회식자리에서도 애들 얘기한다. 오늘은 학교 얘기하지 말자! 하고 시작해도 기승전 학교 얘기다. (그러니 회식 좀 맘 편히 하게 해 달라...) 




내가 교사인가 입시 코치인가

그러나 종종 내가 교육자인지 입시 컨설턴트이자 입시 코치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정말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하겠다의 가치와 효율의 가치가 부딪힐 때다. '효율'을 의식하기에 판을 벌리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래서 이걸 생기부 어디에 녹여줄 수 있지?'. '대학 가는데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아이들 힘들게 하나' 그리고 또 막상 아이들이 이렇게 물어도 문제다. '샘, 이거 생기부 들어가요?' 물론 센스와 위트를 겸비한 내가 만난 아이들은 아직(?) 요로코롬 센스 없게 묻진 않았다. 종종 건너 건너 학교의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면, 질문의 요지는 이해하는데, 제발 경건하고 성스럽게라도 물어봐주면 좋겠다! 적어도 홈쇼핑에서 물건 고르듯 묻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질문하는 그 마음은 백 번 이해한다. 해야 할 게 너무 많아하고 싶은 걸 잊고 사는 아이들에게 취사선택하여 활동에 참가하는 것은 능동적인 삶의 운영이다. 그러나, 모든 선택의 기준이 생기부가 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아주 한참 잘못됐다. 그리고 애초에 시스템에 맞춰 키워진 예쁜 아이들을 '고르'려고 만든 시스템이 아니다. 교육현장은 전인적인 교육을 실시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안에서 각 대학의 '구미'에 맞는 훌륭한 아이들을 대학에서 지들 맘대로 선발해가는 것인데, 그래서 사실은 정답이 없는 게 입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년 선발된 친구들에 따라 그걸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다음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문제는 그게 마치 '정석'처럼 떠돌아다닌다는 것. 그 정석은 다음 해에 또 내용이 달라진다. 


대학 이름빨에 기대지 말고 네가 그 대학을 빛내

당신이 대학이라면 어떤 학생을 뽑고 싶겠는가? 그리고 한 번 더 가면,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삶을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기에 그 대학에 가려하는가? 그 대학은 너의 그릇을 키워줄 수 있는 곳인가? 그리고 원하는 곳에 합격해서 특히 SKY 붙어 우쭐 대는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들에게 꼭 한 마디씩 선물한다. "그 대학 브랜드 가치에 기대지 말고, 네가 그 대학을 빛내거라!! 이 자슥아!"



그래서 내 고민은

그래서 난 적어도 어떻게 하면 대학을 잘 보낼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사실 미안하지만 내 영역 밖의 일이다. 다만, 내가 매번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한 번은 빛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다. 학부모님들은 이런 나의 생각에 '이런! 이상주의자 슨상 같으니라고!' 할 수 있고, 부모님들은 '잘 부탁합니다.' 하실 수 있다. 뭐, 이 지점은 조금 쿨하게 가겠습니다. 



시대가 많은 걸 포기하게 했는데, 어떻게 내 교육철학까지 포기해

내 경험상, 어떤 기준에 나를 맞추면 고작 그 기준까지만 이루게 되어 있다. 그 점수를 받으려고, 그 상을 받으려고 움직인다면 그게 전부다. 그러나 왜?를 제대로 설정하면 다른 건 따라온다. 성공이라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뭣도 못 이룬 나의 이런 말이 신빙성이나 신뢰성이나 타당성이 있냐고 반문한다면 보여줄 근거는 없지만, 앞서 말했지 않나, 내 경험상 그렇다. 맞다. 나는 좀 이상적이지만 시대가 많은 걸 포기하게 했는데, 어떻게 내 교육철학까지 포기해! '대학 안 갈 거야?!'라는 협박은 내 인생에서 절대 하지 않겠노라, 오늘도 다짐한다. 



대학은 너희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

승완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조직과 자신의 정체성은 다르다는 걸. 자신의 정체성이 우선이었고 그 정체성을 이루는 가치관에 반하는 것에 부러질 줄 알았고, 부러지는 용기가 있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많다는 걸 알고 있고, '왜?'가 먼저인 친구였다. 요즘 보기 힘든 친구다. 승완이가 학교를 나올 때 화면 속으로 들어가 꼭 안아주고 싶었다. 자기 생각이 있는 친구들이 참 멋있다. 아, 막무가내 맥락 없는 '자기생각' 말고, 질 높은 자기 생각이니 제발 승완이의 겉모습만 따라하는 친구들은 없길 바라. 



무지개는 필요없어. 난 널 사랑하고 있어

조금 오버를 하면, 나희도를 생각하는 백이진의 마음이 구구절절 드러나는 대사는 사실 내가 아이들을 대할 때의 마음이기도 하다.  (깊이는 다르지만요 허허.. 경험면에서이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땐 나희도가 하는 모든 경험들을 응원했어. 평범한 경험일수록 더! 근데 지금은 아니야. 난 걔 시간이 내 시간보다 아까워. 일분 일초도 쓸데없는 경험들 안 하게 해주고 싶어. 더 멋진 경험들만 하게 해주고 싶어. 그리고 그걸 내가 할 수 있어!! 그걸 내가 할 수 있어!"



얘들아, 나도 그 마음이거든... 너희가 멋진 경험들을 했으면 좋겠어. (내가 너무 힘들지 않는 선에서) 그러니 올해도 우리 같이 가보자꾸나... 





자, 그래서 수행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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