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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May 09. 2021

꿩알 줍기

-할머니와의 추억

어릴 적 할머니는 유독 나를 데리고 들판에 나갔다.

내가 할머니를 굉장히 많이 따랐고, 할머니와 함께 판에 나가서 무언가를 캐고 뜯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서도 그런 삶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자립자족의 삶을 살고 싶다. 바다가 가까이 있으면 좋겠지만 바다보다는 산이 더 가까이 있어서 산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필요한 만큼만 얻고 살아가고 싶다.


제주공항 주변은 공항이 생기기 전에는 숲이었다. 할머니는 주로 공항 주변의 숲에서 자연물들을 채취했는데,

고사리, 쑥, 인동초, 산마늘처럼 생긴 알뿌리 등을 뜯거나 캤다.

할머니가 숲에서 일할 때면 나는 할머니를 따라 같이 캐기도 했지만 금세 숲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숲에는 무덤이 많았는데, 무덤을 둘러싼 돌담 위로 올라가서 걸어 다니는 걸 좋아했다.

요즘은 무덤 보기가 어려워서 무덤이라고 하면 으스스한 느낌이 들지 몰라도, 예전에는 숲과 무덤은 하나와 같은 존재였다. 어린 우리들이 숲에서 놀 때면 무덤 놀이가 빠지지 않았다. 무덤 위와 아래에서 잡기 놀이를 하거나 미끄럼틀을 타기는 숲 놀이 중 가장 재밌었다.


처음 꿩 알을 발견한 곳은 무덤 돌담 가장자리였다. 나는 닭이 그곳에 알을 낳아둔 줄 알았다.

"할머니 여기 달걀 있어. 닭이 여기다 알을 낳았나 봐."

할머니가 가까이 와서는 보고는 알을 집어 들었다.

"꿩 알이다. 근처에 또 있나 살펴봐."

할머니 말을 듣고 주변을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근데 할머니 가져가도 돼?"

꿩알을 가져가는 게 어린 마음에 걸렸다. 

할머니는 사람 손이 탄 곳은 꿩이 더는 알을 낳지 않는다고 했다. 꿩은 처음에 알을 두세 개 낳고, 사람이나 뱀의 손이 타지 않으면 며칠 뒤 그곳에서 수십 개의 알을 낳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고모 어릴 적에 고모가 아침이면 숲으로 가서 바구니에 가득 꿩알을 주워 왔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할머니는 진도에서 사셨는데, 진돗개와 함께 고모는 꿩알을 줍는 일을 잘했다고 했다.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며 하얀 진돗개가 꿩을 쫓아 뛰어다니는 그림이 그려졌다. 당시 바구니 가득 꿩알을 수확해오는 고모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꿩의 입장도 보인다. 

나는 숲에서 여러 번 꿩알을 주웠는데, 두 개를 낳은 것만 발견했다.


https://cafe.daum.net/pigeons13/38CQ/485?q=%EA%BF%A9%EC%95%8C&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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