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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Jul 18. 2020

잠의 즐거움, 잠을 자는 꽃-수련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낮에 좀처럼 잠을 자지 않는 편이다. 잠을 규칙적으로 자는 편이어서 직장인들처럼 주말에 몰아서 자거나 늦게 일어나지 않는다. 시계나 알람이 없어도 늘 정해진 시간에 일어난다. 잠이 깨면 뒤척이지도 않는다. 로봇이냐고? 유전이다. 그런데 형제자매 중 나만 그렇다.

그런데 오늘은 새벽 네 시에 깨서 아침 산책 시간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한 탓에 점심을 먹고 깜박 잠들어 버렸다. 오래 동안 푹 잤다. 잠이 깼는데도 한참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잠이 깬 뒤 지금 몇 시지? 잠들어버렸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잘 잤다, 토요일 오후에 자고 나니 좋구나, 이렇게 누워 있어도 좋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강박 때문인지 쉬는 날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는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 제목처럼 열심히 사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이 아닌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여러 일을 하기보다는 한 가지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빠르게 하기보다는 천천히 하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낮잠을 자도 괜찮다는 것,

침묵이 큰 에너지가 된다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산책을 하는데, 후배가 개망초를 보면서 묻는다. 
"선배, 저 꽃도 저녁에 꽃잎을 오므려?"
"아닐걸. 밤에 오므리지 않을 거야."
순간 나는 당황했다. 사실 개망초를 밤에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아닌 게 맞겠지? 오늘 밤, 확인하러 나와야 하나? 
출처 http://blog.daum.net/nmchq/6559323.

계란 후라이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계란 후라이와 똑 닮아서 어린 시절, 소꿉놀이 때 빠지지 않는 꽃이다. 내가 좋아하는 꽃이다. 들판에 개망초가 자연스럽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 꽃집에 있는 화려한 꽃들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수련, 연꽃은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린다. 반대로 달맞이꽃은 낮에 꽃잎을 오므리고 밤에는 환하게 핀다. 최근에많이 보이는 낮달맞이꽃은 낮에 활짝 피어 있다. 꽃이 아니라 밤이 되면 잎을 오므리는 자귀나무도 있다.    

수련(睡蓮)은 수면(睡眠)과 동일한 한자 '잠잘 수'를 쓴다. 잠자는 연꽃인 셈이다. 반면 연꽃은 꽃잎을 오므리기는 하지만 잠을 자는 것이 아니어서 수련과 구별된다고 한다. 

병솔나무(bottlebrush)와 비슷한 자귀나무는 긴 수술이 꽃잎처럼 보이는데, 요즘 한창이다. 자귀나무 잎사귀들이 밤에 오므라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라디오에서는 연꽃과 수련이 한창이라고 한다. 예전에 숲선생님들과 함께 백련을 보러 갔던 때가 떠오른다.

오랜만에 색연필을 꺼내서 꽃그림 하나 그려야겠다. 아무래도 쉬이 잠들지 않을 테니. 


오래전 세밀화를 시작할 때 원성 스님의 책 [도반] 표지를 보며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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