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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Jul 16. 2020

더위에 뭘 먹어야 하나?

- 시원한 수박


점심 메뉴는 누룽지삼계탕였다. 

같이 일하는 한 동료는 삼계탕의 건더기를 좋아하고, 다른 이는 국물을 두 대접이나 먹을 정도로 취향이 달랐지만 더위의 시작인 초복에는 삼계탕이 빠질 수 없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삼계탕을 먹었을까.  


한 동료는 집에 가서 아이들 삼계탕을 끓여줘야 할지 묻는다.  

퇴근 후 더워서 삼계탕을 끓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있었다. 

"수박은 어때요?"

나는 삼계탕 대신 수박을 골라 보았다. 따듯한 보양식인 삼계탕도 좋지만 아이들에겐 수박도 좋을 것 같다.

그녀는 잠시 고민한다.  그러고는 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림책 [자연이 가득한 계절 밥상] 중에서(곽영미, 송은선 지음)


어떤 이는 먹는 기쁨이 있어,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이는 음식 먹는 것이 곤욕처럼 느끼며 끼니를 때우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늘 [음식이 생명이다]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먹은 음식의 에너지가 내 안에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음식을 허투루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싼 음식을 먹는다는 건 아니다. 가능한 제철음식으로, 인스턴트 음식보다는 건강한 음식으로 가급적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리고 음식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대단한 환경 운동은 아니지만, 어릴 적 자주 들었던 '음식 남기면 저승 가서 다 먹어야 한다'는 말 때문에 생긴 부정적 신념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먹을 만큼의 음식을 선택해서 그만큼 먹는 것이 좋다. 


그림책 [자연이 가득한 계절 밥상] 중에서(곽영미, 송은선 지음)


어릴 적 여름밤이면 가족들이 모두 나와 마루에서 시원한 수박을 먹곤 했다. 붉은 수박을 베어 물면 입안 가득 달콤한 맛과 함께 단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커다란 수박 한 통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잇자국이 난 수박 껍질만 쟁반에 덩그러니 남아있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같이 먹을 이가 적어 수박 한 통을 사기가 어려워졌다. 


오래전 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한 여인이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같이 먹는 사람에게 뱉으면서 약간 정신 나간 여인처럼 웃는 장면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그 장면이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너무나 엄격한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 때문에  나이를 먹은 어른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아니 저렇게 기괴한 행동을 해도 되는 거야,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여인이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해 보여서 내심 부러웠다. 그래서 수박씨를 뱉는 놀이를 몰래 혼자서 하곤 했다. 아직까지 누군가의 얼굴에 수박씨를 뱉어본 적은 없지만 수박을 보면 그 장면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 나는 그 여인처럼 자유롭게, 조금은 미친 듯이 살고픈 욕망이 남아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그림책 [수박 수영장] 중에서(안녕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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