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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Aug 15. 2020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녀와 나는 같은 초등-중-고등학교를 나왔다. 함께 운동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랫동안 붙어 다닌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녀와 나는 20대 이후 따로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제주, 나는 서울에 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제주에 내려갈 때마다 우연히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새삼 제주가 좁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에서 결혼하고 살고 있었다. 우리 집은 그녀의 옆 동네였는데, 한 번 이사를 갔다가 다시 결혼한 그녀와 같은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녀와 나는 지나치게 빈번히 만났다. 신기하게도 나는 지인들을 우연히 잘 본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그녀다. 물론 우리가 사는 곳이 같아서 자주 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우린 자주 만났다.   


이번에도 서울로 올라오기 전날, 어김없이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일은 하고 있는 거냐?"

올해만 해도 벌써 수차례 제주를 오가는 나를 본 그녀는 내가 일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나는 그녀의 이런 거침없는 말투를 좋아한다. 그녀는 이제 두 아들의 엄마인데도, 어릴 적 그대로의 말투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골목길을 휘감는 바람 같은', '검정 곱슬머리 카락', '거침없는 웃음소리'


그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어휘들이다. 어린 시절 그녀는 나의 우상이었다. 적당히 예뻤고, 자기주장이 강했던 그녀는 사실 악동에 가까운 아이였다. 그녀는 이야기도 참 재미나게 해서 난 늘 그녀의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고, 재미난 그녀의 얘기를 할머니에게 전달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녀와 몰려다닐 때면 언제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뒤따랐고, 그 사건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그녀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두려움 없이 당당했고, 겁이 없었다. 그런 그녀와 달리 나는 굉장히 내성적이었고 재미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녀의 말썽들이, 거침없는 말투가 굉장히 멋져 보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동네 커피숍에 만나 20년 넘게 살아온 이야기를 풀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내로,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아가는 모습이 무척 궁금했다.     

그녀는 남편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자식인 두 남자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키득거리며 그녀를 보았다. 결혼을 했어도, 엄마가 되었어도 그녀는 여전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 바람 같은 미소, 거침없는 웃음과 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녀의 얘기가 재밌는 건 그녀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늘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짜증 나는 얘기에도, 심각한 얘기에도 말꼬리에 살짝 미소를 지었고, 웃긴 얘기에는 공간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웃었다. 


3시간 넘게 그녀와 대화를 하는 동안, 마치 어린 시절 그녀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웃음이 그녀에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웃음을 잃지 않은 그녀는 여전히 나의 우상이었다.   


그녀와 나에게 딱 어울리는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IeHFFb6eA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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