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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Aug 28. 2020

성교육,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 그림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누리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 일어난 정부 배포 '초등학생 성교육 책'의 실제 내용 | 1 boon - https://1boon.daum.net/mbig/5f46fc672c7454539a1a6daf


며칠 전,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성교육 책의 실제 내용이라는 기사로, 그 기사 내용에는 사회적 이슈를 다룬 그림책 강의할 때 [성역할과 성교육] 주제에서 매번 다루던 책이 실리었다. 기사 내용은 초등학생 성교육 책으로 이런 장면이 부적절하며, 글에 나오는 신체적 명칭 역시 부적절하다고 실렸다. 대다수 댓글들이 이 기사에 동의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대체 학교나 가정에서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도 엄마, 아빠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장면으로 [사랑을 해서]라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성교육을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초등학교에 들어오면 이미 성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과연 이런 교육이 맞는 것일까. 아이들은 둘째치고 왜 성교육을 은유법적이고, 비밀스럽고, 감추는 교육으로 해야 하는가 등등.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림책의 제목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이다. 기사에 나온 것처럼 덴마크에서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고, 덴마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실린 내용이다.  


이 책의 시작은 이러하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려 줄까? 누구한테나 엄마랑 아빠가 있다는 건 알지?

아기가 태어나려면 엄마랑 아빠가 힘을 합쳐야 해. 엄마, 아빠가 언제나 아기가 함께 사는 건 아니야. 하지만 아기는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이 있어서 태어난 거야.]

그리고 다음 장면이 나온다.

그다음 장면이 바로 기사에서 문제가 된다는 장면, 엄마와 아빠가 알몸으로 서 있고, 서로 키스를 하는 장면이다.  

기사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들었다.

질, 고추, 고환, 성교와 같은 정확한 신체적, 행위들의 명칭이 드러날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었던 문장 [두 사람은 고추를 질에 넣고 싶어져. 재미있거든.] 성행위에 대한 부분을 재미로 추구했다는 것이다.

댓글에서는 이 책이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성적 환상(또는 부정적인 행위)을 부추긴다고 난리였다. 난 댓글을 보며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놀라웠다.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이 그림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기가 어떻게 태어날까]이다. 아기가 생기고 태어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그린 책이다. 정말 있는 그대로 그렸다. 뒤에 등장하는 병원에서 아기가 나오는 장면은 아기 머리가 정면으로 나와 나 역시 처음 볼 때 조금 놀랐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문제가 될까?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는 성교육이 생물 교과에서 다룬다. 인간의 신체 명칭을 그대로 알려준다는 것이다. 나는 명칭을 그대로 쓴 것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큰 충격일지 의문이다. 질이 질인 것이고, 고환고환인 것을. 대체 아이들이 이 단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인가. 질과 고환이라는 명칭에서 성적 수치심이나, 흥분을 느끼는 것은 성인의 잘못된 성 인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가 되었던 텍스트다. [두 사람은 고추를 질에 넣고 싶어. 재미있거든]

이 문장에 관해서도 강의 시 토론을 해 보았다. 성행위가 유희적인 측면으로만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겠다고 하는 그룹도 있었고, 반대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이해하는 그룹도 있었다. 나 역시 후자 그룹이다. 나는 이 텍스트가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닌가. 부부인 엄마와 아빠가 자연스럽게 즐거움을 위해 성행위를 한다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아직도 우리는 자식들에게, 아이들에게 성행위가 성스러운 활동으로 보이기를 바라고 있는가. 과연 성행위는 출산만을 위한 성스러운 활동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성교육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림책은 아기를 낳은 엄마와 아빠가 집으로 돌아간 장면으로 끝난다.

[아기는 이렇게 태어나는 거야. 잘 모르는 게 있다면 엄마나 아빠에게 물어봐.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도 괜찮아.]


나는 강의를 듣는 교사들에게 이 책을 초등학교에서 읽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다들 어렵겠다고 했다. 이유는 우리가 모두 짐작하는 부분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부모님들이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유아기에 이 책을 부모와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된다. 질과 성교, 고추가 창피한 것도 아니며, 숨겨야 할 것이 아니며, 사랑하는 부부가 아이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게 맞지 않을까.

이 책을 보고 아이들이 놀라서 정서적 충격을 받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잠시 놀랄 수는 있겠지만  성에 대한 아무런 편견이 없는 아이들이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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