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하나에
-글 김장성, 그림 김선남 / 사계절
예전 숲해설을 할 때 나는 이 나무 이야기를 꼭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수많은 백성을 돌보는 어진 성군 같기도 하고, 줄줄이 딸린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부모 같기도 한 모습 같기도 한 나무. 많은 생명을 살리는 나무 이야기를 말이다. 김장성 글, 김선남 그림 [나무 하나에]는 바로 그 나무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하다가 끝내 풀지 못하고 가슴에만 묻어두었는데, 이 두 작가 재치 있게도 그리고 아름답게 그 나무 이야기를 잘 담아냈다.
어찌 보면 한 소년에게 잎과 열매, 줄기, 밑동까지 내어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비슷한 내용이다. 사과나무가 소년을 위해서 모든 걸 내어주는 모습과 참나무가 모든 생명체를 키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먼저 표지를 살펴보자. 표지는 커다란 도토리나무의 모습이 확대되어 앞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앞표지와 뒤표지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분리되어 있으며, 뒤표지에는 나뭇잎을 단 가지 하나와 [생명을 품는, 생명을 기르는, 생명을 이루는 나무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사실 숲의 모든 나무들이 많은 생명을 품고, 기르며, 이루고 있다. 하지만 유독 이 나무는 정말 너무나도 많은 생명을 품고 사는 나무이다.
면지는 하얀 바탕색에 그 나무가 생명을 나눠주는 대상들, 새, 다람쥐, 개미, 무당벌레, 매미 등의 곤충들이 그려져 있다. 표지와 면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읽힌다. 약표제지에는 오른쪽 하단에 작게 갈색으로 스케치하듯 그려진 나무 한 그루와 [나무 하나에] 제목이 다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도록 시선을 잡아끈다.
본문은 첫 번째 펼침면 왼쪽에는 배경색 없이 하얀색 바탕에 텍스트, 그리고 오른쪽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다. 두 번째 펼침면에는 그림이 전체 장면으로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이 두 펼침면이 반복되는 구조의 책이다.
첫 번째 펼침면 왼쪽 글은 나무 하나에 ‘둥지 하나’가, ‘벌레 자리 하나’가, ‘벌집이 하나’와 같은 글이 패턴처럼 반복적으로 쓰여 있다. 반면 두 번째 펼침면 오른쪽에는 [구멍 속에 사는 다람쥐 다섯], [둥지 속 갓 깬 아기들이랑 엄마랑 아빠랑 오목눈이 여덟] 등과 같이 하나 속에 사는 수많은 곤충과 동물들을 알려준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동물과 곤충의 수는 점점 늘어나며, 다섯에서 시작된 수는 이백, 삼백, 사백……헤아릴 수 없는 수로 나아간다.
글의 구조가 이렇다 보니 그림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첫 번째 펼침면 오른쪽 그림에는 계속 나무 하나의 그림이 들어가고, 펼침면 페이지에는 풀샷 그림이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이니 장소를 변경할 수도 없고, 형태가 고정되어 있으니 형태를 바꿀 수도 없다. 내가 만약 그림작가였다면 나는 왼쪽면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림작가가 참으로 고민을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글과 그림의 작가가 다른 경우 작업 방식이 주로 글부터 시작된다. 그림 작가는 글을 읽고, 이미지를 떠올려야 하는데, 어떤 그림을 그릴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글의 경우는 글이 단순하지만 다른 그림책의 글 중에는 많은 사건들을 포함하기도 하고,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많은 경우도 많다. 그러니 그 많은 사건들 중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많은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글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릴 거리가 없어 고민이기도 하다.
이 그림작가는 글의 단조로움을 줄이기 효과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 바로 ‘프레이밍’이다. 프레이밍은 화면의 구도와 구성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림책의 그림이 영화처럼 연출된다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림책의 그림은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연속되는 그림의 연결이기 때문에 카메라 앵글의 높이를 조절하거나, 렌즈의 거리를 조절하는 줌인(Zoom in), 줌 아웃(Zoom out) 방식으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그림책의 그림작가는 첫 번째 펼침면 [나무 하나의] 오른쪽 그림을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보여주다가 점점 줌인(Zoom in)하면서 나무 가까이 다가가는 그림으로 변화를 주었다. 나무 전체의 모습에서 나무줄기의 수피가 확대된 모습으로 그림이 변화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펼침면에는 앵글의 각도를 위, 정면, 아래로 자유롭게 바꾸어 시선을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또한 색감을 풍성하게 넣어서 그림을 훨씬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혹시 이 그림책의 [나무 하나]는 무슨 나무인지 눈치챘는가? 그림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도토리나무라 불리는 참나무이다. 정확히 참나뭇과 나무이다. 참나뭇과 나무들은 형제들이 여럿이 있다. 졸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뿐만 아니라 비슷하게 생긴 친척 나무들도 많고, 이들 간의 서로 형성된 잡종 나무들도 많다. 이 그림책 나무는 잎자루의 길이나 잎의 모양을 보아 신갈나무 같아 보인다. 신갈나무는 경기나 서울 쪽인 수도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토리나무이다.
도토리나무 하면 우리는 쉽게 도토리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나라 산마다 도토리나무가 많기에 가을이면 다람쥐와 경쟁하듯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도토리를 줍는 것을 뭐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으나 지나치게 많이 가져가서 겨울 동물들의 일용한 양식을 빼앗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떨어지지 않은 도토리를 줍기 위해 나무의 줄기를 발로 차거나 때리는 모습은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도토리나무는 유독 다른 나무보다 많은 곤충들이 꼬인다. 나뭇잎에는 부전나비 종류가 알을 낳고, 거위벌레 역시 그렇다. 거위벌레는 ‘가위벌레’라고 이름을 불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위처럼 큰 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턱으로 알을 낳은 도토리 나뭇잎을 재단해서 이불같이 돌돌 말아놓는다. 돌돌 말린 나뭇잎 뭉치를 펼쳐보면 그 기술에 혀를 내둘릴 정도로 놀랍다.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돌돌 말린 나뭇잎을 갉아먹고 자란다. 개미, 노린재, 무당벌레,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등과 같은 셀 수 없는 곤충들은 도토리나무의 나뭇진을 먹으며 살아간다. 보통 나뭇진은 낮보다는 밤에 더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이 그림책에서도 낮이 아닌 밤에 나뭇진을 먹기 위해 달려든 곤충들을 그리고 있다. 오래전 이런 도토리나무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우주가 떠올랐다. 도토리나무가 마치 우주 같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린다면 무수한 별들을 감싸고 있는 광활한 우주의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는 [그리고 낮고 높은 산속에 그 많은 식구들을 다 데리고 사는 꼭 그런 나무가 몇백, 몇천, 몇만…….]라는 글과 줌인했던 그림이 다시 점점 줌 아웃되면서 광활한 숲의 모습을 날개 책 기법으로 보여준다. 날개 책 기법은 펼침면 양쪽에 그림을 확장해서 그리는 방법인데, 이 그림책에서는 책의 오른쪽에 날개를 붙여 광활한 숲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많은 나무가 그러하지만 참나무류는 432종의 곤충이 먹고살아간다고 한다. 사실 참나무 류보다 버드나무류가 더 많은 곤충들이 먹여 살리고 있다. 이처럼 독 많은 곤충들과 동물들이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의 구성원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더 따르고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이유로 그런 사랑을 받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도토리나무처럼 그들의 많은 것들을 내어주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내주는 그런 사랑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림작가가 왜 도토리나무의 왼쪽 가지 하나를 오른쪽 방향으로 틀어진 나무를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궁금하다. 그림책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보통 나무들의 가지는 줄기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곧게 뻗어나간다. 많은 나무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 그림책 속의 도토리나무처럼 가지가 반대 방향으로 휘어서 자라는 경우도 간혹 볼 수 있다. 어떤 외부적 요소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림작가가 무슨 의도로 가지가 휜 도토리나무를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작가 자신이 관찰한 나무가 이런 모양이라는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가지가 휜 도토리나무여서 이 그림책이 더 좋았고, 의미가 더 크다. 그 이유는 도토리나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갖춘 엄친아와 같은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휜 가지처럼 완벽하지 않거나 무언가 결핍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벽하지 못하고, 부족한 우리들에게도 더 큰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만 같다.
<그림책 테라피>
나무 하나에 사행시를 만들어 보자. 나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느낌이나 이미지를 생각하며 적어보자.
나무 하나에 --------
나무 하나에 --------
나무 하나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