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으로 만들어진 인연

아모스와 보리스

by 곽영미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책 [아모스와 보리스]를 만나 보자. 표지를 살펴보자. 어떤 이야기일 것 같은가. 쥐와 고래 둘의 이름이 아모스와 보리스일 테지. 앞표지에는 쥐가 배를 타고 있고, 뒤표지에는 고래가 보인다. 그림들은 모두 노란색 원형틀에 들어가 있다. 표지 그림과 제목, 제목 위, 아래에 있는 선으로 디자인이 조금 산만해 보인다.


표지

면지는 초록빛이 감도는 배경에 물결이 선으로 그려져 있고 그다음 장에는 표지 그림이 방향을 바꾸어 뱃머리가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며, 쥐는 망원경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다음 장은 표제지로 생쥐가 고래 위에서 편하게 누워있고, 고래 역시 편안한 얼굴로 바다 위에 떠 있다.

면지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첫 페이지는 오른쪽에만 글과 그림이 들어가 있다. 생쥐가 모래 위에서 바다를 보고 있다. 생쥐의 이름은 아모스이다. 펜으로 선을 그리고, 색은 수채 물감으로 옅게 처리했다. 색보다는 슥슥 그린 선이 강하게 부각된다. 윌리엄 스타이그는 마치 낙서를 하듯 그림을 그린다.

[……아모스는 바다를 사랑했어. ……갑작스레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조약돌이 파도에 밀려 굴러가는 소리도 좋아했어.]

다음 페이지는 펼침면 전체에 그림이 들어가 있고, 배를 만드는 아모스의 그림이 4개로 보이고, 배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서 배를 밀고, 바다로 나아가는 아모스의 모습이 보인다.

[……아모스는 항해가 너무도 즐거웠어.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풀어 있었어.]

나는 이 장면에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호기심과 모험심, 삶을 사랑하는 마음.

일상의 소중함을 잘 알지만, 우리는 모두 우리의 삶에 좀 더 많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있기를 바라지 않는가,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들하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가. 아모스가 참 멋져 보인다. 생쥐이면서 물을 겁내지 않고, 바다를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조금씩 이루며, 도전하는 용기가 대단해 보인다.

다음장에는 뜻밖에 일이 일어난다. 아모스가 고래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에 감탄하다가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취해서 그만 데굴데굴 구르다가 바다로 빠지고 말았다.

배는 떠나가고, 아모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앞 장면과 이 장면에서는 글과 그림을 분리해서 보여준다. 그림을 네모와 원형 틀에 넣고 글과 분리했다.

본문

그다음 이야기는 아모스를 살려주는 고래 보리스를 만난다. 고래 보리스는 아모스의 집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아모스의 청에 따라 방향을 틀어 아모스를 집으로 데려다준다.

[……물론 귀찮지 않아. 오히려 영광인걸. 세상에서 어떤 고래가 너처럼 희한한 동물을 알 기회를 얻게 되겠니! 자, 내 위에 올라타렴…….]

글을 통해 보리스가 아모스를 만난 것 자체에 기뻐한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은 낯선 이에게 거리낌 없이 베푸는 보리스의 선행임을 알 수 있다. 둘은 보리스가 갑작스럽게 잠수를 하는 바람에 작은 갈등도 겪지만 아모스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주일 동안 서로에게 호감을 보인다. 보리스는 아모스의 가냘픔과 떨리는 듯한 섬세함, 작은 목소리 등에. 아모스는 보리스의 거대한 몸집, 힘, 굵은 목소리, 끝없는 친절에 감동했다. 그러고는 그들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며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어쩌면 연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짧은 기간 동안 강한 끌림, 전혀 다른 이에게 느끼는 강한 호감은 친구이기보다는 연인에 가깝다.

이 책 부록에는 이 책을 어린이와 함께 읽는 분들은 위한 페이지가 있다. 이 작품 설명으로 이 책의 주제를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말하고 있다. 아모스가 제 손으로 만든 배(세계)와 결별하고 존재의 고독을 느끼고, 보리스와 사랑에 빠진다고 설명한다. 정말 이 둘이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가?


집에 도착한 아모스는 보리스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언젠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보리스를 기쁜 마음으로 돕겠다고 한다. 그 말에 보리스는 어떻게 저렇게 작은 생쥐가 자신을 도울 수 있겠냐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아모스의 마음이 정말 따듯하다고 느끼며 그를 보고 싶을 거라고 여긴다. 둘은 서로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왠지 이 장면을 보니 무언가 아모스가 보리스를 도울 일이 생길 것만 같지 않은가. 마치 이솝우화 이야기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작은 생쥐가 커다란 고래를 도울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이제 이야기는 결말로 다가간다. 여러 해가 지나고, 백 년에 올까 말까 한 사나운 폭풍이 불었다. 그 폭풍에 보리스가 해안으로 떠밀려 왔다. 죽음까지 다다른 보리스를 발견하고는 친구인 코끼리를 불러 보리스를 바다로 돌려보낸다. 둘의 인연이 대단함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바다로 돌아간 보리스와 육지에서 남겨진 아모스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이제 다시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절대로 잊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다.

본문 마지막 장면

이 이야기를 그림책이라고 해야 할까? 동화인 이야기책이라고 해야 할까?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림이 없이도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 있기에 그림책보다는 이야기책에 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청회색의 바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물을 뿜어내는 고래들, 주홍빛 해가 저무는 바닷빛의 모습을 살피다 보면 그림도 나름의 기능을 하기에 글과 그림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대응 그림책으로 볼 수도 있겠다. 예전에는 그림책의 분류에 조금 더 예민하게 굴었는데, 지금은 그림책과 이야기책의 경계가 많이 흐려지면서 좀 더 그림책의 범위를 넓게 보게 된다.

우리는 우연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금세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여행에서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그런데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게 힘들다. 지역적으로 가깝거나 무언가 함께하는 일이 없고서는 관계가 지속되지는 않는다.

여행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이 있었다. 한 중국인 친구는 그녀의 집에서 한 달 넘게 생활해서 그녀의 남편, 아이들까지 가깝게 지냈다. 한국에 다시 들어와서도 3년 넘게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점차 소식이 뜸해지고, 지금은 전혀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또 다른 친구로는 홈스테이 호스트였던 할아버지였는데 그와도 잠시 연락을 하다가 끊겼다. 이런 경우는 너무도 흔하다. 비단 외국뿐만 아니라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참 좋은 사람이구나. 저 사람과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더욱이 아모스와 보리스처럼 살아가는 공간이 다르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공간의 제약보다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관계는 용기에서 시작되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은 바로 끊임없는 애정이다. 연인도 아닌데 애정이 필요하다고? 그렇다. 동성관계에서도 연인처럼 적절한 애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애정이 2~3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좋은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적당한 애정을 유지해야 한다.

땅에 사는 아모스와 바다에 사는 보리스처럼 우리가 낯선 여행지에서 마음이 맞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오랫동안 그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지라도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있지 않는가. 그들을 떠올리며 그날의 시간을 기억한다면 그 추억만으로 살아가는 힘이 되지 않는가. 그리고 잊지 말자. 그 관계는 언제난 먼저 베푸는 선행에서 시작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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