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다립니다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나요?

by 곽영미

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나는 기다립니다]는 한때 드라마에서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던 그림책이다. 다비드 칼리는 많은 그림책의 글에 쓴 프랑스 작가이다. 워낙 좋은 책이 많은데도 글과 그림을 같이 하지 않아서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나름 고정팬을 많이 가진 작가다.

이 책은 판형이 독특한데, 세로가 11cm로 아주 짧고, 가로가 세로의 두 배가 넘는 가로로 길다. 이런 독특한 판형을 한 이유는 바로 이야기의 소재로 쓰인 빨간 실이 효과적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앞표지에는 엉킨 실타리의 양쪽 끝을 잡고 왼쪽과 오른쪽 끝에 선 남녀의 모습과 제목과 저자 이름이 정자가 아닌 기울여서 쓰여 있다. 뒤표지에는 어린이처럼 보이는 아이가 끈 하나를 힘겹게 잡아끌고 있으며, 끈의 가운데는 심장 또는 하트 모양의 형태로 이루고 있다. [삶의 끈을 따라서……]라는 글도 보인다.

noname01.jpg 표지(앞-뒤)

뒤표지에 있는 글과 제목을 연결해 보자. 삶의 끈을 따라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끈을 따라서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면지는 색으로 디자인되었는데, 빨간색이다. 앞표지와 연결해서 붉은 실을 나타내는 것 같다. 다음 표제지에서는 오른쪽 하단에 붉은 실이 보이면서 독자의 시선을 끌고, 다음 페이지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본문 첫 펼침면에서는 뒤표지에 나왔던 그림이 나온다. 한 아이가 긴 붉은 실을 끌어당기고 있다.

[나는 기다립니다. 어서 키가 크기를]

그림의 선은 단순하고 인물에 색을 전혀 넣지 않았다. 선이 비슷한 그림책 그림들을 여러 그림책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캐나다 출신인 피터 레이놀즈의 인물 그림과도 많이 비슷하다.


noname02.jpg 본문 펼침면

두 번째 펼침면에서는 왼쪽 끝에 열린 문이 보이고, 오른쪽 끝에는 침대에 누운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중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손가락 안에는 빨간 실이 놓여있다. 그리고 글은 이렇게 적혀 있다.

[잠들기 전 나에게 와서 뽀뽀해 주기를]

위의 장면처럼 문이 나오는 그림은 종이를 덧대서 사진을 찍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 기법을 사용했다. 이런 장면은 뒤에 한 장면 더 나온다. 이 두 장면이 있어서 지루할 수 있는 패턴에 긴장감을 만든다.

이야기는 계속 흘러간다. 아이가 점점 커 카고, 그 과정에서 빨간 실은 엄마의 리본 끈이 되기도 하고, 아이의 스웨터가 되기도 한다. 또 크리스마스의 장식 줄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중반부로 들어가면서 이제 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사랑을 기다리는 청년이 되어, 자신과 연결된 빨간 실을 길게 늘어뜨리고 다닌다. 성인이 된 아이는 자신과 같이 빨간 실을 가진 여자를 만나고, 이별하고, 전쟁의 아픔을 거치며 끝내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noname03.jpg 본문 펼침면

이처럼 이야기 중반까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기다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적어놓고 있다. 비가 그치는 것과 같은 작은 것들부터 사랑을 기다리는 큰 일까지.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나고 부부가 싸우는 일상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우리의 노년 인생의 일생을 보여준다.

붉은 실의 모티브는 중국 전설 이야기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붉은 가지고 태어나고, 그 붉은 실의 끝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 삶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사랑하는 사람? 아기? 누군가의 건강? 아니면 돈벼락? 우리는 삶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산다.

noname04.jpg 본문 펼침면

지난주 한 지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우리가 앞으로 100세까지 살 것이 때문에 1인당 필요한 노후 자금을 10억 이상이라고 하면서 4인 가족의 경우 40억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 얘기에 입이 쩍 벌어졌다. 물론 그녀가 부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취미로 부동산을 사고파는 일을 하며 봉급 외에 돈을 늘리는 일을 열심히 한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할까?’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만약 내일 당장 죽는다면 돈을 버는 일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한순간에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당신의 자녀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 삶의 의미를 주는 것보다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건물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주저 없이 그렇단다. 물론 이런 생각은 금액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우리 사회의 부모가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고생하지 않고, 빈곤하지 않게 살기를 바란다. 편안히 부를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삶이 자식들에게도 같을까?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우리가 죽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뿐이라고 했다는데,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삶의 가치가 다르겠지만 그녀의 생각이 조금 위험해 보였다. 물론 그녀가 노력하면서 사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고, 그녀의 행복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자꾸 나는 그녀가 부의 축적 말고 다른 일에도 눈을 돌려 다른 의미를 찾는 삶을 살아보기를 기대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삶은 같아 보이면서도 다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려고 애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고, 돈을 벌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 속에서 편안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걱정거리 없는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최근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한 삶보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한다.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삶은 어느 정도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다른 부분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긍정적인 방식으로 타인과의 유대감, 시간을 쏟을 가치 있는 일, 초월(자기 상실) 등과 같은 부분이다.


한 지인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5년 넘게 집에서 돌보고 있다. 물론 지인 혼자서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남동생과 함께 돌보고 있기 때문에 지인이 사회생활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녀는 아침이면 부모와 남동생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출근하고, 출근 후 장을 보고 매일 저녁 식사를 만드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가 병에 걸린 뒤 그녀에게는 자유시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워낙 깔끔하고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사람이어서 음식을 준비하고 만드는 일도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다. 가끔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그녀가 몸과 마음이 지쳐서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주간 보호 시설이나 치매 요양원으로 아버지를 보내라고 냉정하게 조언한다. 간병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보내기를 꺼려한다. 처음에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깔끔한 그녀의 성격 때문에 그녀가 고생을 사서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와 가끔 통화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나는 그녀가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 아버지를 모시는 일은 힘들지만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에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는 그녀는 아버지의 유대감을 통해서 의미 있는 삶을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noname05.jpg 본문 마지막 펼침면

이 그림책의 마지막 펼침면에는 붉은 실이 한 뭉치 보인다. 그리고 그 밑에는 끝이 아니라 끈이라고 쓰여있다. 이야기의 끝이 다시 어디로 이어질지 보여주는 위트 있는 장면이다.

당신의 붉은 실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그리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요?


매거진의 이전글할머니의 여름휴가는 어떨까요?